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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Apr 08. 2018

야구와 마케팅, 은근 닮았다.

야구의 계절이다. 

누군가는 야구의 계절이 가을이라 하겠지만 야구는 단연 봄이 제철이다. 날이 풀려 야구장으로 나들이 하기 좋아서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응원하는 팀에 대한 설렘이 아직까지는 용납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잘하겠지. 그래.. 올해는 다르겠지. 

새 둥지를 찾아간 선수들의 활약을 보는 것도 재미나고 MLB에 등장해 만화같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의 하이라이트를 보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야구 몰라요'라는 어느 캐스터의 말처럼 한 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스포츠 중 대표적인게 야구이지만, 역시 야구는 알면 알 수록 재밌다. 


야구는 참 많은 것에 비유된다. 

야구를 인생에 빗대기도 하고 사랑에 빗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업이 업인지라 야구가 마케팅과 닮아있다고 생각할 때가 참 많다. 1년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 동안 매일 같이 하는 스포츠라 하루하루 관심을 끊기 어려워서 그럴 수도 있다. 혹은 하루 동안 쌓은 업무 스트레스를 풀려고 맥주 한캔 따서 야구를 보고 있노라면 새삼 오늘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서 일수도 있겠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어린 시절부터 좋아한 스포츠와 나름 오랜 시간 발을 담가온 업에 대한 공통점을 개인적인 생각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1. 누가 뭐래도 '타이밍의 예술'이다. 


그렇다. 야구는 타이밍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작게는 타자가 스윙을 해 공을 맞추는 타이밍부터 크게는 감독의 투수 교체 타이밍, 상대팀과의 3연전에서 오늘의 선발을 구성하는 타이밍까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무척 많다. 그 뿐인가. 야구의 숨은 재미인 도루도 타이밍이요, 이를 잡는 견제도 타이밍이다. 오히려 야구에서 타이밍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을 찾기가 더 어렵다. 


마케팅을 하다 보면 때를 놓쳐 탄식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먼저 했어야 하는데 경쟁사가 밀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정말 잘 준비해놓은 소스들이 원치 않은 이슈를 만나 빛을 발하지 못할 때도 있다. 과거처럼 전통매체에 의존하던 시대가 아니기에,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거미줄처럼 엮여있는 매체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하지 못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경우도 있다. 최대한 데이터와 과거 사례에 근거해 좋은 타이밍을 잡고자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누군가는 '마케팅은 타이밍이 전부'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비약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2. 한정된 자원으로 승부를 봐야한다. 


야구 팬들의 바람은 한 가지다. 우리도 저 팀처럼 멋진 투수들을 가지고 싶은 것. 어쩌면 그게 다다.

그들로 늠름한 5선발을 꾸린 다음, 선발의 부담을 덜어줄 화려한 불펜진을 확보하고 매 공마다 시속 150km의 돌직구로 타자의 방망이를 끌어낼 마무리 투수만 있으면 되겠다 싶다. 정말 멋진 환상이다. 

야구가 재미있는 이유는 어떤 팀이든 한정된 자원으로 한 시즌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마다 떠나가는 선수와 이적해오는 선수가 있고 부상과 슬럼프로 기복을 타는 선수들이 있으니, 야구 감독만큼 Manager라는 호칭이 잘 어울리는 스포츠도 없다.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마케터의 소원은 풍부한 예산, 화려한 디자인팀, 내 아이디어를 찰떡같이 이해해주는 조직장과 헤드들. 그리고 이를 마법처럼 운용해 줄 에이전시 정도다. 그리고 이 역시 우리는 '환상'이라 부른다.

성공적인 마케팅이라 평가할 때 소위 '돈으로 싸바른' 마케팅을 성공적이라고 하진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저 인력으로, 저 예산으로, 저 리소스로 저런 효과를 냈을까가 잣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마케터의 핵심 능력을 꼽을 때 '운영력'을 빼놓지 않는다. 크리에이티브만 던져놓고 예산 타령만 하고 있는 자는 마케터라고 할 수 없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을 만든 우리네 조상님은 그 옛날에도 분명 마케팅하시던 분이었을 게다. 




야구든 마케팅이든 한정된 자원으로 승부를 봐야한다는 사실이 보는 이를 재밌게 한다.




3. 데이터와 감(感)을 동시에 활용한다. 


'측정할 수 없으면, 경영할 수 없다'는 피터 드러커의 말은 야구에도 잘 들어 맞는다. 야구는 통계를 기본으로 한다. 타율이 낮으면 하위 타선으로 밀리고 평균 자책점이 높은 투수는 선발에서 빠진다. 반대로 아무리 최근 성적이 부진해도 특정 투수를 상대로 결과가 좋으면 그 타자를 기용한다. 데이터의 미학이다. 

하지만 이런 데이터가 모든 걸 가능하게 하지는 않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이끈 김경문 감독은 부진 후 기적처럼 되살아났던 이승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기록만 놓고 보면 빼야 했습니다. 하지만 왠지 승엽이가 하나는 해 줄 것 같았어요. 그걸 믿었죠.'


마케팅을 하다보면 데이터를 활용한 지표 분석은 수도 없이 본다. 하지만 이를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다른 문제다. 소위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이런 데이터를 날고 길만큼 다루는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이 데이터를 기가 막히게 활용하는 사람들에 가깝다. 그리고 거기엔 자신만의 무엇이 작용하고 우린 이를 '감(感)'이라고 부른다. 이성과 감성의 두 곡선이 만나는 지점 말이다. 



4. 프론트의 몫이 정말 중요하다. 


에이전시에서 일해본 사람들은 안다. 결국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것이 시작이자 끝'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갑질은 그렇다 쳐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디렉션을 내리는 클라이언트는 모두를 황당하게 만든다. 저 사람 밑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이 불쌍해지기까지 하는 이유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한국과 미국의 야구는 프론트의 입김이 강하다. 그래서 감독 교체의 대표적인 이유가 구단 프론트와의 충돌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점차 기업 관계자에서 야구인 출신의 전문 인력으로 프론트를 꾸려가려고는 하고 있지만 여전히 후진 경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야구든 마케팅이든 선수와 실무자가 경기에 임하는 것이지만 이를 위해 큰 그림을 짜고 좋은 의사결정을 내리며 든든한 지원을 하는 것은 윗선의 몫이다. 그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미치는 파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헛스윙을 하는 마케팅 사례를 만나면 '에이 별로네.'라고 한마디 하고서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 뭐.. 분명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거야.'



5. 한 방을 위해서 365일을 준비한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야구는 1년 내내 훈련한다. 추운 겨울이면 따뜻한 훈련지에서 스프링캠프를 차리고 내년 시즌을 위해 엄청난 훈련들을 소화한다. 국민타자라 불리는 핵심 선수들도 타격 폼을 다시 잡고, 15승 이상을 기록한 투수들도 뜀박질을 하며 기초 체력을 끌어올린다. 그래서인지 플레이오프나 한국 시리즈에서 맹활약한 선수들은 인터뷰 때마다 '시즌 시작 전부터 정말 준비를 많이 했는데, 그게 덕이 된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역시 공짜란 없는 법인가 보다.


개인적으로 마케팅이든 브랜딩이든 반짝 투자해서 빛이 나는 사례를 잘 보지 못했다. 저 친구들 참 잘하네 싶어서 들여다보면 정말 입이 벌어질만큼의 고된 준비 과정과 고민의 시간을 견뎌내왔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시즌 전부터 기초체력과 타격폼 만들기 같은 기본기를 탄탄히 갖춰왔기에 가능한 '한 방'인 것이다.

때문에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를 '한 방의 기회'를 위해 항상 배트를 휘두를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On-Air 되는 광고가 없어도, 마케팅 예산이 빡빡할 때도, 사용자가 늘지 않아 한 없이 초라할 때도 그 브랜드 만의 기본기를 탄탄히 다져야 한다. 




기본기가 없어도 행운의 안타를 칠 수는 있다. 하지만 기본기 없이 한 시즌을 나기는 불가능하다.




메이저리그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이끌고 있는 '브루스 보치(Bruce Bochy)' 감독에게 오늘 경기를 어떻게 예상하냐고 기자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마침 어젯 밤 꿈에 제가 신을 만나 같은 질문을 드렸죠. 그랬더니 그 분도 모르겠다고 하시더군요.'


어쩌면 야구와 마케팅의 가장 큰 공통점은 아마 '한 치 앞도 모른다'가 아닐까 싶다. 지금 저 투수의 손끝에서 뿌려진 공이 포수의 미트에 박힐지 100미터가 훌쩍 넘어가 담장 위로 사라질지 아무도 모른다. 당신이 사활을 다해 기획한 아이디어에 소비자들의 반응이 없을 수도 있고, 생각 없이 올린 SNS 컨텐츠 하나가 입소문을 타 대박으로 이어질 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경기장에서 매일 자신만의 무기를 들고 올라야 하는 처지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너무 낙심하지는 말자. 10번 중 3번만 안타를 쳐도 무려 3할 타자다. 당신의 기획서가 까인 건 그냥 헛스윙 한 번 했다는 셈 치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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