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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Dec 08. 2020

15분의 미학

지금 15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실 건가요?  

#기획자의 독서법

기획 일을 하는 모든 분들을 위한 '책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기획자라고 했지만 마케팅, 브랜딩, 광고, 컨텐츠, 상품,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 만들고 - 내놓는 일을 하는 분들을 위해 글을 씁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보단, 15분인 게 더 좋았습니다. 


혹시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라는 프로그램 아시나요? 

미국의 TED처럼 사회 전반에서 활동하는 연사를 초청해 강연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강연이나 인터뷰 프로그램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저 역시도 세바시의 팬입니다. 2011년쯤 첫 방송을 시작할 때부터 봤으니 벌써 10여 년 동안 애청자인 셈이네요. 


제가 세바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영상 한 편이 '15분' 남짓이기 때문입니다. 심심할 때 한 편씩 보면 시간도 잘 가고 예상 밖의 감동을 느낄 때도 많아서 좋습니다. 처음에는 '15분 안에 뭘 이야기한다는 거지?'라는 의구심으로 봤는데, 웬걸요. 한 사람의 인생을 압축해서 전달하기에도 충분하고 기후 변화, 사회 시스템, 사상과 존재론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주제를 다룰 수도 있는 시간이더군요. 그 뒤로는 어떤 주제에 관해 이야기 해야 하는 자리가 있으면 자아성찰을 하게 됩니다. '나는 과연 15분 안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하고 말이죠.


15분 안에 동기부여를 받고 싶다면 세바시 영상을 하나 골라 클릭해보세요



말이 나온 김에 '15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도록 하죠. 대표적으로 유튜브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없을 겁니다. 아마 여러분이 유튜브에서 원하는 영상을 한 편 골라 시청한다면 그 영상은 15분 남짓일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유튜브는 아예 15분을 기준으로 장편과 단편을 구분하거든요. 영상 업로드를 해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러닝타임 15분이 넘어가는 동영상은 장편 업로드라는 기능을 통해 별도 등록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상들이 15분 남짓한 재생시간을 가지고 있고, 15분이 넘어가면 아예 에피소드를 나누어 내보내기도 하죠. 


이쯤 되니 궁금합니다. 왜 하필 15분일까요? 

심리학에서 설명하기로는 사람이 뇌를 활용해 집중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 효율이 15분이라고 합니다. 15분이 지나면 몰입과 집중이 점점 떨어진다고 하죠. 실제로 사람이 차나 도보로 이동 시에 평균 15분이 넘게 소요되면 '거리가 멀다'라고 느끼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1시간의 1/4, 쿼터(Quarter)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이상적인 배분이 25%씩 네 번인데, 1시간의 25%인 15분이 시간 배분의 황금비율이라는 것이죠. 




어느 덧 '15분'이 표준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많은 단위가 15분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기 위한 효율적 업무 방법론인 애자일, 한 번쯤은 들어보셨죠? 애자일의 프로젝트 관리법 중 하나인 스크럼(Scrum)에서 강조하는 것도 하루 15분 정도 회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구성원 각자 어제 한 일과 오늘 할 일을 팀과 공유하고 일에 우선순위를 매기라고 하죠. 실제로 저희 팀도 아침 미팅 시간이 딱 15분입니다. 그런데도 꽤 많은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상태를 크로스 체크하고 중간중간 농담까지 하곤 합니다.


콘텐츠의 흐름도 이와 비슷합니다. 예능 프로그램을 예로 들어볼까요? 과거의 토크쇼는 게스트 한 명을 초대해 한 시간이 넘도록 문답을 주고받았습니다. 10년전 시청률 고공 상승을 주도했던 무릎팍 도사나 김승우의 승승장구 같은 프로그램들도 그랬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유 퀴즈 온 더 블록> 같은 예능을 보면 포맷은 토크쇼지만 한 회당 4-5명이 넘는 게스트가 출연합니다. 게스트에 대한 사전 정보는 MC들이 빠르게 써머리 해주고 진짜 엑기스가 되는 토크만 한 후 쿨하게 헤어집니다. 필요한 추가 정보는 인터뷰 영상으로 대체하죠. 방송 종료 뒤에는 각 게스트 별 영상 클립이 15분 남짓 한 시간으로 편집되어 유튜브에 올라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취사선택하여 즐기는 '세션(session)'의 시대가 왔고 그 한 세션의 시간이 15분으로 규정되어 가는 느낌입니다



예능도 유튜브에서 보는 시대죠. 무엇보다 내가 보고 싶은 부분을 15분 남짓으로 압축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15분,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여러분은 15분 정도 여유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점심시간 동안 잠깐 회사 책상에 엎드려 낮잠을 잘 수도 있을 테고 가까운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을 테이크아웃 해 올 수도 있겠죠. 주위에 전화 영어 수업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 하루 수업이 15분 정도더라고요, 무엇인가를 배우기에도 나쁘지 않은 시간인 것 같습니다.  회사 후배에게 물었더니 자기는 코인노래방에 가서 한 서너 곡 신나게 부르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의외로 '15분 가지고 뭘 할 수 있겠어요'라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다들 각자의 15분이 있는 셈이죠.


저는 15분 정도가 허락되면 두 가지를 합니다. 집에 있을 때는 밖에 나가서 러닝을 즐깁니다.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수영 같은 운동은 별도의 시간을 내어 하는 편이지만 러닝은 잠깐의 짬만 나도 할 수 있거든요. 꽤 빠른 속도로 달리면 15분 안에 3~3.5km 정도를 달립니다. 지하철역 3개 정도의 거리니 짧지 않은 거리죠. 




책과의 15분 


회사나 집에서 15분 정도 시간이 날 때는 책을 읽습니다. 회사에서는 주로 점심시간을 활용하고요, 간혹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에도 책을 읽습니다. 집에서는 보통 느긋하게 책을 보는 편이기에 딱히 시간을 정해 두진 않지만 가끔 또 예상에 없던 자투리 시간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외출 준비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집을 나서기 전까지 여유 시간이 생겼다거나 밤에 잠들기 전에도 15분 정도는 책에 투자할 수 있겠다 싶을 때가 있죠. 그럴 땐 주저 없이 책을 손에 듭니다. 


이때는 주로 챕터가 잘게 나누어진 책을 읽습니다. 단편으로 구성된 에세이를 가장 많이 읽고 사례 중심의 마케팅 서적들도 즐겨 읽습니다. 두 책 모두 글 한 편에 주제 하나가 들어있는 비교적 가벼운 구조라 순간 집중하기에 유리합니다. 잠깐 머리를 식히거나 딴 생각 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선택지죠. 


저는 글을 빨리 읽는 편이 아니라 15분 정도면 챕터 2-3편 정도를 읽습니다. 물론 분량이 중요한 건 아니죠. 그래도 이왕이면 15분 안에 한 편을 다 읽을 수 있는 양을 추천합니다. 글을 빨리 읽는 분이라면 아마 15분 안에 생각보다 꽤 많은 양을 읽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실 겁니다. 


시를 좋아하신다면 15분 정도 가볍게 시집을 읽어보는 것 또한 추천합니다. 사실 저는 한때 시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었습니다. 왠지 밑줄 쭉쭉 그으며 '심상'은 무엇이고 '형식'은 무엇이고 하며 국어공부하는 마냥 읽어야 할 것 같은 이미지 때문이었습니다. 시집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름 모를 오글거림도 적지 않았죠. 그렇게 멀리하던 시집을 다시 곁에 붙이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SNS였습니다. 페이스북 피드를 떠돌다 우연히 발견한 좋은 글들이 시집에 실린 글이라는 것을 알고서 뒤늦게 맛을 들였습니다. 시는 생각보다 읽기 편하고 울림도 오래갑니다. 한 줄 한 줄 압축해서 내려쓴 문장들을 따라 읽다 보면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실 때의 느낌과도 비슷합니다. 게다가 시는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도 지루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혹시 15분 정도 시간이 있다면 시집 한 권을 펼쳐서 마음 가는 대로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틈날 때 가볍게 기분 전환할 수 있는 책을 찾다가 최근에는 <아무튼 시리즈>에 푹 빠졌습니다. 

작가 개인이 좋아하는 자신만의 취미, 세계 혹은 가치관을 하나씩 풀어내는 에세이 시리즈인데 묘한 중독성이 있습니다. <아무튼, 메모>, <아무튼, 떡볶이>, <아무튼, 달기기>, <아무튼, 문구>, <아무튼, 반려병>, <아무튼, 순정만화> 등 그 종류도 정말 다양한데요, 개인의 취미나 기호를 바탕으로 결국 자신만의 작은 세상을 만드는 과정을 엿보는 것이 흥미진진합니다. 일반적인 책보다 얇고 크기도 작아서 휙휙 넘기며 가볍게 읽을 수 있습니다. 

반전은 그 얇은 책 한 권이 던지는 메시지가 꽤 크다는 것입니다. ‘아무튼’이라는 말처럼 어쨌든 나와 함께 뒹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 소소한 일상들이 주는 철학이 있습니다. 책을 빨리 읽는 사람이라면 15분씩 2번, 30분 남짓 한 시간에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저는 왠지 한 번에 다 보는 게 아까운 느낌이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로 조금씩 천천히 여러 날로 나누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시리즈 제목을 주욱 놓고 보면 세상 사람 누구나 <아무튼 시리즈> 한 권 정도 쓸 주제는 가지고 있겠다 싶습니다. 만약 저에게 쓰라고 한다면 <아무튼, 15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아무튼 시리즈의 범주는 정말 넓습니다. 왠지 앞으로도 계속 넓어질 것 같습니다.




혹시 책 한 권 사기로 마음먹었다면 아예 15분씩 짬을 내어 읽는 용도의 책을 골라보는 것은 어떨까요? 유튜브 영상 한 편 보듯, 코인 노래방에서 서너 곡 신나게 뽑듯이 읽을 수 있는 그런 책 말입니다. 확신하건대 평소에 책을 고르던 기준과는 많이 달라질 겁니다. 그렇게 고른 책을 가방에, 회사 서랍에, 침대 곁 사이드 테이블에 둬보세요. 주전부리마냥 손 가는 대로 집어 읽으면 의외로 짭잘하니(?) 계속 들어갑니다. 물리지 않는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담 (餘談)
요즘은 러닝도 온라인 크루를 만들어 각자의 루트에서 뛴 다음 서로 기록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많이들 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온라인으로 '15분 책 읽기 운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점심시간이든 퇴근한 후에든 지금부터 15분간 각자 원하는 책을 원하는 만큼 읽고 그 결과를 서로 공유하는 것이죠. 하다보면 ‘#15분_책읽기’ 라는 해시태그가 인스타그램에 가득해지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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