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진은 렌즈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됩니다. 그중 심도 표현은 렌즈의 특성이 나타내는 지표이자 개성의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렌즈의 구경이 클수록 극적으로 나타나죠. 심도가 얕은 사진은 대상을 부각하기 위해 필요한 렌즈의 광학 기능인데, 때론, 아니 어쩌면 초점이 맞은 대상만큼 중요한 것이 배경흐림의 모양입니다. 이상한 이야기입니다만 그렇습니다. 배경흐림은 초점이 맞지 않아 조리개에 따라 형태가 바뀌거나 흐릿한 모양 자체이지만 렌즈마다 흐림의 느낌이 다르다면 표현되는 것도 다른 것이죠. 그림을 그리는데 화가마다 붓질이 다른 것처럼 말이죠.
여기에 집착이 생기면 대상과 배경흐림의 역할은 역전됩니다. 조연이던 배경흐림이 더 중요하게 되는 것이죠. 1차는 배경흐림이고 2차는 대상입니다. 무엇인가를 표현함에 있어 부차적인 것이 우선시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죠. 이 부차적 조건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대상은 나타나게 됩니다. 대상보다 배경흐림의 기능이 우선될 수 있는 것은 결국 대상은 배경에 의지해 있고 배경 없이 대상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성적 표현은 대상이 아니고 배경입니다. 곧 렌즈가 표현의 전부인 것이죠. 렌즈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배경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는 어떤 렌즈로 볼 것인가이며 장비를 넘어 현실에서 나의 눈은 어떻게 개성적인 렌즈가 되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다르게 표현하는 능력은 배경을 보는 눈에서 시작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