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도 노동자인가요?

당신과 나의 노동에 대하여

by 달강

나는 노동하는 사람이다. 많은 이들이 꿈꾸듯 나 역시 돈 많은 백수를 꿈꾸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일터에 가고, 노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일터로 가기 위해 몸을 일으켜 준비를 해야 하지만, 오늘따라 몸이 무겁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시간을 벌며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다 이런 생각에 미쳤다. 노동은 어떤 모습일까?

어제저녁, 혼자만의 승리를 기념하며 올린 인스타그램 댓글에 꽤나 오래 알고 지냈지만 수년간 연락이 끊겼던 신부님의 댓글이 달렸다.


그 신부님과 처음 만난 건 2012년쯤이었을까. 그 얼마 전까지 나는 쌍용자동차 대규모 해고사태도, 시위도, 폭력적인 진압도 전혀 모른 채 평온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고된 노동자들이 서울 시청 인근에서 농성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찾아보다 농성장까지 가게됐다. 해고 노동자들은 파란 천막을 치고 먹고, 자고, 피켓을 들었다. 또 한 번의 우연으로 내가 다니던 학교는 그 인근에 있었고, 나도 종종 그 곳에 들르게 됐다.

나는 아마도 나에게 유일한 후배이면서 가장 아끼는 친구와 종종 그곳에 들러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피켓을 들고, 밥을 나눠 먹고, 저녁이면 집회를 했다. 그곳에서 그 신부님을 처음 만났다.

나는 종교를 신뢰하지 않았다. 사람의 약한 마음을 달콤한 말들로 현혹하고, 의지하게 만들고, 판단력을 흐리고, 그 이득은 일부 '성직자'들이 취한다고 생각했다.

그 신부님은 내가 생각한 성직자의 모습과 많이 달랐다. 가톨릭 성직자이기 전에, 신념 있는 직업인의 모습이 내겐 더 크게 다가왔다. 성직자의 종교활동을 노동이라고 하는 것이 실례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땀을 흘리고 생을 가꾸는 모든 일들이 노동이라고 믿기에, 감히 그분의 노동을 말한다. 신부님은 어렵고 힘든 자를 돕는 일엔 주저함이 없었고, 머리 보단 가슴으로 다른 이들을 대해주셨다. 자신을 성당에 가두지 않았고, 단단한 신념은 아무리 까만 밤에도 빛을 냈다.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신부님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 중 한 분이다.

신부님이 부산에 가신 후로 한 번 뵌 적이 있고, 그 뒤로 연락이 어영부영 끊겼다가 최근 인스타그램 디엠을 받은 것이다. 어찌나 반가웠는지. 부산에선 보육원 일을 함께 돌보셨는데, 최근엔 어떤 일을 하고 계실지 이 또한 기대된다.

신부님의 노동은 대체로 신자들의 곁에, 때로는 해고노동자 곁에, 때로는 아이들의 곁에 있었다. 누군가의 삶에 훌륭한 지침이 되기도, 아픈 이들을 달래기도 하는, 필요한 곳에 언제고 가닿는 노동. 신부님의 노동은 단단하고 한 없이 따뜻하다. 신부님의 노동은 한 여름의 아스팔트도로를 닮았다.

신부님의 숭고한 노동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신부님의 존재 자체가 나로 하여금 다른 이들의 노동을 들여다보도록 일깨웠다. 신부님께 배운 따뜻하고 올곧은 시선이 글로 담아질지 모르겠으나, 잘, 다정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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