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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Mar 01. 2018

우리가 '윤식당'을 사랑하는 이유

자극적이지 않은 예능의 시대




윤식당 시즌2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삼시세끼'나 '꽃보다 시리즈'와는 또 다른 포맷의 재미를 선사한 시즌1에 이어 이번 가라치코 2호점도 호평 일색이다. 개인적으로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결방이라 아쉬웠던 예능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윤식당의 결방은 못내 아쉬웠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 아직 윤식당을 보지 않았다는 사람이 있으면 적극 권하고 다닐 정도다.

그 때마다 지인들은 내게 '그게 그렇게 재밌어?'라고 물었다. 그러면 나는 곧장 '응. 근데 막 엄청 웃긴다기 보다는~' 하고선 이런 저런 나름의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윤식당은 왜 이렇게 많은 팬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더불어 나는 왜 이 프로그램을 '최애 프로'라고 말하고 다니는지 정리해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이서진의 보조개나 윰블리의 미소를 뛰어 넘는 이 프로그램의 진짜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을 글로 엮어본다.




1. 자극적이지 않다. 


윤식당은 자극적이지 않은 예능이다. 시즌1도 그랬고 시즌2도 마찬가지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빵터지는 웃음 포인트나 페이스북 피드에서 레전드로 남을만한 장면은 드물다. 촬영지가 해외이긴 하지만 엄청난 자연경관도 입을 딱 벌어지게 하는 유명 관광지도 없다. 그저 조금 낯선 곳에서의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보여줄 뿐이다. 출연자들이 겪는 위기라는 것도 음식 주문이 꼬이거나 단체 손님 여럿이 방문하는 정도다.

하지만 매회 반복되는 익숙한 장면속의 소소한 변화들이 재미 포인트다. 매일이 비슷한 우리의 일상도 누군가 들여다보면 저런 느낌이겠구나 싶다. 그래서인지 프로그램의 호흡이 매우 편하다. 재미는 있지만 웃다보면 지치는 프로그램들도 더러 있는데 윤식당은 그냥 화면을 보면서 천천히 따라가면 된다. 재방송도 무의식적으로 계속 틀어두게 된다는 지인의 말에 크게 공감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2. 질문하지 않는다. 


윤식당엔 회당 평균 10개 남짓한 팀이 손님으로 찾아온다. 예능의 포맷으로 보자면 게스트가 10팀인 셈이다. 하지만 윤식당에선 출연자도 PD도 끼어들어 질문하지 않는다. 곳곳에 설치해둔 카메라에 담긴 이야기는 정말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전한다. 

잡채의 재료를 놓고 콩이냐 전분이냐로 토론을 벌이는 손님, 서툰 젓가락질을 서로 고쳐주는 커플, 초등학생 아들에게 여자친구와 헤어져서 어떡하냐고 걱정해주는 아빠까지.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마치 지하철에서 옆자리 사람들이 대화하는 걸 몰래 엿듣는 듯한 느낌이다. 게다가 여유로운 테이블과는 달리 주방에서 한바탕 전쟁이 치뤄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우리는 아주 작은 식당에서나마 전지적 작가 시점이 되어 볼 수 있는 것이다.  


밥 한끼 먹고 가는 사람들에게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3. 꾸준히 발전한다. 


식당에서 일을 해본 사람은 안다. 돌방상황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는지 말이다. 생각지 못한 단체 손님이 찾아오기도 하고 메뉴에 없는 음식이 되는지 물어보는 손님도 있다. 별 문제없이 납품되던 식자재가 펑크나는 날도 있고 온전히 조리사의 실수로 한 가지 재료를 빼먹은 채 요리가 나가는 아찔한 경우도 있다.

윤식당에서도 매일 작은 돌발 변수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출연자들은 어제의 경험을 통해 조금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출근길에 계란을 더 넉넉히 사서 준비하거나 조금이나마 깔끔하게 보이려고 위아래 복장을 통일하기도 하고, 원활한 서빙을 위해 주문 리스트를 수정하고 완벽한 분업화를 만들어 가는 식이다. 

극적이거나 대단한 변화는 아니지만 고개가 끄덕여질만한 발전이 매일 일어난다. 출연자들의 티키타카가 맞아 들어가는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미소짓게 만든다. 



4. 꼰대가 없다. 


우리는 꼰대를 싫어한다. 꼰대도 꼰대를 싫어한다. 그래서 꼰대는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한다. 

식당 주인인 윤여정과 알바생 박서준의 나이차는 41살이다. 형이라고 부르는 이서진과도 거의 스무살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윤식당을 보고 있으면 세대 차이라는게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재미를 위해서겠지만) 나이나 데뷔 시점으로 서열을 나누고 이른바 아재들이 더욱 '아재스러움'을 연기하는 다른 예능들과 비교되는 포인트다. 윤여정을 향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정유미에게서도, 박서준에게 툭툭 농담을 건네는 이서진에게서도 버릇없음이나 꼰대같음은 찾아볼 수 없다. 자연스레 시청자들은 출연자 개개인의 매력에 더해 그들의 관계가 가지는 조화로움에 빠져든다. 더불어 윤식당을 보며 우리 팀장님도 나를 저렇게만 대해준다면, 우리 팀 신입사원이 저 정도만 해준다면 이라는 생각이 드는것도 당연하다. 

   

윤식당을 보고 있으면 가끔 누가 주인이고 누가 아르바이트 생인지 헷갈린다.



5. '소확행'에 대한 대리만족이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단다. 먼 훗날 거창한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확실한 즐거움을 추구하겠다는 의미다. 자신을 위한 작은 선물하기, 일주일에 한번은 동네 예쁜 카페에서 여유로운 시간 보내기 등도 이와 결을 같이하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윤식당을 보고 있으면 '소확행'에 대한 대리만족이 있다. 물론 지구 반대편의 그림 같은 도시에서 내 레스토랑을 운영한다는 건 결코 소소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윤식당에서 느끼는 소확행은 오히려 훨씬 작은 일상과 맞물려 있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특별한 한끼를 위해 타국의 정육점에서 구입한 소꼬리로 꼬리곰탕을 만들거나 '오늘 장사는 여기서 접자'는 사장님의 말 한마디에 팔다 남은 재료로 직원 회식을 벌이는 정도다. 처음으로 목표 매출인 300유로를 달성해 환호하는 모습도 고생의 대가로 보너스 용돈을 받는 모습도 우리의 일상과 크게 떨어져 있지 않다. 

골목 끝에서 바다가 겨우 보이는 풍경을 두고 '나는 이 앵글이 제일 좋더라'고 말하는 윤여정의 마음이 백번이고 이해가 되는 이유다. 



6. 모두가 철학자다. 


술이 들어가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고 했다. 윤식당을 보다보면 '음식 앞에선 누구나 철학자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각각의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시시콜콜한 일상 생활을 이야기 하는 중에 간혹 쿵하고 마음을 건드리는 명언들이 쏟아져 나온다. 

'매달 4000유로를 번다고 해도 얼마든지 불행할 수 있어'라는 남자 손님의 말에도 '결국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고통은 외로움이야'라는 여자 손님의 말에도 우리는 큰 울림을 얻는다. 

그 울림이 '사랑하고 존경해마지 않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출연자 멘트로 시작하지 않아서, 프로그램의 마지막을 위해 멋진 풍경에 억지로 끼워넣은 자막이 아니라서 좋다. 특별게스트로 나온 석학 멘토가 반대편에 앉은 연예인 패널들에게 전달하는 교훈이 아니라서, 굳이 예능에서 공익이나 사회적 의미를 논하지 않아서 더 좋다. 

윤식당은 그냥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고 그 사람은 어느 누가될지 모른다는게 매력이다. 


어쩌면 우리도 일상 속에서 무심코 철학의 말들을 뱉고 있지 않을까.




윤식당 시즌2가 끝나면 꽤 허전할 것 같다. 기분 좋게 세탁된 앞치마를 정갈하게 개어 출근하던 정유미의 모습이 그리울 것 같다. 운동화에 에코백을 들고 가로등 켜진 언덕을 오르며 퇴근하던 윤여정의 발걸음도 자꾸 생각날 것 같다. 

원래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이 묘한 중독성이 있듯, 윤식당도 그렇다. 보고 있으면 참 별거 없는데 싶다가도 기분 좋았던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예능에서 실패할 일이 거의 없다는 음식, 여행, 도전이라는 이 세가지 요소를 가지고 저리 밍밍하게 끓여내도 되나 싶지만 윤식당은 나름의 감칠맛이 있다. 나는 그게 좋다. 더불어 부디 내 인생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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