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으로 적극적인, 민중의 지팡이
당신과 나의 노동에 대하여
“(그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판단을 하려고 하고, 내적 충돌을 느끼면서 최대한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출동) 명령을 내린 사람들의 입장에선 소극적으로 (보이는) 것이었겠지만 보편적인 가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던 적극적인 행위였다고 생각이 된다.”
(한겨레, '한강은 보았다…계엄군의 머뭇거림을 [특파원 칼럼]' 발췌)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계엄사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했던 대답의 일부다. 계엄사태에서 국회 진입을 막아섰던 경찰과 군인의 모습을 본 사려 깊은 작가의 유려한 문장이라 생각했다.
내 기억 속 경찰의 선연한 첫 모습은 7살 아니 8살이었던가. 해가 기운 저녁 파출소 안 어느 작은 공간에서 백반이 담긴 쟁반 건너에서 콩나물반찬을 집어 먹어보라며 입에 가져다주던 모습이다. 그날은 오일장이 선 주말이었다. 새학기를 맞았는지, 새 계절을 맞았는지, 언니와 3살 차이라 내 몫의 새 옷은 거의 없는 유년시절이었는데 그날따라 엄마가 나를 데리고 장에 갔다. 좌판에는 각종 만화 캐릭터가 프린트된 티셔츠들이 나뒹굴었고, 사람들은 북적였다. 나는 새 옷을 산다는 설렘에 잔뜩 들떠있었고, 엄마는 나름 큰 맘을 먹고 데려온 만큼 호기로웠다. 엄마는 생업에 치였던터라 내가 어떤 만화를 보고, 어느 캐릭터를 좋아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몰리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누군가 들었나놨다하는 옷을 곁눈질로 보다 비슷한 옷들을 집어들어보이며 좌판 건너편에 있던 나에게 물었다.
"이건 어때? 이건?"
나는 한창 좋아하던 캐릭터가 그 좌판에 없다는 걸 알고 이미 시무룩했고 엄마가 들어보이는 옷들이 전부 성에 차지 않았다. 엄마가 한껏 좌판을 휘젓는 동안 나는 시장 여기저기를 스캔했다. 그러다 시장 한 귀퉁이에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의 얼굴이 박힌 티셔츠가 걸려있는게 눈에 들어왔고, 나는 엄마가 날 눈으로 쫓는지 신경쓸 겨를도 없이 그 가게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는 맘에 쏙든 옷을 보고 신이 나서 엄마가 있던 방향으로 들어보였다. 하지만 그곳엔 엄마가 없었다. 그리고는 기억이 끊겼다가 시장 한복판에서 엉엉 울던 기억으로 이어지고, 그리고는 경찰서의 그 장면으로 이어진다. 아마도 누군가 나를 경찰서에 데려다줬겠지. 생각해보면 당시엔 어린이 납치사건도 많고 험한 꼴을 겪는 일도 많았는데, 아무 탈 없이 경찰서에 갔던 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그치만 그때 나는 결국 그 티셔츠를 사지 못한 아쉬움과 왜 콩나물반찬을 줄까 나는 햄 반찬이 먹고 싶은데, 따위의 안일한 생각 뿐이어서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 다음 기억은 대학때 어느 농성장에서 본 경찰의 모습이다. 수십, 수백일 간 버티고 있던 농성장을 치안과 도시정비라는 이름으로 철거하던 모습이다. 경찰이 다녀간 농성장 자리엔 커다란 화분이 놓여졌다.
경찰은 다양한 일을 한다.
미아 찾기, 주취객 집에 보내기, 각종 신고에 출동해서 현장 순찰하기, 집회 시위대 관리, 교통정리 등. 어쩌면 우리의 일상에 가장 가까이 존재하고, 그만큼 누구라도 어려운 상황에서 제일 먼저 떠올리는 직업일 것이다. 늦은밤 길을 가며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가로등과 같은 존재가 나에겐 경찰이다. 너무나도 필요하고 없어선 안 될 존재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농성장의 천막을 뜯어내고, 버티는 사람들을 끌어내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경찰에 대한 내 이미지는 조금 찜찜하다. 너무 고마운 노동자들인데, 정말 고마운데, 어딘가 묵직하게 내려앉는 기분이다.
나에게 도움을 준 경찰도, 농성장의 사람들을 끌어냈던 경찰도 같은 경찰이다. 그들 모두 자신이 맡은 일을 했을 뿐이다. 농성장 때문에 분명 불편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의 민원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어떤 정치적 결정이 있었을수도 있다. 어쨌든 그 철거에 가담한 대부분의 경찰은 그 의사결정과정에 없었고, 다만 상부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을뿐이다. 농성장 철거가 반드시 나쁜일이냐, 이 또한 가치판단의 영역이니 마냥 그들을 나쁘게 매도할수도 없다. 나는 그저,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마음이 신경쓰였다.
이런 불편한 마음을 십여년 안고 살다 만난 한강 작가의 문장이 어찌나 반갑던지. 나의 묵은 체증을, 나의 정리되지 않는 뿌연 생각들을 말끔히 씻어줬다. 한강 작가가 들여다본 518 당시의 계엄군과 123사태에서 본 군경찰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고 한다. 정말 적을 대하듯했던 518 계엄군과 달리 123사태의 군경찰은 최대한 소극적으로 적극적이었다. 그 상황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면서, 맹목적으로 지시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판단으로 행동을 통제해가며, 본인이 잘못하지 않을 방법을 수없이 찾았을 2024년의 군, 경찰.
대학때 알던 한 선배는 졸업 후 경찰이 되었는데, 경찰노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소식을 몇번 들었다. 우리나라는 공무원의 노조활동이 헌법에 의해 통제된다. 특히나 무기를 다루는 직업은 더욱 제한된다. 어쩌면 노동조합이 자생하기 가장 어려운 조건이 경찰인데,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무력감을 견디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40년도 더 전에는 통제된 언론과 찌라시뿐이었지만, 지금은 너무도 많은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보여주는 것만 보고 본대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직접 찾고 다른 이들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들어가며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이런 변화를 볼 수 있게 된건 아닐지, 정보화 시대가 시민사회에 준 순기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가 조금씩 나아간다는 명제를 필사적으로 믿으려 한다. 하지만 때때로 정말 나아가는 것이 맞나 의심이 들곤 한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보니 그럼에도 40년 전보단, 10여년 전보단, 지금이 낫다는 안도가 든다. 가장 늦게 바뀔 것 같은 군, 경찰도 조금은 달라지고 있구나. 사회가 더 나아지는 방법을 살뜰히 찾아내고 있구나. 그들이 더 큰 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나도 나의 걸음을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