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열문단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영 May 29. 2024

문제도, 대상도 떼어내주자 ('설득' 이야기 ③)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98

01 . 

'설득'에 관한 마지막 이야기를 한 번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사실 설득을 주제로 세 번의 이야기를 거쳐오는 동안 근본적인 궁금증을 가진 분도 계실 겁니다. 바로 '굳이 다른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건가?'란 물음이죠.

한편으론 오히려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사람은 죽어도 안 바뀐다', 심지어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데 설득이란 것도 대상 봐가면서 해야지'라는 말에 저도 일정 부분 동의하거든요.


02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거스를 수(?) 없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당장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혹은 내가 하는 업무에서 반드시 설득을 해야만 하는 대상들이 있고 가족이나 친구, 연인처럼 내가 아끼는 만큼 설득의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적어도 여러분의 생계와 직결되어 있거나 혹은 여러분이 꼭 설득하고 싶어 하는 관계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라는 걸 감안하고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03 . 

우선 오늘도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해 드리죠. 바로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을 이끌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일화입니다.

"대통령이 되면 하루에 수십 명씩 제 방에 찾아와 '대통령님. 큰일 났습니다'란 말부터 시작하죠. 그럼 저는 그 사람의 첫 문장을 듣고서 일단 웃어요. '하하. 프레드. 난 또 진짜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잖아요. 걱정 말고 일단 앉아요. 뭐 좀 마시겠어요? 차를 드릴까요? 아니면 커피?'

그런 다음 천천히 얘기를 듣고 나서 말하죠. '프레드. 당신이 왜 이 사안을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저도 충분히 이해가 가요'라고 말이죠. 절대 '그거 정말 심각한 사안이군요'라고 말하지 않아요."


04 . 

에피소드만 놓고 본다면 인자하고 배려심 깊은 리더와의 대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안에는 설득에 관한 꽤 깊은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여러분도 자주 인지하실 테지만 회사에서든 일상에서든 특정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때는 더없이 좋은 사람인데 일단 이슈가 생겼다 하면 꽤 예민하고 자기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유형의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럴 땐 시야가 좁아질 대로 좁아져서 좋은 결정을 내릴 확률도 줄어들고 주위 사람을 대하는 애티튜드 또한 형편 없어지기도 하죠.


05 . 

그럼 이런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과 마주했을 때 우린 어떤 노력들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그들이 나와 꽤 중요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사람이거나 내가 너무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요? 사실 이건 쉽게 답하기가 어려운 문제이기도 합니다. 

저는 우선 그 사람에게서 그 문제를 떼어내 주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참모에게 보고를 받을 때처럼 '그거 정말 큰일이군요'라며 사안을 덥석 물기보다 '당신이 왜 이토록 그 사안을 중요하게 받아들였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라는 뉘앙스를 주는 거죠. 그럼 상대 역시도 '내가 지금 이 문제를 들고 있기 때문에 나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걸 꽤나 빨리 인지할 수 있습니다.


06 . 

더불어 이런 자세는 문제를 가운데 두고 서로 대치하듯 마주 보는 형국에서 벗어나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이 문제를 향해 같은 방향에 서는 듯한 느낌을 주게도 만듭니다. 즉, 우리가 서로 싸워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문제를 풀어야 하는 관계라는 걸 인식시켜주는 거죠. 그렇게 하면 일단 상대를 설득함에 있어서도 협력적인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음은 분명합니다. 사실 누군가에게 좋은 의견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는 데 있어서 이보다 좋은 무드도 없죠.


07 . 

그러니 설득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자세는 상대를 외롭게 두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너 그렇게 있어봤자 득 되는 거 하나 없어. 얼른 나에게로 와서 좋은 의견을 받아가렴'이라는 고압적인 자세로는 쉽게 해결될 문제도 점점 꼬이게 될 테니까요. 우선 그 사람이 무겁게 짊어지고 있는 문제를 내려놓도록 도와주고 그 사람 옆에 서서 함께 해결 방안을 찾아주려는 노력이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걸지도 모릅니다.


08 . 

그래서 저는 '설득의 귀재'라거나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용어보다는 '설득을 위한 좋은 자세'라는 말을 훨씬 좋아합니다. 이건 내가 설득을 당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해 보면 쉽게 공감이 되기도 하는데요, 만약 나를 설득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이 세상 누구라도 설득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거나 혹은 나라는 사람의 특성과 심리 기제를 이용해 본인에게 유리한 입장을 취하려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인정하고서라도) 조금은 부담되거나 불편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09 . 

하지만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 최소한 이런 마음가짐과 태도 정도 정도는 갖출 필요가 있다'라고 생각하며 준비한 사람에게는 저도 모르게 일정 부분 마음을 좀 내어줄 것 같아요. 꼭 진정성이나 매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봐야겠다는 작은 움직임 정도는 이끌어낼 수 있을 테니 말이죠. 저는 그게 설득의 기본이고 지금껏 세 번의 글에 걸쳐 이야기한 설득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도 생각합니다.


10 . 

글을 마무리할 시점이 되니 문득 여러분 각자가 정의하는 '설득'이란 무엇인가가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이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어떻게 느껴질지, 타인과의 관계에서 설득을 어떻게 활용하고 또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실지 모르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좋은 설득이란 무엇인가를 한번 고민해 보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결국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고, 함께하는 그 무리 속에서 타인을 설득해야 하는 순간은 언제, 어떤 형태로든 맞이하게 될 테니까요 여러분만의 작은 관점을 하나 가지고 계신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부터 지는 게임을 시작하지 ('설득' 이야기 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