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영 Apr 06. 2020

실례지만 저도 '밀레니얼'입니다...

1985년생 '아슬아슬한 밀레니얼 세대'의 고백기 

마케팅이나 기획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용어 중 하나가 '밀레니얼 세대'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엔 소비자를 파악할 때 좀 더 촘촘하게 타깃을 나눠가며 새로운 집단을 발견해 내는 시도를 자주 했다면, 근래 2-3년 사이에는 '밀레니얼 세대'를 타깃으로 설정하는 일이 열에 여덟, 아홉은 되는 느낌입니다. 발담그고 있는 업종이 IT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저 역시 하루에도 여러번 귀에 딱지 앉을 만큼 듣는 말입니다.


'거 요즘 밀레니얼 세대들은 뭘 좋아하나?'

'90년대생들은 이런 거 싫어한다며? 자칫하다간 꼰대 소리들을 거 같은데.'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그런 말들이 오고 가는 회의에서 각종 설전과 갑론을박으로 한 차례 전쟁을 치르고 잠시 숨고르기 시간이 찾아온 때였습니다. 


'그러고보니 OO님도 밀레니얼 세대 아니에요?'


네 맞습니다. 저도 엄연한(?) 밀레니얼 세대입니다. 

포털 사이트에 요약되어 있는 밀레니얼 세대의 구분을 보면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를 가리키는 말로,  정보기술(IT)에 능통하며 대학 진학률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라고 되어있으니 저도 그 축에 들어가긴 합니다. 

하지만 좀 애매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90년대 생들은 대학 다닐때 마주치기도 쉽지 않은 까마득한 후배들이었고 직장에 와서 만난 신입사원들은 그 갭이 더 크게 느껴지는 세대였습니다. 그렇다고 위에 있는 선배들과 같은 세대에 속하냐구요? 미안한 말이지만 대여섯 살 많은 선배들에게서는 세대차이라는 것을 심하게 느끼기도 합니다. (대학 입시 원서를 손으로 써서 현장 접수했다거나, 여자친구 집에 전화를 걸어 부모님께 여자친구 좀 바꿔달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넷플릭스의 역사 다큐를 보는 것보다 흥미진진합니다.)




이런 세대 또 없습니다. 



저는 1985년 생입니다. 올해 나이로 36세이죠. X세대라고 불리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이었던 형, 누나들 틈에서 소위 '신세대 문화'를 엿보며 자랐습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H.O.T 라는 그룹이 (그 때 표현을 빌리자면) 혜성처럼 등장했고, 우리는 아이돌 1세대를 경험하며 컸습니다. 



올해 나이 36세. 아슬아슬 했습니다.



'아이엠어보이, 유알어걸, 우리나라는 IMF'가 한 문장인 줄 알고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PC방이라는 새로운 문화공간에서는 어린아이와 양복입은 아저씨가 뒤섞여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너 학교 안가니?' 라고 물으면 '아저씨는 회사 안가요?' 라고 받아치는, 돌이켜보면 가슴 아픈 시대였습니다. 

2000년 1월 1일 0시, 밀레니엄 버그라는 정보통신 대란이 펼쳐지면 그 동안 우리가 쌓아온 시험성적들이 다 날아가버려서 모두가 0에서 부터 다시 시작할 거라는 궤변도 있었습니다. 한창 공부를 안했을 때는 그 말이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고등학교 2학년, 그 해 6월에는 세계에서 축구를 제일 잘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교실에선 액정이 컬러로 된 휴대전화를 산 친구가 있다는 말에 모두가 빙 둘러싸여 구경했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에.. 벨소리가 32화음이래.. 진짜 노래같이 들려' 



응답하라 1997의 실제 모델이 된 tvN 김란주 작가. 아마도 저희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출처 : 매일경제) 



'언어영역 O번 문제가 이상합니다!' 온라인으로 쏟아지는 학생들의 항의에 이기지 못해 수능시험 역사 최초로 '복수 정답'을 인정하는 이변도 펼쳐졌습니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에서는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발의되는 장면을 목격했고, 다음 해에는 한국인 최초 프리미어리거가 탄생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다녀온 뒤 복학한 첫 수업에서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경제학 원론을 담당하던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여러분은 이제껏 상상하지 못했던 시대를 살 게 될 것 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세요.'


대학교 3년 때 즈음해서 취업의 압박이 제 목덜미를 죄여오던 시절, 얼리어답터 친구 녀석이 아이폰을 샀다고 자랑했습니다. '아이팟 터치인데 미국에선 전화도 된대.' 그게 그 때의 아이폰을 설명하던 문장이었습니다. 문자 이용료가 들지 않으니 카톡으로 얘기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그렇게 카톡 조별 과제방 1세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취업 면접에서 '왜 싸이월드가 실패했을까요?'란 질문에 답해가며 마침내 바늘 구멍을 통과했습니다. 

 



그냥저냥 살아왔는데 저보고 밀레니얼이래요..



입사 후 8년이 지난 지금 어엿한 밀레니얼 세대의 형뻘(?)이 되었습니다. 윗사람들이 보기엔 '요즘 애들' 같고 90년대생이나 Z세대가 느끼기엔 아재에 꼰대같은 그런 애매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X세대의 끝물'과 '밀레니얼의 마중물'을 함께 마시며 헤쳐나가는 직장생활 역시 순탄하지 만은 않습니다. 


그러다 나름 친한 90년대생 후배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서 앞서 말한 고민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근데요 형. 막상 저희는 한 번도 밀레니얼이니, 90년대생이니 이런 거에 큰 의미를 둬본 것 같지 않아요. 그저 하루하루 살기 바쁘고 .. 그러다보니 지금 아니면 못하겠다, 이 때 아니면 말할 수 없겠다 싶은 것들을 그냥 하는 것 뿐이에요. 유명 일간지에 '90년대생들의 특징'이라며 분석해놓은 걸 보면 그게 더 올드한 느낌이에요. 공감도 안되구요. 저랑 제 친구들만 해도 그런 특징들과는 거리가 멀거든요.'


제겐 꽤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지금 윗 세대에서는 너희 세대를 분석하지 못해 안달인데 막상 본인들은 아무 느낌이 없다고? 우리는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꼰대의 늪에 빠질까 싶어 돌다리도 Z세대에게 물어가며 건너는데?' 후배와의 대화가 끝나고 한참을 멍하니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곰곰히 생각을 정리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펭수가 왜 좋아?' 라고 물으면 아저씨. '펭수가 이래서 좋아요'라고 답하면 젊은이. '엌ㅋㅋㅋㅋ 펭수 귀엽지 않아요? 너무 좋아'라고 하면 요즘 세대라구요.



'듣고보니 그러네. 내가 어릴 때 한 번이라도 우리를 X세대, N세대라고 규정하는 것에 관심을 둔 적이 있었나? 어른들이건 선배들이건 어차피 그들이 우리를 이해해주길 바라고 산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맞습니다. 저 역시도 제가 기성세대로 향해 달려가는 지금 즈음의 나이가 되기 전까지 한 번도 특정 세대를 이해하려고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속해있는 세대를 스스로 규정해보려고 시도한 적은 더더욱 없었죠. 그러고 나니 제가 몇년 간 가지고 있던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됐고, 저는 큰 의미 안두려고 합니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소위 말해 '분석'이라고 하는 것들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시중에 나와있는 많은 책과 기사들이 이른바 '아재'가 어린 세대를 분석해서 다시 '아재'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것들이었습니다. 책 몇권만 읽어봐도 한계점은 분명히 드러나더군요. 물론 각 분야의 전문가들 의견이니 참고도 하고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기대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섣부른 특징들로 그들과 그들이 아닌 세대를 구분짓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80년대생부터 2000년 생이면 20년안에 태어난 세대 전체를 일컫는 것이나 다름 없으며, 모두가 알다시피 그 20년 동안은 우리 인류가 살아온 이래 가장 큰 변화를 겪어야 했던 시기였습니다. IT에 능하고 학습 환경이 좋은 세대라는 건 밀레니얼 만의 특징이 아니라 앞으로 명명되어질 다른 세대에게도 더 뚜렷하게 나타날 현상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니 섣불리 90년대생, Z세대 등을 의식해 그들의 특징을 고정관념화 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즐겨보는 TV프로그램 중에 유재석, 조세호가 진행하는 '유퀴즈 온더 블록' 이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아마도 사전 협의 되지 않은 일반 시민들과 즉석 토크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길가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마저도 저마다의 의외성이 너무나 뚜렷합니다. 

비틀즈 음악을 비롯해 올드팝을 즐겨 듣는다는 중학생, 차 대신 오토바이 한 대로 신혼생활을 즐긴다는 커플, 철학적인 고민이 많은 초등학생과 여전히 아이처럼 순수한 문구점 할머니까지. 미세한 렌즈로 들여다 본 세상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예측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의 대다수를 하나의 타깃으로 묶는다니 맙소사. 지금까지 제가 어떤 타깃에 매달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대가 아니라 사회적 특징이 훨씬 중요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사람의 인생에서 성격이 크게 변하는 지점이 여러 번 나타날 수 있는데 이는 후천적인 환경, 특히 사회적인 경험이나 분위기에서 기인될 확률이 높다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특정한 사건이 어린 아이부터 나이든 어른까지 각기 다양한 임팩트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정도나 경험의 차이로 인해 특정 가치관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에이 글로벌 금융위기 터졌을 때 넌 어렸잖아. 야 난 그 때 취준생이었을 때라고.' 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들에게 하나의 사건은 개개인의 삶에 모두 영향을 주는 법이니까요. 


몇 달이 지났을까요? 저는 이제 타깃을 '밀레니얼 세대'로 한다라는 말이 나오면 필요에 따라 반기를 듭니다. 차라리 특정 타깃이 아닌 '대중적인 상품이나 서비스'라고 명명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라거나 의미 있는 속성과 공통점을 찾을 때까지 타깃을 훨씬 좁혀가자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90년대생'과 너무 거리를 두지 않습니다. 그들이라고 해서 밥대신 데이터를 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자마자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세상을 마주한 것도 아니니까요. 


대신 훨씬 많은 얘기를 듣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또 '왜?'라는 질문은 잠시 넣어두고서 '아 저 사람은 저렇구나'라고 생각하는 방법을 체득 중입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조금씩 동생들과 후배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A가 점심식사는 매일 컵라면으로 때우면서 구찌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것도, B가 혼자사는 원룸을 두고서 매달 호캉스를 즐기러 가는 것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도 제가 운동하러 가야하니 맥주 번개에 참가하기 힘들다고 거절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테니까요. 

어쩌면 밀레니얼 세대는 나이나 속성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정말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마음가짐이자 문화코드를 공유하고 있는 집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가볍습니다. 젊은 세대에 조금이라도 끼어들고 싶은 몸부림이라고 지적해도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다 트렌드 못따라간다며 면박해도 괜찮습니다. 제가 N세대로 불릴 때의 어른들이 얼마나 우리 맘에 쏙 드는 상품과 서비스를 선보였는지 돌이켜보면 고개가 절로 저어지거든요. 


그렇게 저는 요즘 '밀레니얼'도 '90년대생'도 아닌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가끔 '사과문'을 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