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한 계약직, 무기계약직
당신과 나의 노동에 대하여
2024년의 마지막 날, 여전히 업무에 치여 있던 중에 전화가 울렸다. 2일에 상담을 해줄 수 있느냐는 인권위 담당자의 전화.
그렇게 새해 첫 업무는 인권위 상담이 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노무사,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전문상담위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노무사는 노무분야 특화 전문상담위원으로, 대체로 직장에서의 인권침해나 차별 사안으로 찾지만, 거리가 먼 상담들도 꽤나 많다. 새해 첫 상담을 예약해서 오는 내담자들인만큼 어려운 상담이 기다리고 있을것같아 걱정을 많이했다. 내가 모르는 분야, 혹은 아무래도 상담의 갈피가 잡히지 않는 이야기들이면 어쩌지. 다행히 예약된 상담 두 건 모두 정확히 노무분야의 상담이었다.
첫 번째 내담자는 너무나도 정확히 노무분쟁이어서 더 적합한 기관을 안내하고 상담을 마무리했다. 두번째 상담은 노무분야이긴한데 인권위의 소관은 아니고, 그렇다고 뚜렷하게 다른 기관을 소개하기도 난감했다. 바로 무기직의 처우와 관련된 상담이었다.
문재인정부는 2018년 대대적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선언하고, 시행했다. 그 전까진 공공기관에서도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식대부터 명절 선물까지 촘촘히 차별 받는 비정규직들이 정말 많았다. 정규직화는 노동계의 오랜 숙원이었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실현이라 여겼다. 하지만 입직부터 다른 정규직의 반발은 거셌고, 사회는 입직에 의한 차별은 합리적이라는 합의를 쉽게 이뤄냈다. 그 결과 비정규직이던 근로자들은 무기계약직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물론 근로계약기간의 정함이 없어지며 찬바람이 불면 해야했던 재계약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식대, 교통비, 가족수당과 같이 정규직과 무기직이 굳이 다를 이유가 없는 수당들도 대체로 비슷한 수준으로 보장받게 되었다. 하지만 정규직과 달리 아무리 연차가 쌓여도 승급이나 승진이 되지 않는 큰 벽을 마주한다.
관료제를 썩 좋아하지 않는 나로썬 승급이나 승진이 없다는게 뭐가 대수인가 생각하던 시절도 있다. 적절한 대가를 받으며 일할 수만 있으면 되지. 하지만 일은 생각보다 단순한 돈벌이 이상이고, 비경제적인 보상이 생각보다 큰 동기와 유인이 된다. 하지만 이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정해진 급여만 받다보니 열심히할수록 박탈감만 커지고, 잘할수록 자괴감만 커진다. 그저 돈 받는만큼만 하자, 무사안일주의의 나태함이 아니라 무기직의 삶을 버텨내기 위한 자기방어기제다. 발전이 없는 삶, 얼마나 권태로운가.
정규직이 아니니 정규직의 처우를 온전히 누리지는 못하는데, 비정규직은 아니라서 기간제법 등의 보호를 받지도 못한다. 이도저도 아닌 중간지대의 신분, 무기계약직의 노동자들은 깍두기 같다.
정규직 무기직 비정규직.. 누구 하나 필요 없는 노동이 없다. 신분과 관계 없이 저마다 맡은 바를 충실히 해낸다. 입직이 다르다, 스펙이 다르다, 일의 중요도가 다르다.. 물론 납득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다만,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데 누군가의 노동은 제대로 존중되고 누군가는 반절만, 또 누군가는 때때로 존중되는 것 같은 씁쓸함이 맴돈다. 누구에 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노동자체로 오롯이 존중받을 방법은 없는걸까? 모든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을 귀히 여길 수 있으려면 이 사회는 뭘 해야할까?
새해에는 그 답을 찾을 수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