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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Jun 11. 2024

이왕이면 '생산적인 일상'이 낫지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102

01 . 

의외로 세상에는 다작을 하는 크리에이터들이 많습니다. 이제는 일반적인 말이 되었지만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작은 영감의 불씨라도 살리려 애를 써라'는 말은 위대한 작품들이 다작의 결과물로서 탄생함을 짚어주는 말이기도 하죠. 

그래서 다작 작가들의 어록 또한 적지 않은데요, 미국의 대표적인 다작 작가인 소설가 '스티븐 킹'은 '크리스마스와 생일을 빼고는 매일 글을 쓴다'고 했고, 하도 글을 많이 써서 책공장이란 별명이 붙은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작품을 쓴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기보단,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작품이 되어있더라'란 말로 유명합니다. 


02 .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의 말입니다. 

'나는 생산하는 삶을 사랑한다. 책을 읽는 것이 즐거우냐 아니면 쓰는 것이 즐거우냐고 묻는다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을 때는 누군가가 생산해 놓은 것을 소비한다는 느낌이지만 글을 쓸 때는 누군가의 소비를 위해 내가 직접 생산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의 모든 소비는 나의 생산을 위한 것이다.'


03 . 

저는 이 말이 다작에 대한 노력을 새롭게 조명하게끔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일을 소비와 생산으로 딱 구분 지어 바라보기는 어렵겠지만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소비에 초점이 맞춰져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직장을 다니거나 학업을 하는 시간을 제외한 일상의 순간을 떠올려보면 이런 기억들은 더욱 또렷해지죠. 누군가가 만든 콘텐츠를 보거나, 누군가가 기획해놓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누군가가 마련한 경험에 몸을 맡기는 일은 대부분 소비의 측면으로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04 . 

한편으론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내가 일하는 시간이 온전한 생산의 시간이었다면 그 외 일상은 소비를 하며 즐기는 게 밸런스가 맞는 삶이지 않냐고 되물을 수 있으니 말이죠. 특히 우리나라처럼 일터에서의 생산성에 높은 방점을 찍는 환경이라면 사실 회사에 다니거나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생산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저도 사실 어떤 날은 세상 일을 모두 내가 다 한 것만 같은 지친 마음으로 퇴근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05 .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일상생활 속에서의 생산성을 확보하는 것도 참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더 중요한 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소비하는 수준에만 그치지 말고 새롭게 변형하거나 내가 직접 그 콘텐츠의 공급자가 되어봄으로써 또 하나의 생산 동력을 마련해 보는 것이죠. 뭐든 가장 가까운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쉽고도 간편한 법이니까요. 

제 주변만 해도 그런 분들이 의외로 적지 않습니다. 음식을 좋아하는 지인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직접 푸드 관련 뉴스레터를 제작해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고, 영화를 사랑하는 지인 한 분은 며칠 전 영화 콘텐츠를 소개하는 1인 팟캐스트를 시작했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이런 모든 시도가 엄연히 내 일상을 훨씬 더 애정 하게 만드는 긍정의 생산들이라고 생각합니다. 


06 . 

물론 이런 삶을 추천해도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은 두 가지 이유를 들죠.

하나는 '나는 보는 것은 할 수 있는데 만드는 재주는 없다'는 겁니다. 아마 이 말을 듣고서는 '오! 나도 그런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으실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건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저는 생산하는 삶을 강조했지 그 결과물이 최상의 수준을 갖춰야 한다거나 특별한 역량을 동원해 생산력을 발휘하라고 말씀드린 적이 없거든요. 아니 오히려 그런 마음으로 접근했다가는 며칠도 못가 쉽게 실망하고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러니 '잘 하고 싶은 마음'은 버리고 '그냥 해보는 마음'을 가지는 게 생산적인 삶을 사는 첫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07 . 

다른 하나는 '한두 번은 해보겠는데 지속할 소스가 없다'는 겁니다. 이 말 역시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맛집 블로그를 시작해 보겠다고 호기롭게 첫 포문을 열었는데 몇 개 포스트를 올리고 나니 왠지 다른 사람들이 다 간 곳만 재탕해서 리뷰하는 것 같고, 나만의 것을 찾자니 그건 또 한계가 있는 것 같고, 매번 비슷한 표현에 비슷한 문장들만 나열하고 있는 것 같고, 찍은 사진도 다 거기서 거기 같은 느낌이 드는 거죠. 그리고 이건 비단 블로그뿐 아니라 글이든 영상이든 음악이든 뭐든 간에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겪는 숙명의 고민과도 같습니다. 


08 .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큰 변화를 바라기보다 아주 작은 것들을 조금씩 바꿔간다는 생각으로 지속력을 발휘하는 게 좋습니다.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는 생각으로 쉽게 포기하지 말고 내 눈에 비슷하게 보이는 콘텐츠라도 계속 생산하면서 '뭔가 조금이나마 다르게 변주를 줄 부분이 없는지'를 찾는 게 디테일을 보완하는 나만의 역량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의외의 순간에서 터지는 콘텐츠가 하나둘씩 발견되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콘텐츠를 생산하는 나의 능력 역시 쑥 성장하기 마련이니까요. 


09 . 

예전에 을지로에 있는 한 꼬리뼈찜 가게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요, 거기서 어느 나이 지긋하신 회사원 몇 분이 자리를 잡더니 이내 술을 주문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흔하디흔하게 볼 수 있는 술자리의 모습이었는데 그중 한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야. 오늘은 우리 생산적으로 마시자. 어제는 쓸데없는 얘기만 한가득했으니까 오늘은 다들 좋은 얘기, 도움 되는 얘기해."


10 . 

저는 그 발상이 정말 신기하고도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귀를 쫑긋 세웠을 땐 딱히 생산적인 대화인 것 같지 않은 말들이 오고 갔지만 그런 마음가짐으로 술자리를 시작하는 장면은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으니까요, 술도 생산적으로 마실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거죠.

'안 그래도 피곤한데 매사 생산적으로 살 필요가 있나' 싶으신 마음도 일견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어디 소비하는 삶은 안 피곤한가요.... 사실 따지고 보면 소비든 생산이든 모두 에너지가 드는 일이고, 어떤 식으로든 나의 집중력과 몰입을 일정 부분 상납해야 하는 대상이라면 꼭 소비만 하며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러니 내일부터라도 작게나마 일상의 순간들을 조금이라도 더 생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뭔가를 찾아보는 노력을 해보는 건 어떨까 싶네요. 의외로 생산적인 삶이 우리의 인생을 더 재미난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도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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