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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Dec 31. 2020

떠올리다 < 풀어내다

하늘에서 영감이 뚝 떨어지기를 바라는 당신에게 

기획자는 예술가가 아닙니다. 갑자기 천재 작곡가가 악상을 떠올릴 때처럼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대신 A와 B라는 점을 잇기 위해 풀어야 하는 수많은 과제들이 우리 앞에 존재하고, 그걸 하나하나 푸는 방법으로써의 '영감'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떻게' , 즉 How와 관련된 일이죠. 


언젠가 야구선수 오승환 선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마무리 투수로서 한창 전성기를 달릴 때 기자가 그 비결에 대해 물었습니다. 


"투수로서 공을 던질 때 제일 중요한 게 뭔가요?"

"온몸이죠."

"온몸이요?"

"네. 공 하나를 던지려면 정말 온몸을 다 써야 하거든요. 온몸으로 던진다고 보는 게 맞아요."


혼신을 힘을 다한다는 건 온몸을 쓴다는 의미죠.



기획이나 브랜딩 일을 한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크리에이티브에 관해 질문합니다.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는지 언제 좋은 영감이 떠오르는지, 대부분 그 원천에 관해 궁금해하죠. 사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항상 민망합니다. '오 지금 영감이 온다. 나에게로 영감이 쏟아져 들어온다.'라고 느끼며 생각의 실마리를 풀어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거든요. 청춘드라마에서처럼 '김 대리, 이거 정말 대박인데! 이거 감이 좋아!'라는 오글거리는 대사와 함께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상황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대신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이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풀 거야?"


맞습니다. 저는 영감은 '떠올린다'의 문제가 아니라 '풀어낸다'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가 장강명 님은 '모든 영감은 불완전한 형태로 다가온다'라고 했습니다. 광고인 박웅현 대표님도 '옳은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무엇인가를 선택한 후 옳게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죠. 매우 동감합니다. 두 의견 모두 과정과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영감이란 녀석이 매끈히 잘 다듬어져서 예쁜 그릇에 담긴 다음 먹기 좋게 우리 앞에 놓일 확률은 없습니다. 대신 '이게 뭐지? 이거 먹는 건가? 아닌가? 이걸 여기 놓으면 저거랑 아귀가 맞는 조각인가?'라는 혼란스러움과 함께 참 애매한 형태로 여러분을 스쳐 지나갈 겁니다. 묻은 흙을 털어내고 모난 부분을 깎아도 보고 때론 이로 깨물고 직접 혀를 대봐야 대충 뭔지 감을 잡을 수 있는 정도 일 테죠. 그러니 이 불완전한 영감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온몸을 써야 합니다. 투수가 공을 던질 때처럼 말입니다.




기억을 걷는 시간  



간혹 지나치게 시(詩)적인 느낌의 카피를 볼 때가 있습니다. 혹은 난해하고 복잡해서 무얼 말하려는지 단 번에 알아차리기 힘든 카피도 있죠. 지은이의 설명을 듣고 나면 그제서야 어렴풋이 이해가 되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대개 이런 텍스트들은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저는 그 이유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영감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러시아 민속인형인 마트료시카 아시나요? 뚜껑을 하나 열면 그 안에 또 인형이 있고, 그 인형 뚜껑을 열면 같은 모양의 작은 인형이 또 하나 들어있는 그 인형이요. 사람 감정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내 감정에 빠지다 보면 그 뚜껑을 한없이 열고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반복할수록 더 깊고 개인적인 감정이 나오는 법이죠. 그러다 어느 순간 감성과 기억이 한데 버무려져 '울컥'하는 순간이 오는데, 대부분 이때의 강렬함이 오래 지속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강렬함이 매우 주관적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 말은 일기장에나 써요'라는 핀잔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기획을 하며 다시 깨우칩니다. 


밴드 '넬'의 노래 중에 <기억을 걷는 시간>이란 곡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곡 중 하나로, 무엇보다 가사가 정말 일품인 노래입니다.

노래 속 주인공은 '길을 지나는 어떤 낯선 이의 모습 속에도, 바람을 타고 춤추는 낙엽 위에도, 뺨을 스치는 저녁 공기 속에도' 아직 잊지 못한 그대가 있다고 말합니다. 가슴 저릿하죠. 찬바람 부는 가을날 들으면 메마른 감성에 정전기 제대로 일으키는 곡입니다. 근데 중요한 건 그다음 가사입니다.


'어떤가요 그댄. 어떤가요 그댄. 당신도 나와 같나요.'

 

그렇죠. 그토록 바라는 당신의 '그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길을 지나는 낯선 이의 모습에서 오늘 자신을 구박한 회사 상사를 떠올릴 수도 있고 바람을 타고 춤추는 저 낙엽을 보며 제발 내 옷과 머리카락에 엉겨 붙지 않기만을 바라며 걸음을 재촉할지도 모릅니다. 내 감정을 움직인 요소가 다른 사람들의 감정까지 움직일 거라고 착각해선 안되는 중요한 이유죠.  


내가 기억을 걷는 동안 다른 사람도 함께 걸어줄거라 생각하지 말자구요.



개개인이 모두 아티스트가 되어야 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이는 어떤 일을 하든 아티스트적인 관점과 완성도를 갖추어 그 결과물을 높은 경지까지 끌어올리라는 의미이지 주관의 늪에 빠지라는 말은 아닙니다. 특히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에겐 더더욱 경계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논란의 광고 카피들도 대부분 여기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떠올린 영감을 복기(復棋)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둑에서 대국을 마친 뒤 자신이 놓은 수를 하나하나 되짚어가듯이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를 거슬러 올라가 보는 거죠. 

며칠을 끙끙 앓던 과제라도 어느 순간 실마리가 보이는 때가 오기 마련입니다. 그럴 땐 덥석 물기보다 그 생각이 어디서 나오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천천히 떠올려보시길 바랍니다. 깊은 고민에 빠진 나머지 너무 복잡한 과정을 거치진 않았는지, 생각의 흐름 속에서 어느 한 부분이 다소 느슨했던 것은 아닌지 확인해보는 겁니다. 내 아이디어가 나에게 온 과정을 되짚다 보면 그 아이디어가 사용자에게 전달될 길도 보입니다. 그러면 영감을 풀어가는 일도 훨씬 쉬워지죠. 

 



영감을 풀다 



무엇인가를 기획하는 일을 10여년 가까이 하다보니 저도 조금씩 저만의 방식들을 만들어 가게 되더군요. 쓸만한 아이디어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고, 선별된 아이디어를 단계적으로 구체화해본 다음, 타깃이 되는 사용자에게 어떻게 전달할지를 고민하는 방식들 말입니다. (이건 '법칙'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감히 '방법'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저의 스타일을 소개하는 것이며 여러분은 또 여러분만의 방식을 찾아야 하겠죠?) 


생각의 숙성


영감을 풀어가는 저만의 방식 중 하나는 생각의 '숙성'기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입니다. 아마 바로 반문부터 하는 사람들이 있겠네요. '아니 일하며 충분한 시간을 보장받는 기획자가 몇이나 된다고!'하고 말이죠. 물론 맞는 말입니다. 저도 늘 시간에 쫓기고 일에 치이며 사니까요. 하지만 제가 말하는 숙성이란 생각을 머릿속에만 가둔 채 질질 끌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뭔가 좋은 아이디어라고 판단되면 이를 적당한 시간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에게 노출시키는 겁니다. 마치 와인이나 고기를 에이징 하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주로 떠오른 생각을 메모해서 PC 바탕화면이나 회사 책상 앞에 두고 자주 마주하는 방식을 씁니다. 이때 단순히 텍스트만으로 메모하기보다는 다양한 이미지나 물건들의 비주얼을 함께 출력하여 마치 잡지 표지처럼 만들어 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훨씬 선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새로운 서비스의 브랜딩 컨셉을 '피크닉'이라고 가정해보죠. 

이걸 그냥 '이번 컨셉은 피크닉. 스토리는 더 구체화해볼 것'이라고만 메모한 채 책상 앞에 붙여두면 아무런 발전이 없습니다. 시간만 흘러가는 거죠. 게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크닉에 관한 고정관념들이 굳어버리기 시작합니다. '피크닉? 소풍? 봄? 발랄함? 즐거움? 하하 호호하는 분위기? '로 몰아가게 되죠.


대신 피크닉이라는 단어를 여러 이미지나 사물, 텍스트 위에 얹어서 스스로에게 자주 노출시키는 실험을 해보면 생각이 훨씬 유연하고도 분명해집니다. 차분한 모노톤 속에서의 피크닉은 일상의 쉼표 같은 심상을 주기도 하고 디지털 요소로 가득한 세상에서의 피크닉은 오히려 휴머니즘에 포커스를 맞춰 볼 수 있죠. 

실제로 저는 이 '피크닉'에 대해서 여러 가지 아이데이션을 해본 적이 있는데요, 뜻밖에도 사람들이 피크닉이란 단어로 연상하는 것들의 대부분이 '준비'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소풍 가기 하루 전의 설렘, 애인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할 때의 즐거움, 어떤 옷을 입고 갈지 날씨는 어떨지 길이 막히지는 않을지. 온통 신경이 내일을 향해있는 그 마음들은 모두 피크닉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것들이니까요. 

오랫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생각을 숙성해보지 않았다면 아마 놓치고 지나갔을 확률이 컸겠죠.  


떠올린 것을 어떻게든 붙잡고 구체화해보세요. 시각적인 요소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반응 수집


가수 지코는 랩 가사를 쓸 때 꼭 주위의 동료 래퍼들에게 먼저 들려주고 반응을 체크한다고 합니다. 혹시 자신의 발음이 부정확하거나 단어 간의 충돌이 생겨 제대로 캐치하지 못하는 가사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하죠. 예술가인 지코도 이렇게 동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작업을 하는데 기획하는 사람이 주변에 의견을 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간혹 기획물이 일정 수준의 형태를 갖추기 전까지 절대 공유하지 않고 혼자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음.. 그렇게 좋은 방식 같지는 않아요.) 


저는 주변 동료들을 많이 괴롭힙니다. 정말 질문을 많이 하거든요. 주로 저희 팀의 업무와 동떨어져있는 다른 팀원이나 회사 동기들을 대상으로 삼습니다. 아무래도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솔직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줄 수 있으니까요. 이때는 질문 자체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저 '이건 어때요? 저건 어때요? 요런 느낌은요? 둘 중에 뭐가 나아요?' 식의 질문으로는 반응을 얻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보다는 상대방도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습니다. 친한 친구들은 제가 '만약에~'라는 말을 꺼냄과 동시에 '아 또 시작이구나'하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정법의 질문을 진짜 좋아하거든요. 그것도 최대한 구체적인 것으로요.


"만약에 네가 엄청 맘에 드는 이성이 생겼어. 잘 보이고 싶어. 마침 그 사람이랑 단둘이 식사를 할 기회가 생겼어. 근데 넌 평소에 옷 입는 것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옷도 많이 사지 않는 편이잖아. 그럴 때 코디에 대한 조언을 받고 싶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 패션 센스가 좋은 친구에게 도와달라고 하기? 아니면 직접 매장으로 가서 점원에게 추천받기? 온라인 커뮤니티에 '도와줘 형들!'이라는 글 올리기? 옷은 옷일 뿐이니까 굳이 꾸미기보다는 최대한 깔끔하고 단정하게만 나가기?"


이런 질문을 해대는 통에 상대방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괴로워하며 심각한 고민에 같이 빠져줍니다(?). 그리고 최대한 본인의 취향과 상상력을 동원해 대답해 주죠. 그때 대답 자체뿐 아니라 그 사람이 고민을 풀어가는 방법을 유심히 관찰해보세요. 왜 그런 결론과 선택에 도달하게 됐는지 흐름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꼭 비용을 들여서 하는 그룹 인터뷰나 사용자 조사만이 '리서치'는 아닙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주변 동료와 지인들의 도움을 얻어보세요. 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보내는 '반응'에 집중하다 보면 생각보다 문제의 실마리가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온몸 투구


아까 '투수는 온몸으로 공을 던진다'고 했던 말 잊지 않으셨죠? 

개인적으로는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이를 풀어내는 방식 역시 온몸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한때는 문서를 칼같이 잘 쓰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디자이너, 개발자들이 쓰는 툴을 현란하게 다루거나 새로운 작업 방식이 세상에 나올 때마다 휙휙 갈아타는 사람들도 선망의 대상이었죠. 솔직히 저보다 저만치 앞서 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연차가 쌓이다 보니 이는 어디까지나 작업과 협업을 도와주는 수단일 뿐 기획이라는 본질을 흔들어 놓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빈 종이에 볼펜으로 슥슥 그리는 것만으로도 본인이 생각하는 관점을 정확히 보여준다는 사실을 알았거든요. 트렌드의 전선에 있는 사람으로서 늘 새로운 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함은 분명하지만 그게 내 생각을 옥죄는 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과거에는 '포맷병'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왠지 기획서를 쓰면서도 '뭔가 이런 거 하나는 들어가줘야 상차림이 완성되지 않을까?' 하는 버릇이 있었죠. 특히 그중에서도 시각화에 집착했던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이 많다 보니 무엇이든 눈으로 보여줘야겠다 싶어서 불필요한 것들까지 도식화하고 이미지화하려 애썼습니다. 

'초안에 대한 압박감'도 심했습니다. 킥오프 미팅임에도 불구하고 첫 단추 한 번 잘 꿰어보려 너무 앞서간 자료를 준비해 들어간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들인 노력이 아까워서인지 자꾸 내 아이디어를 지키고자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때도 있었죠. 의미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초안은 걸레다.'라는 유명 작가님의 말을 되새기며 '안되면 걸레로 쓰지 뭐!'라는 마인드로 초안을 만듭니다. (중요한 건 디벨롭이고 완성이니까요!)


대신 기획의 단계마다 어떤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고 도구인지를 고민합니다. 짧게 정리된 워드 문서 한 장이 될 수도 있고 레퍼런스로 찾은 유튜브 영상 한 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 생각이 상대방에게 왜곡되지 않고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어떤 케이블을 사용할지를 정하는 것이, PPT 수십 장을 만들고 혼자 뿌듯해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입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저는 크리에이티브란 무엇을 떠올리냐의 문제가 아닌, 어떻게 풀어내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때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던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셰프들이 스타의 냉장고 속에 든 평범한 재료들만 가지고 요리 경쟁을 펼치는 것이 컨셉이었죠. 라면, 스팸, 먹다 남은 과자 등 뻔한 재료들이 각 셰프의 손을 거쳐 최고급 요리들로 탈바꿈하는 과정에 시청자들은 열광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인기가 하락했습니다. 회를 거듭하며 (제작진이 사전에 공수한 듯한) 다분히 의도된 고급 재료들이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죠. 요리 방식보다는 캐비어, 샥스핀, 송로버섯 등 진귀한 재료를 소개하는 데에만 열을 올린 탓입니다. 결국 사람들이 원했던 건 무엇을 가지고 요리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요리하느냐 였는데 말이죠.


캐비어도 몇 번 본 적 없는데 검은 진주인들 봤겠습니까 우리가.



돌이켜봅시다. 혹시 오늘 하루 특별한 인사이트나 자극을 얻는 데에만 애쓰지는 않았나요? 왜 나에겐 뭔가 한방이 없을까 하고 자책하지는 않으셨고요? 부족함을 채우고자 하는 갈증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조건 인풋을 들이키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겁니다. 우리를 성장시키는 것은 엉킨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낼 때의 그 깊고도 진득한 경험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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