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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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이야기로 연일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요즘입니다. 친구들과 편하게 주고받는 얘기가 아니라 이렇게 타인에게 공개하는 글을 쓰면서 대중에게 민감한 이슈를 논하는 건 늘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오늘 하려는 이야기의 핵심은 이게 아니니까 여느 때처럼 제가 가진 생각들을 한 번 풀어놔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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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스포츠를 볼 때, 아니 정확히는 스포츠를 보며 나름의 분석을 할 때 어떤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시나요? 상황에 따라 감정적인 이야기들을 툭툭 내뱉을 수도 있겠지만 평정심을 유지한 상태라면 아마도 '경기력' 혹은 '경기 스타일'과 같은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실 겁니다. '경기력이 형편없다', '경기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든다'처럼 아무래도 내가 응원하는 팀이 그날 어떤 경기를 펼쳤는지, 그리고 그 경기의 수준은 어땠는지를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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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경기력과 경기 스타일은 엄연히 구분되는 개념입니다. 경기력은 정해진 목표와 방향이 뚜렷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았을 때 사용하는 단어이고, 경기 스타일이라는 건 말 그대로 경기를 풀어가는 방식이자 철학과 맞닿아 있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기를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 스타일이 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력을 논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목표와 방향이 없는 채로 경기장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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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대표팀뿐 아니라 특정한 조직을 이끄는 사람들이 새로 부임할 때마다 '그 사람은 어떤 스타일인지'가 늘 뜨거운 감자입니다. 타이트한 편인지 자유로운 편인지, 조직원을 믿어주는 편인지 본인의 자아가 더 강한 편인지, 대화와 타협을 우선으로 하는지 원칙과 기준을 내세우는지, 과감한 변화를 추구하는지 안전과 효율을 중요시하는지 등 서로 다른 가치들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조금 더 추가 기울어져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초미의 관심사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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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의 세계에서는 이 스타일이라는 게 단순한 '방식'이나 '철학'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아무리 개인의 스타일이라고 할지라도 그걸 내세우기 위해서는 일정한 성공 경험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내 스타일을 추구하고 싶다면 그걸 증명할 수 있는 일정한 근거가 존재해야 한다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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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스만 감독이 비판을 받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성공 경험이 전무하다는 데 있습니다. 독일 국가대표팀, 바이에른 뮌헨, 미국 국가대표팀, 헤르타 베를린 등 2004년부터 지금까지 약 20년간 프로 축구 감독을 하면서도 이렇다 할 결과를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 말이죠.
그러니 사람들이 비판을 하는 포인트를 파고 내려가면 그 본질에는 '프로의 세계에서 성공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스타일을 논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이 있을 겁니다. '자유분방 리더십'이든 '치어리더십'이든 '해줘 축구'든 '재택근무 감독'이든 간에 이를 바탕으로 결과를 보여준 전력이 있다면 그때부터는 본인의 스타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근거가 생기는 것이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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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일이 비단 스포츠계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정말 비슷한 사례를 많이 보거든요. 일을 하다 보면 본인의 역량으로 뭔가를 일궈내지 못한 상황 속에서도 '이게 제 스타일이에요'라는 사실만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방식과 철학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겁니다'가 아니라 '이렇게 하는 게 나에게 맞고 편하다'는 것을 우선시하는 것이죠. 맞습니다.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의 세계, 즉 직장인의 세계에서도 이런 태도는 사실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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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 스타일을 강조하고 싶다면 크든 작든 간에 성공 경험을 열심히 쌓아서 이를 근거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그 스타일이 먹혀드는 순간은 결국 '아, 저 사람이 추구하는 방식과 철학으로 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더라'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순간이거든요. 그리고 그 순간에는 '방식'과 '철학'도 부각되지만 무엇보다 그 사람에게 주목하게 되죠. 똑같은 방식과 철학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이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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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편으론 '그럼 성공하기 전까지는 내 스타일을 강조할 수 없다는 거냐'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이건 포인트가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아직 누구도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상태,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문제와 맞닥뜨렸다면 '스타일'을 강조하며 밀어붙일 게 아니라 '시도'라는 표현으로 합의를 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이는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려운 단계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이대로 한 번 시도해 보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설사 그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해도 이를 마냥 비난할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사전에 합의를 했고, 무엇보다 이건 누군가가 가진 개인적인 스타일 문제가 아니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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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프로의 세계, 협업의 세계에서는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당신(혹은 나)은 어떤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가?', 둘째 '그 스타일을 통해서 타인이 인정할 만한 성공 경험을 만든 적이 있는가?'라고 말이죠. 만약 첫 번째 질문에는 YES를 외쳤지만 두 번째 질문에서 말문이 막혔다면 우리는 첫 번째 질문에서 답한 그 '스타일'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나 스스로 말하는 '스타일'이 온전히 나에게서 비롯된 취향인지 아니면 운명을 함께하는 공동체에 좋은 방식과 철학을 뿌리내리고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