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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Nov 17. 2020

(다)갖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어쩌다 우리는 '풀소유' 스님을 마주하게 되었나  

'스님이 무슨 인플루언서야?' 


친구의 말에 곰곰히 생각을 해봤습니다. 따지고 보면 원래 종교인들이야 말로 Influencer(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 이긴 한 것 같습니다. 요즘 들어 사용되는 단어의 뜻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함께 사는 세상 속에서 교리라는 것을 기반으로 현상을 이해하고, 본인의 생각을 녹여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종교인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 모든 종교인들이 이렇게 살면 좋겠지만 '그것이 알고싶다'의 팬인 저로서는 자극적인 선례를 너무 많이 봤나 봅니다. 대중적인 종교인들로부터도 딱히 좋은 영향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혜민스님이 며칠째 포털 사이트 순위에 오르내립니다. 사람들의 시선은 달갑지 않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종교가 없는데다 혜민스님이 그동안 썼던 책들에서도 큰 인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관심 영역 밖의 인물이긴 했습니다. 거기 보태어 올 한해 이 힘든 시국에 희한한(?) 종교인들이 국민들을 괴롭히는 것을 많이 봐서 피로감이 극에 달한 탓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도 그동안 혜민스님을 밉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어찌되었건 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테고 그로부터 어떠한 영향력을 받아 힘을 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제가 무슨 자격으로 호불호를 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사건의 본질이 다른 듯 합니다. 대중을 넘어 한 때 같은 종파에 몸을 담은 동행자에게도 욕을 먹으니 말입니다. (엊그제 사과 기사가 뜨긴 했지만 저는 아직도 현각스님이 날린 트럼프 못지 않는 트윗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저는 혜민스님이 TV에 나와 좋은 집에 넉넉한 생활을 공개해서 물의를 빚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죄없는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사람들에게 분별력이라는 것이 분명 있습니다. 단순히 '상대적 박탈감'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그릇된 질투심은 아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편 혜민스님은 아직도 본인이 욕 먹는 이유가 서울에 위치한 좋은 집에 살며 한 때 건물까지 소유했던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한 회 강연료가 기백만원에 달하고 본인과의 점심식사 프로그램이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그의 사과문을 보면 '수행자로서 본인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상에 불법을 전하려고 노력했으나 많은 분들께 불편함을 드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봐'는 이제 연인간의 이별 사유에 들먹이기도 구차해진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과 방식을 싫어합니다. 차라리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라고 되묻거나 아니면 쿨 하게 사과하고 인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선한 의도와 노력의 본질이 대중에게 미처 다 닿지 못했다는 늬앙스는 풍기지 않음이 나았습니다. 


   

그 '공감하는 법'을 못해서 논란이 불거진 것 같습니다.



얼마전 방송에 나온 그는 본인을 '사람들과 공감하는 방법을 전해드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좀 더 행복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려하고 있다'고도 했죠. 실제 그가 그동안 꾸려온 강연의 제목도 '공감 토크 콘서트' 입니다. 그 만큼 '공감'이란 워딩을 강조해온 사람이죠. 저는 대중들이 불편했던 지점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면성'입니다. 집, 차, 명품 등은 덧 없는 것이니 허물을 벗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라고 설파하던 그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방송에 나와 일반인이 쉽게 살 수 없는 집에 거주하고, 명색이 종교인으로 한 때 건물을 소유해 시세차익을 남겼다는 것이 알려지자 대중들은 갸우뚱 했습니다. 

물론 본인은 억울할 수도 있겠습니다. 주택 여러채를 소유한 것도 아니고 건물을 사고 팔 때 부당한 행위가 있었던 것 역시 아니며 종파에 따라 출가를 선택해 불법에 정진하는 스님들도 많이 있는데 본인에게만 화살이 오는 것처럼 느낄 수 있었겠죠. (혹여 그렇지 않고 모든 것을 본인의 부족함으로 돌리고 계신다면..... 서.. 성불하소서) 게다가 다른 비리 종교인들처럼 이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은폐한 것도 아닙니다. 방송에 나와 직접 자기 집과 생활을 공개했으니 말입니다.


여기서 두 번째 불편한 지점이 나옵니다. 혜민스님 본인이 그토록 강조했던 '공감 능력의 결여'입니다. 공감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었다면 오히려 방송국의 출연 요청에 응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과 강연을 통해 누차 강조했던 '소유'가 아닌 '감상'이 행복의 원천이라는 말과 그의 실제 삶 사이에서 오는 큰 괴리감을 맛보게 했으니 말이죠. (네티즌은 이를 두고 그 감상이 '남산타워 뷰 감상이냐'고 비꼬기도 했습니다.) 

여튼 대중들은 일반적인 공감조차 이끌어낼 수 없는 사람이 '공감 전문가'로 활동한다는 것이 많이 불편합니다. 본인이 말한 행복의 조건과 삶의 조건이 너무나도 다른데도 끝까지 자신은 '남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라고 소개하는 것이 쉬이 납득되지 않습니다. 



저도 매일 아침 남산타워를 감상하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죠. 저 개인적으로는 취업을 하고 연차가 제법 쌓이면서 특히 조심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취업 준비 중인 학생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입니다. 제가 조심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들 입장에서 저는 '가진 자'입니다. 대단한 것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취업 준비생들이 가장 간절히 원하고 있는 취업 문턱을 넘은 사람인 것이죠. 그러니 제가 하는 말이 혹여 '저 사람은 직장에 다니고 돈을 버니 저렇게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느껴지지 않을지 걱정인 것입니다. 물론 후배 취업 준비생들에게 쓴소리나 냉정한 말들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인 조언을 해달라는 학생들에게는 저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야기해주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제가 절대 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해보지 않은 것을 혹은 지금도 내가 하지 않는 것을 해보라고시키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손에 넣으면 그것이 오롯이 자신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라 쉽게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엔 분명 운과 요행이라는 것이 일정 부분 작용하기도 하는데 그것까지 본인의 것으로 둔갑시키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나조차 하고 있지 않은 노력을 남에게 강요하고 맙니다. '이면성'이죠. 


저는 브랜드 마케터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공감 능력'이 정말 절실한 직업입니다. 제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소통했다고 생각해도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카피에 쓰인 문장 한줄, 디자인에 얹혀진 작은 오브제 하나, (비약처럼 느껴지겠지만) 대화하며 사용하는 작은 제스처 하나까지 조심할 때가 있습니다. '이건 내가 잘 알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공감 능력은 확 떨어지거든요. 그러니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이 '공감'이고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공감 전문가' 같은 류의 타이틀을 믿지 않습니다. 공감이야 말로 애티튜드라고 생각하거든요. 태도와 자세, 접근법과 마음가짐에 전문가가 있다뇨. 당치도 않습니다. 이는 오히려 끊임 없는 '수행'과도 같습니다. 


아마 혜민스님 사건(?)이 유쾌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 우리 시대에 좋은 리더가 필요하고 한 발 앞에서 사람들이 지치지 않게 끌어주는 선구자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맞습니다. 혜민스님도 처음에는 좋은 의도와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실제 그런 역할들을 실천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도 지극히 사람인지라 하나 둘 조건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의 가치에 너무 많은 부여를 하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작금의 시대를 '불편의 세상'이라고 합니다. 무엇인가를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죠. 저는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앞서말한 '이중성'과 '공감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야'라는 사고방식. 상대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소통 방식과 태도들. 쉽지 않은 세상에서 사람들이 점점 예민해지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수록 서로서로 더욱 조심해야 하는 것이 맞기도 합니다. 



사람은 '제목따라 간다'는 말이 참 맞는 것 같습니다.



다 갖추고서 세상을 보면 분명 여유가 생깁니다. 흉한 것도 아름다워집니다. 내 것이 아닌 것도 내 것 같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혜민 스님 스스로 말씀하신 '멈춰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집중해야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침 그 책의 부제가 '혜민스님과 함께 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더군요. 이번 기회를 계기로 본인 마음 N회차 감상을 적극 추천드립니다. 행복은 감상이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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