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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Apr 28. 2024

얼리버드 티켓을 끊자! (자존감 이야기 ①)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90

01 . 

한 달에 한 번씩 진행하는 독서모임에서 다룬 이번 주제는 다름 아닌 '자존감'이었습니다. 뭐 세상에 무수히 많은 자존감 콘텐츠들이 있고 그 중요성 역시 온 사회가 나서서 지지하고 있는 요즘이라 또 뭔가 자존감에 관해 할 얘기가 더 있을까 싶으실 수도 있지만, 함께 같은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한 가지 키워드에 집중해 보는 과정은 늘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법이죠.


02 . 

이번 모임에서 제가 고른 책은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이었습니다. 이미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작품이기도 한 이 책은 '완벽주의'에 대한 개념을 부정과 긍정으로 나누어 접근함과 동시에 우리가 추구하는 완벽주의의 습성들이 얼마나 헛되고 공허한 것인지, 심지어 좋은 결과를 내는 방향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알려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번 모임을 준비하기까지 총 3번이나 읽은 책이기도 하죠.


03 . 

물론 저희 독서모임 멤버들 중에서도 이런 분들이 계셨습니다. '어? 저는 완벽주의랑은 거리가 먼 편인데요?'라고 말이죠.

그럴 수 있습니다. 오히려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향보다는 일단 빠르게 접근해서 러프하게나마 감을 잡고, 조금씩 수정하고 다듬으면서 계속 퀄리티를 높여가는 스타일도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모임 중간에도 잠깐 나온 얘기지만 '완벽함'이라는 건 그 반대말을 생각하기 참 어려운 용어이기도 했습니다. 게으름? 허술함? 부족함? 덜 완벽함? 이라는 단어들이 완벽함의 대척점에 있다고 하긴 또 좀 애매하니까요.


04 . 

대신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 번 던져볼 필요는 있습니다. 내가 모든 면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스타일은 아니더라도 다른 것들에 비해 유독 욕심이 나거나 애착(혹은 집착)이 생기는 부분이 있는지에 관해서 말이죠. '완벽주의'라는 단어를 들을 때는 조금 부담스럽게 들렸을지 모르지만 '내가 이거 할 때만큼은 좀 신경을 더 쓰는 편이지'라는 생각으로 추적 검사(?)를 해보면 또 의외의 완벽주의 성향이 발견될 수도 있으니까요.


05 .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자존감'이라는 것도 정말 다양한 형태로, 다양한 기준에서 분석되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한때는 자존감이라는 키워드에 빠져 시중에 나와있는 자존감 관련 도서들을 정말 많이 읽어본 편에 속하는데요, 그때마다 주워 담았던 건 '와 이렇게 살아야지!'라는 어느 확신의 단서들보다 '이런 순간이 온다면 이렇게 대처하는 게 더 낫겠다'라는 작은 힌트들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읽은 책의 80%는 모두 '자존감'을 다뤘다는 느낌보다 저자 개인의 인생 속에서 느낀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는 감상을 지울 수 없었고요....�)


06 . 

그럼 이제 저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져봐야겠죠. 나는 어떤 순간에 자존감이 높아질까에 대해서 말입니다.

제법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뭔가를 미루지 않고 미리미리 해둘 때 제 자존감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합니다. 이 말을 듣고 '너무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이게 그냥 '뿌듯하다', '기특하다', '후련하다' 같은 느낌과는 또 좀 다르게 '내가 나를 잘 활용하면서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도록 한다는 게 제가 인지하는 포인트인 것 같아요. 그게 제 자존감에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것 같고 말이죠. 


07 . 

그리고 꽤 오랜 시간 고민을 해보며 내린 결론이기도 한데, 저는 미리미리 하는 습관이 우리의 에너지를 세이브하는 데도 아주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늘 데드라인에 이르러서 긴급하게 일을 처리하다 보면 순간적인 집중력은 올라갈지 몰라도 대부분 제가 원하지 않는 환경에서, 예상치 못한 조건들을 감내해가며, 부족한 시간을 애써 쪼개어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니 미리미리 해뒀으면 70%의 에너지만 사용했을 일을, 마감에 임박해서 하는 순간 120%의 에너지를 쓰게 되는 거죠. 


08 .

물론 이런 벼락치기의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거봐. 나는 또 어떻게든 하긴 한다니까'라며 마지막 순간에 버저비터를 던진 농구선수에 본인을 빙의시키는 유형들도 존재하거든요. 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그게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고 동의해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정말 효율적인 방법이냐라고 하면 반문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일주일 전에 샀으면 1,000 원인 상품을 오늘 사는 바람에 1,200원이 되었다고 생각해 본다면 이를 두고 '스릴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사긴 산다니까'라고 할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죠. 


09 . 

그래서 저는 늘 '얼리버드 티켓'을 끊는 마음으로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갈 거라면, 설사 나중에 임박해서 취소하거나 수정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미리 싼값에 확보해둘 수 있는 건 끊고 봐야 한다는 입장이거든요. 제아무리 '마지막까지 좀 고민해 보겠어...'라든가 '아냐. 나중에 가서 진짜 좋은 자리가 나올지도 모르잖아? 아직 라인업이 다 공개된 것도 아니고...'라는 말로 본인을 위로한다고 해도 내 에너지를 아낀다는 측면에서는 미리 움직여서 뭐라도 해놓는 게 훨씬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10 .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구한다는 말은 너무너무 진부하지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비교적 싼값에 먹이를 구하고, 심지어 사람들 적은 한적한 시간에 여유롭게 쇼핑하며 구할 수 있다면 결국 우리 입에선 'why not?'이라는 말이 터져 나올 겁니다. 그러니 멋진 동기부여 콘텐츠들 속에서만 인생의 활로를 찾을 게 아니라 그저 미리미리 한 번 움직여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의 자존감은 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걸 기억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완벽주의에 대한 성향을 아주 떨쳐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불안한 완벽주의자'의 대열에선 벗어난 것 같거든요. 그렇게 '쬐금 여유로운 완벽주의 st'로 살아가는 것만 해도 충분히 괜찮다는 말을 전하며 글을 마무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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