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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경민 Jul 07. 2019

#56 무위

   어느 날 같은 대상이 다르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밤길 중 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나뭇잎 소리와 잎의 결이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보이고 들리는 경우죠. 그런 상황을 볼 때 어떤 번뜩임 같은 것이 있습니다. 대상의 변화를 넘어 다르게 인식되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바다 앞에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되는데요. 이 순간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면 마치 바다를 담는 것처럼 느껴지겠죠. 갑작스러운 인식의 변화는 돈오의 출발입니다. 기존 인식은 전복되고 새로운 인식으로 대상을 보게 됩니다. 사진의 나타남은 이 새로운 인식으로 대상이 표현되죠. 갑자기 닥친 인식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 수 있을까요. 돈오는 언제 가능할까요. 방법은 알 수 없지만 그 순간을 체험한 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출발이 될 수 있을것 같습니다.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오라기의 혁명> 중 구절입니다.

저는 항구가 밝아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언덕 아래에서 불어오는 아침 바람의 영향으로 안개가 재빠르게 걷히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해오라기 한 마리가 한마디 날카롭게 우짖고는 날아가버리는 것이었어요. 그 순간이었습니다. 제 가슴속에서 안개처럼 피어오르던 일체의 혼미함이 일시에 날아가버리는 것이었어요. 제가 붙잡고 있던 생각과 사고가 단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확신하고 있던 일체의 의지처라고 할까, 근거라고 할까, 평상시 신뢰하고 있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p17
저는 미칠 듯이 기뻤습니다. 놀랍도록 개운했으며, 그 순간 다시 태어난 듯했습니다. p18

어떤 상황이 돈오를 불러왔는지 알 수 없지만 해가 들어오고 새 한 마리가 울며 날아가는 순간이 그에게 아주 특별하게 다가온 것이죠. 무슨 의미였을까요. 붙잡고 있던 생각과 사고가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게. 상황의 전복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나타납니다. 순간의 깨달음은 특정 상황에서 오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현상을 보는 가운데 나타난 것이라면 적어도 인위의 순간은 아니라는 것이죠. 자연의 흐름 가운데 그가 발견한 것은 무위였고 교육에서도 그 사상이 나타납니다. <짚 한오라기의 혁명> 구절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일 또한 부자연스럽고 불필요한 일입니다. 아이들 귀는 음악을 잘 잡아냅니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소리, 가볍게 흔들리는 숲의 바람소리, 이런 것들이 모두 음악입니다. 진짜 음악인 것입니다. p25

음악을 예로 들었지만 사진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다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는 일은 불필요합니다. 아이들 눈은 사진에 그대로 표현됩니다. 보는 모든 순간이 경이고 발견입니다. 보는 것 그 자체로 표현된 진짜 사진인 것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을 빗대면, 인위가 아니라 무위로 보는 것 자체가 이미 표현됨이고 사진으로 나타남이죠. 개념에 의해 정의와 해석될 수 없는 무위의 사진, 나타남 그 자체만 있는 사진, 감정이 표현된 사진, 앎과 평가에서 벗어난 무지의 사진, 자연으로부터 나온 사진. 어떤 경우의 사진이 가능할까요. 단지 찍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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