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무런 일정도 없어 남편과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난 나른한 주말 아침. 잠에서 막 깨어 뒤척이던 나에게 나보다 조금 일찍 깨어있던 남편이 말을 건넨다.
"비행기 사고 났대. 사망자가 많은가봐."
물론 우리나라가 아니라고해서 별일이 아닌 게 되진 않겠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겠지, 하는 마음이 들어 되물었다.
"어디서?"
"무안공항이라는데"
"응? 우리나라?"
비몽사몽인채로,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 급하게 인터넷 뉴스를 찾았다. 남편의 말은 사실이었고, 사고를 수습 중이라지만 생존자는 그대로고 계속해서 사망자 숫자만 늘어만 갔다. 이태원이, 세월호가 스쳐갔다. 어떻게 이런 대규모 참사가 또 일어났을까.
사망자 179명. 탑승자 중 생존자는 단 두명. 두 명은 모두 승무원이라고 한다. 지난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이 떠오르면서, 거기서 살아 남았던 노동자들이 떠올랐다. 대규모 참사의 생존자들은 살아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존재인데도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 날의 끔찍한 기억도 너무 큰 트라우마지만,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를 더 힘들어하는듯하다. 감히 그 고통을 이루 말할 수 없어 조심스럽지만,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이다. 그리고 부디, 살아달라는 말.
그저 여느때와 같이 출근을 하고, 퇴근시간만 바라보던 노동자였을 것이다. 긴 출장의 피로에 지친 몸을 애써 추스르며 곧 착륙한다는 생각에 없던 힘을 짜내고 있었겠지. 그러다 갑작스럽게 기내 상황이 좋지 않다는 얘기에 잔뜩 긴장을 한 채로, 생전 써먹을 일이 없겠지, 했던 안전매뉴얼을 급히 복기하며, 비상상황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무수히 많은 고민들을 하며, 무사히 착륙하기만을 빌고 또 빌었을 노동자.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고, 다만 다른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여 스스로 아프고 또 힘들 노동자. 부디 죄 없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이 아프지 않고, 안온한 일상을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얼마전 읽은 산재(산업재해의 줄임말. 업무와 관련한 재해를 일컫는 말.) 관련 책에서 아프게 읽었던 부분이 머릿속에 겹친다. 몇몇 철도노동자의 이야기였다. 철도노동자들에겐 사상사고를 당하면 '손씻기'를 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사고가 있은 날 소주로 손을 씻는 문화다. 지금처럼 스크린도어가 있는 때에도 불가피한 사고가 발생하는데, 예전에는 얼마나 더했을까. 빠른 속도로 수백, 수천명의 승객을 태우고 달리는 기관사로선 철로에 누군가가 있다고해서 갑자기 열차를 멈춰 세울수도, 옆으로 방향을 틀수도 없다. 그저 사고가 예견된 그 수초를 오롯하게 견뎌내야한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정해진 길을 따라, 정해진 일을 했을 뿐인데, 누군가의 죽음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목격한 장면 자체도 너무나 충격적이다. 몇 년을 꿈에 나타나고, 심리상담, 정신과상담을 있는대로 받아도 차마 다시 운전대를 잡을 수가 없다. 다른 직으로 옮겨 가도 여전히 트라우마는 따라온다. 아무 잘못도 없는 이가, 다른 이의 죽음을 외면하지 못한 죄로 여생을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안전에 관한 규칙들은 피로 쓰였다는 말이 있다. 철도노동자들은 본인의 잘못이 아닌 일들로부터 보호해달라고, 설령 일말의 책임이 있다하더라도 그 이상의 책임까지 지지 않게해달라고 수십년을 싸웠다. 강성노조네, 배가 불렀네, 시민의 발을 볼모로... 노조가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싸운다한들 손가락질 받을 이유는 없지만, 철도노동자들은 그 보다 더 대의를 앞세운 싸움들을 전면에 둬왔다. 거기엔 수많은 노동안전에 대한 요구도 있었다. 더이상 피로 쓰지말자고 철도노동자들은 목소리를 내고 쟁의행위를 했다. 그냥 세상이 좋아져서 지하철, 기차가 좋아진 게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들의 처절한 싸움의 결과였다.
중앙일보의 기사를 보고 당황스러웠다. 승무원의 가족이 숨죽여 울 이유가 뭐라고, 기사 말미엔 제주항공 관계자가 "가족 잃은 슬픔은 같은데"라고 말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승객의 유가족들 중 누구도 승무원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일을 하다 목숨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죽음에까지 프레임을 씌우는 언론의 행태가 너무도 잔인하고 비열하다. 누구의 죽음이 먼저인 사안인가. 무슨 의도로 이런 기사를 냈을까. 이 기사의 유일한 책임은 제주항공에 있다. 사고의 책임은 더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혹시나 직원의 희생에 대해 부당한 시선이 있다면 회사가 나서서 보호해야한다. 직원들도 죽었어요.. 라고 읊조릴게 아니라, 직원의 희생에 면목이 없다, 죽음에 책임을 다하겠다, 직원들에 대해 함부로 비난하지말라,고 나서서 얘기하는 것 아닌가.
대중교통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해서, 그 편안함을 유지하기 위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력이 자주 간과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대중교통 또한 위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노동자들은 작은 실수조차 하지 않으려 주의를 기울이며 높은 책임감으로 노동한다. 대중교통을 움직이는 노동자들은 촘촘히 직조된 안전망을 닮았다. 누군가의 안전한 발이 되어주는 대중교통 노동자들. 그들의 매일이 더없이 안녕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