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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 DCS 460

Kodak DCS 460B 에 관한 노트

by 문경민

디지털카메라 고유의 색감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각 카메라마다 렌즈나 CCD로 색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근래에 나온 카메라일수록 그 차이는 조금 더 좁혀지는 것 같다. 이미지 프로세싱 알고리즘 기술이 이제는 브랜드마다 상향 평준화에 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RAW 파일의 관용도 역시 좋기 때문에 보정 툴로 어떠한 느낌이든 낼 수 있다. 하지만 보정은 정신적 노동이다. 프로파일로 평균적인 보정은 할 수 있을지 모르나 마음에 들게 각 사진마다 보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족할 수 있는 사진을 보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게으름의 문제로 색보정이 필요가 없는 카메라가 필요했다. 있는 그대로. 와인이나 커피처럼 떼루아(terroir)가 있는 카메라를 찾고 있었다.




코닥 460_1995년 출시되었다. 화소는 620만, CCD는 1.3크롭이다.




KODAK DCS 460은 그 대안으로 구매하게 된 카메라다. (그다음은 시그마 정도 될 것 같다.) 카메라마다 RAW 촬영 시 이미지가 서로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 했지만 코닥 460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아닌 것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색보정을 하지 않아도 특이한 색감을 나오는 카메라를 처음 본 것이다. 빛을 받아들이는 CCD의 기술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인지 모르나 별도의 필터를 사용하지 않고 옛날 사진 같은 색바램 표현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니콘 카메라의 몸을 빌린 디지털백 형식의 카메라이며 LCD가 없다. 작은 액정부분에 배터리와 남은 컷수가 표시된다.




좋은 카메라가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에서 1995년에 출시된 600만 화소 디지털카메라를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휴대폰 카메라도 이제 1000만 화소가 넘어간다. 고화소 고화질로 사진을 쉽고 편하게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심도 표현의 정도는 아직까지 무리이지만 아이폰의 듀얼카메라처럼 심도의 실험적 시도는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기술은 따라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큰 카메라와 큰 렌즈는 언제나 최상의 표현력과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고 폰 카메라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나름의 위치를 유지한다. 선택의 입장에 있는 사용자는 그 용도에 맞추어 사용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사용의 선택적 갈등이 생기는 순간 큰 카메라가 조금은 불리하지 않을까. 그 불리함이 점점 많아진다면 그 위치도 폰 카메라에게 위협을 받지 않을까 생각된다. 디지털카메라는 위치를 지킬 수 있을까.




카메라 밑 부분_PCMPIA 방식의 CF 메모리 슬롯은 이 카메라가 얼마나 구형인지 알 수 있다.




시대를 지나 아우라의 상실이라 하던 디지털카메라는 이제 반대로 카메라의 다양한 흐름으로 인해 아우라를 가지게 되었다. 보정 단계를 거치지 않고 각자 카메라마다 고유의 느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폰 카메라의 시대를 보면서 아우라에 의미를 둘 필요가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폰 카메라는 결과물에 대한 재현을 넘어 독자적인 보정으로 CCD나 이미지 프로세싱의 의지가 아닌 사용자 중심의 선택으로 개성적인 이미지를 만든다. 이로 휴대폰 카메라는 다수적 위치에 서게 되며 기존 디지털카메라는 다수의 위치에서 소수의 위치로 내려감에 따라 특정 목적이 아니라면 사용할 이유가 없게 된다.


폰 카메라는 광학적 개선과 반도체의 개발로 큰 카메라만큼 현실성 있게 사진이 찍힌다. 원하는 대로 관리, 보정이 가능하고 소셜미디어에 쉽게 공유가 된다. 큰 디지털카메라의 시대는 크기로 인해 이미 끝이 났고 오직 이미지만 남았다. 어쩌면 지금의 이미지 방식도 막바지 수명에 이르렀다. (사진에 자이로 센서 적용이나 VR 등 최신 기술에 대한 대응이 너무 늦다.) 이미지는 소비와 획득이 빠르게 순환되고 있다. 사용 목적은 더 분명해져 별도의 큰 카메라는 특수한 상황(렌즈가 이유다.)이 아니면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그럼에도 큰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조금이라도 나은 사진을 간직하겠다는 몸부림이다. 폰 카메라의 강력한 유혹을 저항하겠다는 것이다. 큰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은 사진을 얻는 것 이상의 것을 얻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가 있다.)




카메라 자체를 드는 것이 힘들어서 핸드스트랩이 없었다면 포기했을 것이다. (공식무게는 1.7kg이다.)




코닥 460은 기본적으로 불편한 카메라다. 크고 무거우며, LCD도 없다. 감도 값은 80이 고정이다. 인식되는 메모리 카드를 별도로 찾아야 하며, 메모리 포맷 형식도 코닥 카메라나 윈도 2000에서 포맷해야 인식된다. 가지고 있는 1기가 메모리 카드로 158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배터리 용량 문제로 그마저 확실하지 않다. 버퍼의 문제로 연속 2장을 찍으면 30초 이상 기다려야 한다. 460은 RAW인 TIF파일 포맷으로 이미지를 저장하지만 코닥 RAW 전용 프로그램인 '포토 데스크'로 불러올 수 없다. 별도의 외부 툴로 사진을 불러와야 한다. 이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한다면 코닥 460은 재미있는 사진을 낸다. 필름 같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아날로그적인 투명한 느낌이 이전의 디지털과 전혀 다른 사진을 보여준다. 현재의 공간을 찍었는데 그 장소가 마치 30년 전 과거의 공간처럼 표현된다. 조금 당황스럽다. 왜냐면 콘탁스 ND처럼 이미지 프로세싱을 거친 JPG 라면 특유의 색감을 이해할 수 있지만 460은 RAW 파일 자체가 타임머신 같은 특유의 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니터에서 코닥 460의 사진을 보면 인화지에 인화된 사진을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보는 것 같이 아날로그의 향수가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어쩌면 폰 카메라에서 효과 어플로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분명 있는 그대로의 것은 아니다. 자극이 필요할 때가 있다. 사진에서 시선 끌기는 중요하다. 코닥 460을 사용하는 것 또한 색감의 영향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옛날이야기 같지만) 사진은 밖으로 보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외부의 시선이 아니라 내부의 시선에서 사진을 바라보는 것이다. 보정의 양념을 치지 않고도 사진을 통해 감동을 받을 수 있는가. 보다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으로 사진을 보는 것이다. 내면의 시선으로 사진을 보며 폰 카메라나 큰 카메라의 경계를 허물고 무엇을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고 싶은지 알 필요가 있다. 외부의 자극은 내면의 집중을 방해한다. 내면의 시선으로 보며 담백하게 사진 하는 것을 두려워 말자. 있는 그대로.




사진가들의 사진은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경험과 이벤트의 산물이어야 한다. _ 마빈 이스라엘




Kodak 460B_AF 50mm F1.4_문경민 2010







Kodak 460B_AF 50mm F1.4_문경민 2010






Kodak 460B_AF 50mm F1.4_문경민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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