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의 '사용자를 위한 사과문' 쓰기
며칠 전 또 사과문을 썼다. 사실 흔해서는 안되는 일지만 나에겐 비교적 흔한 일 중 하나다. IT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특히 기획자나 PR홍보, 마케팅 직군으로 일하다보면) 사용자들에게 사과를 해야할 일이 잦다.
이유는 다양하다. △버그나 업데이트 오류 △이벤트, 오프라인 행사 등에서의 변경 내용 안내, 그보다 조금 심각해지면 △과금 유저나 광고주에 대한 보상, 더더욱 심각해지면 △부적절한 언어 사용이나 행실로 인해 국민 감정에 반하는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해야할 일이 생긴다.
그렇다.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5G 기술을 활용해 자동차끼리 연락하며 스스로 운전을 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도 생각보다 오롯이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것들이 많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사고가 생기고, 말 한마디 혹은 글자 한자 잘못 전달해 생기는 문제도 부지기수다. 그럴 땐 어김 없이 우리의 사용자들을 향해 고개숙여 사과해야 한다.
마케터라는 직군은 논란의 중심에 서기 쉽다. 경쟁자들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멋진 이벤트가 필요하고 희번득한 광고 문구가 있어야 하기에 사전에 모든 위험요소를 제거한 채 마케팅 소재를 마련하는 것이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또한 A라는 마케팅 실행안과 B라는 마케팅 실행안이 서로 부딪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설사 천재지변으로 인해 사고가 생겼다고 한들 사용자나 소비자가 이해해주겠지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사과'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말이다.
근래에 마케팅 업계에서는 작지 않은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그동안 키치한 마케팅의 표본으로 여겨진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에 대한 잡음이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몇 가지 논쟁들이 있었지만 소비자들을 가장 언짢게 한 사태는 이른바 'OO가 쏜다'라는 쿠폰 마케팅이었다. 평소 배민 쿠폰을 받기 위한 사용자들의 경쟁은 매우 치열한데, 배민 측에서 지난 몇년 동안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에게 해당 쿠폰을 무분별하게 발급해줬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형평성 논란이 제기된 것이다. 업계의 관행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사용자들의 입장에서는 나름 스스로를 배민의 열혈팬이자 충성고객이라 생각했는데 허탈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관련 사과문을 배민 앱이나 SNS가 아닌 가장 접근성이 낮은 블로그에만 게시하여 '사과를 받으려 사과문까지 찾아다녀야 하나?'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관련 기사 링크 >
다른 하나는 의류쇼핑몰 '무신사'의 마케팅 문구 사태다. 사실 이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문제다. 나 스스로도 기사를 접하고 두 눈을 의심했으니 말이다. 무신사는 자사의 SNS에 빨리 마르는 속성건조 양말을 홍보하며 '속건성 책상을 탁쳤더니 억하고 말라서'라는 홍보문구를 사용했다. 현대사에서 가장 뼈아픈 사건 중 하나를 마케팅 문구로 사용한 것도 모자라 이를 희화화 하는 듯한 표현까지 써댔으니 사용자를 넘어 이를 접한 국민이 느꼈을 반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관련 기사 링크 >
위 두 업체는 당연히 모두 사과문을 발표했다. 논란의 초점과 사건의 경중이 엄연히 다르지만 오늘은 두 업체가 보인 '사과의 방식'에 대해 한 번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배달의민족 측은 '그 동안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들에게 쿠폰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 고등학교, 대학교 등에도 많이 협찬했다. 따라서 이렇게 제공되는 쿠폰이 일부를 위한 특혜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미처 생각지 못했다' 라는 입장을 밝혔다.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배민 측 입장이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배민의 가장 큰 실수는 사용자가 느낀 실망감과 허탈함에 대해 함께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특혜냐 아니냐'에 대해 팩트체크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배민을 사랑하고 열심히 써온 사용자들이 느꼈을 허탈함을 알고 있는가'라는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다. 해당 이벤트를 중지하고 사과문을 올리는 것과는 별개로 소비자들의 실망감을 다시 응원의 목소리로 돌리는 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
반면 무신사는 사과를 넘어 사죄를 해야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조금은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인터넷에 '무신사'라는 검색어를 쳐보면 알겠지만 사과문 발표 이후로 '빠르고 진정성 있는 대처에 화가 누그러졌다', '사과의 정석을 보여줬다' 등의 선처(?)의 의견이 많이 보인다. 사건 발생 이후 무신사는 가장 큰 상처를 입었을 해당 민주열사 기념사업회와 유가족을 방문해 사과하고 후원금 전달 의사를 비쳤고 (하지만 이는 기념사업회 측에서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사건의 경위를 파악해 담당자를 징계한 뒤 컨텐츠 검수 인력을 추가 배치하였으며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유명 역사 교사를 초빙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사과에 완벽이 어디있겠냐만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앞서 말했듯이 두 사건은 본질과 의미가 많이 다르다. 하지만 사과의 방식에선 더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단순히 무신사의 대처가 적극적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위해 그동안 사과문을 수도 없이 써본 내 개인적인 경험과 더불어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아마도 필자와 유사한 직군이나 업계에 있는 분들이라면 사과문을 써야할 일이 많을 수 있으니 부디 이 글이 여러분의 업무에 조금이나마 도움되고 실질적으로 사용자와 소비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이롭게 작용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자 그럼, 사과는 어떻게 해야할까?
사용자들은 '왜 이런일이 생겼는지'를 궁금해한다. 작은 버그나 접속 장애처럼 일시적인 오류든, 사용자를 불쾌하게 만드는 가볍지 않은 실수든 간에 사태가 발생된 이유를 찾아 설명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 때 섣불리 원인을 단정해서는 안된다. 대부분 시간과 급한 마음에 쫓겨 일단 사용자들을 안심시키는게 먼저라는 생각에 성급히 사태의 원인을 규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왠만하면 전체 그림이 다 파악되고 명확한 전후 관계가 선명해질때까지 촘촘히 들여다보는게 가장 중요하다.
가장 나쁜 방법은 묵묵부답으로 사용자나 소비자의 원성에 대응조차 않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사태 파악이 우선인 것과 현 상황을 설명해야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그러니 솔직하게 현재 우리는 어떤 상황이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대처해나갈 것인지를 가급적 자주 업데이트하여 알리는 것이 좋다. 평소에는 사용자들과의 소통을 제일 먼저라고 말하던 회사들이 좋지 않은 사태가 터지면 늑장 대처로 인해 원성을 사는 모습을 적잖이 볼 수 있다. 어쩌면 사과가 필요한 순간이야말로 가장 소통이 필요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재난시에만 컨트롤 타워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 간혹 재난에 가까운 사태가 터지기도 한다.) 사건의 성격을 떠나 사용자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이를 전체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한다. IT 업계에 있다보니 심심치 않게 업데이트 오류나 장애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아주 간혹이긴 하지만 장애를 담당하는 개발자들이 SNS 등에 직접 댓글을 달다가 사건이 더 커지는 경우를 목격하곤 했다. 한 번은 장애와는 무관한 오류를 지적하는 사용자에게 이를 설명해주려다가 대화가 더 늪으로 빠지는 순간도 있었다. 오류가 난 상황도 짜증나는데 자꾸 담당 프로그래머가 개발 지식만 동원해 설명하니 더 화가 난 것이다. 그러니 가능한 커뮤니케이션 채널과 담당자는 일원화하고 이들이 각종 연결고리들을 관리하며 사용자와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일관성 있다. 더불어 각기 다른 성격의 마케팅 채널들이 있더라도 사과문에 대한 톤앤매너는 공통성을 갖는 것이 좋다.
유료과금이 붙은 모델은 비교적 '보상'이 순조로운 편이다. 하지만 무료 서비스인 경우나 그보다 훨씬 복잡한 사건이 터졌을 경우에는 섣불리 보상을 논했다가 역풍을 맞기 쉽다. 누차 강조하지만 사용자나 소비자는 '왜 이런 일이 발생했고, 현재 어떻게 조치되고 있고, 향후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가'를 가장 궁금해한다. 그런 와중에 화를 잠재워 보겠다며 보상 카드부터 들이 밀었다간 더 큰 이미지 타격을 입게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유료과금 체계가 없는 서비스에서의 보상은 형평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에 그런 선례가 있었는지 확인하고 앞으로도 유사한 일이 발생할 경우 동등한 보상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부터 파악한 후 검토해야 할 문제다.
최근 각종 사과문에 많이 등장하는 두 가지 스타일의 변명이 있다. '담당자 개인의 실수였다'와 '해당 작업물은 대행사에서 작업한 것이다'라는 식이다. 내부의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공개한다는 것에는 사실 이견이 없다. 다만 사과문의 늬앙스가 마치 '우리라고 하기엔 저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어찌되었건 사용자와 소비자는 우리 서비스, 우리 브랜드를 믿고 선택한 사람들이다. 가뜩이나 불편해져 있는 마음에 더 큰 상처를 내지 말자. 어떤 식으로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가장 속상한 순간은 잘못한 사람 따로, 사과하는 사람 따로일 때이다. 이를테면 업데이트 장애를 유발한 프로그래머는 'OOO으로 인해 장애가 발생했다'고 버그리포팅을 하면 끝이다. 대신 마케터와 PR 담당자는 이를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One-team으로 일하는 조직에서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지만 사태의 책임자를 비롯해 모두가 그 심각성을 공유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경각심을 갖는 건 중요하다. 그러니 사건이 발생하면 전체 조직원에게 이를 상세히 공유하고 해결된 후에는 회고의 시간을 마련하여 유사한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얼마전 유투브 인기 영상 리스트에 들어가니 '사과드립니다'란 제목의 영상이 수도 없이 많이 보였다. 호기심에 눌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건 사과를 위해 영상을 찍은건지, 영상 소재를 위해 사과할 만한 일을 벌인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댓글엔 '어그로'라는 단어가 수두룩했다. 내가 다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글의 도입부에도 말했지만 사람이 하는 일에서는 (어쩌면 반드시) 실수가 발생한다. 의도하지 않아도 생기고 더 잘해보려는 마음이 앞서도 생기며, 심지어 사태를 수습하려다 더 큰 눈덩이를 굴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어떠한 순간에든 그 일이 없었던 일인냥 감추거나 축소하거나 왜곡해서는 안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정성을 담아 사태를 파악하고 차근차근 그리고 이성적으로 대응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신이 아닌 이상 그럴 수는 없기에 우리는 늘 준비해야 한다. 얼마나 힘들게 설득해서 데려 온 사용자인지 생각해보라. 또한 우리의 제품과 서비스에 얼마나 큰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는 소비자들인지 생각해보라. 이들을 한 순간의 어리석은 대처로 모두 떠나보내는 실수는 하지말자. 그들이 용서하지 못하는 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그 실수에 대처하는 미흡한 자세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