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101
01 .
아시는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제가 온라인에 쓰는 글들 중에는 지금처럼 딱 10개의 문단을 포맷으로 쓰는 글이 있습니다. 1부터 10까지 넘버링까지 해서 차곡차곡 써 내려가는 이 글들에 저는 '열문단'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는데요, 뭐 거창한 뜻을 가진 것은 당연히 아니고 말 그대로 '열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이라는 뜻에서 열문단이라는 제목을 지어본 것입니다.
02 .
그리고 지난번 업로드 한 '공을 받고 싶다면, 공을 받을 준비를 해야지'란 제목의 글이 정확하게 열문단 100번째 글이었습니다. 그냥 이런 포맷으로 글을 한 번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작은 행동이(?) 백 번째 글로 이어지게 된 것이죠. 자랑이나 자축을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고 아주 간혹 이 열문단이라는 글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열문단 100번째 글을 작게나마 기념하는 차원에서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싶습니다.
03 .
물론 이런 포맷은 과거 페이스북에서 한창 유행하던 포맷임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정확히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개발자들이 미디엄과 같은 마이크로 블로그들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글을 쓰면서 넘버링을 하던 것이 각종 SNS로 전파된 것이라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이렇게 넘버링을 해서 글을 쓰는 행위는 아리스토텔레스 시절부터 강조된 레토릭 기법 중 하나였다고 하니 사실 포맷에 대한 출처를 이야기하는 것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04 .
대신 왜 꼭 10개의 문단으로 한편의 글을 완성하느냐고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이유로 두 가지를 꼽는데요, 우선 첫 번째는 '온라인에 쓰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뜬금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사실 온라인에 글을 쓰다 보면 책 한 권을 써 내려가거나 아티클 한편을 완성할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당연히 이 작업들도 PC나 노트북으로 하고 심지어 워드 대신 클라우드 오피스를 이용할 때가 많아 큰 차이가 없는 작업 환경임에도 묘하게 그 뉘앙스가 다르긴 하거든요.
05 .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온라인에 쓰는 글은 그 글 한편이 하나의 독립된 메시지로 존재할 확률이 훨씬 크기 때문에 문단 문단마다 의도적으로 흐름을 끊어주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야 읽는 사람도 방향을 잡기 쉽고 쓰는 저 역시 허둥지둥 헤매며 글을 쓰는 걸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도 누군가에게 보여야 하는 글이라면 반드시 읽는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하는 게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을 유난히 싫어하는 저인만큼 휘발성이 높은 온라인 매체의 글이라도 조금이나마 체계를 갖춘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발현된 것은 아닐까 싶네요.
06 .
다른 하나의 이유는 바로 '효과적으로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는 생각에서'입니다. 좀 웃기지만 열문단으로 글을 쓰며 얻는 가장 큰 장점은 사람들이 '이제 곧 이야기가 끝나겠구나'를 감지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1부터 10까지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5정도를 읽었을 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반 정도 흘렀음을, 8정도 됐을 땐 슬슬 마무리가 되어감을 무의식 속에서 느끼게 되거든요. 그러니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글이 어느 정도에 와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하고, 저 역시 이쯤에선 이제 이런 이야기들로 풀어가야 하는데.. 라는 셀프 체크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게 또 하나의 큰 장점이라고도 보고요.
07 .
그리고 가끔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혹시 열문단이라는 이름으로 책이 나오나요? 여기에 올리신 글들을 묶어서요?'라고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건 아닙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조금씩 원고를 쓰며 정리하고 있는 작품이 있지만 저는 온라인에 올린 글을 그대로 오프라인 활자로 옮기고 싶진 않더라고요. 이건 어디까지나 온라인 플랫폼에 맞춰 쓴 글인 만큼 혹시나 같은 주제를 다루게 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책을 위한 글을 써 내려갈 예정입니다. 당연히 '열문단'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것 같지도 않고요.
08 .
대신 앞으로도 꾸준히 온라인을 통해서는 열문단의 글들을 써볼 생각입니다. 100개의 글을 쓰다 보니 저도 이제 이 포맷이 꽤 익숙하고 반면 크게 지루하지도 않거든요. 오히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편안함 속에서 또 작은 긴장감을 가질 수 있는 방식이라 단번에 다른 포맷으로 전환할 확률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더 다행인 건 10개의 문단을 채우는 게 미친듯한 고역처럼 느껴진다거나, 그냥 다섯 개만 쓰고 '오문단'이라고 할걸.. 같은 생각이 아직 들지 않는다는 것이겠죠..)
09 .
그래서 100번째 글을 쓰고 나서는 이제껏 쌓아온 열문단 글의 제목들만 모아서 한 번 주욱 읽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동안 제가 100개의 글을 통해 했던 생각들이 꽤 선명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어느 순간엔 제법 내가 힘들었었나 보다라고 느껴지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꽤나 빡침이 있었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우고 싶을 만큼 싫거나 오글거리는 글은 없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그 글 역시 제가 쓴 글이기에 있는 그대로 애정 해주는 게 맞는 거란 생각이었고요.
10 .
10개의 문단으로 100개의 글을 썼으니, 총합은 1,000개의 문단일 거고.. 평균 한문단에 300자 정도의 글을 쓰니 아마 그동안 제가 쓴 글이 30만 자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숫자로 표현하는 게 큰 의미가 있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자 한자 눌러쓴 글이 이런 데이터로 쌓여가는 걸 보는 것도 일상 속 작은 뿌듯함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그게 계속 글을 쓰게 만드는 힘인 것도 같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 글을 읽어주시고, 좋아해 주시고 또 응원해 주시는 분들께 이 글을 빌려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더 열심히 열문단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이 말을 드리고 싶어 오늘의 글을 썼습니다....... : ) 그럼 저는 또 새로운 글감을 고민하러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