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카메라의 시대이지만 아직 필름 카메라도 많이 사용합니다. 필름 특유의 느낌이나 색감은 보정을 통해 가능한데 왜 불편함을 감수하고 필름 카메라를 쓰는 것일까요.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왜 필름으로 기록되어야 할까요.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노출이나 구도, 색감 그리고 초점 문제에 관대 해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노출값, 색 균형 심지어 흐릿한 느낌마저 오히려 마음에 드는 것은 왜일까요. 무엇이 이 마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요.
필름은 현상을 거쳐 스캔을 받거나 인화를 해야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과 달리 필름은 과정 시간이 길고 기다림이 필요한데요. 기다림의 감정은 즉시 요구가 없습니다.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바로 요구할 수 없죠. 보통 어떤 사건에 대해 몸은 감정을 지금 즉시 표현하라고 합니다. 상황에 따른 반응이고 자연스러운 일이죠. 하지만 문제는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인지가 되지 못한 채 감정 표현을 요구받는 것이죠. 이때 요구에 응답하는 건 순간의 기분입니다. 그 순간의 기분에 따라 마음에 듦과 들지 않음이 판단되며 이 판단은 본능적이고 즉각적이죠. 그래서 순간의 기분이 지속될수록 피로해지고 힘은 소실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지칠 수밖에 없죠.
그래서 필름을 사용한다는 것은 즉시 요구를 사전에 봉쇄하며 감정과 힘의 소실을 피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도피이고 피정의 기분으로 사진 찍을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필름이 아니라도 순간의 기분에서 해방된 사진은 구도나 색감으로 판단되지 않아도 좋은 사진이 되는 것 아닐까요. 아날로그가 쉼을 준다는 것이 이런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