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경계선의 서비스라는 노동

당신과 나의 노동에 대하여

by 달강

며칠 전부터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신경쓰였다.

반곱슬에 숱이 무진장 많은 나는 정기적으로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펴는 펌을 하는데, 두어달전에 미용실을 다녀왔지만 이번엔 도통 신통치 않았다.

이런 와중에 레이어드컷을 한 사람의 사진을 보고 이렇게나 가벼워보이다니! 하는 부러움이 용솟음쳤고 마침내 머리카락을 쳐내러(?) 돌발적으로 집 근처 미용실로 향했다.


근방에선 꽤 저렴한 편이라 그런지 평일 낮임에도 손님이 많았다. 오후 한시반에 들렀는데, 네시반이 가장 빠르게 예약이 가능한 시간이라고.. 예약자명단을 작성해두고 집으로 돌아와 밀린 집안일을 하다 시간에 맞춰 다시 왔다. 한 남성 손님이 컷트를 하고 있었다. 남성손님의 요구가 꽤나 까다로웠는지 예약시간이 20분 가까이 지나서야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생각해둔 머리 모양을 보여주고, 내가 원하는 느낌을 설명한 뒤 안경을 벗고 머리카락을 맡겼다.


내 머리를 해준 미용사는 나를 기다리게 한 미안함때문인지,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이 하고 싶었는지 손질을 시작함과 동시에 방금 다녀간 손님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처음엔 이렇게 해달래서 다해놓으니 그게 아니라며 다시 해달라더라, 드라이만 조금 하면 된다고 하니 드라이를 하면 머릿결이 상하고 흰머리가 난다(?)더라, 그럼 드라이는 안하는게 좋겠네요 하니 그래도 드라이를 좀 하는게 낫지 않겠냐면서 드라이를 어떻게해야하는지 한참이나 더 물어보더라, 그 외에도 머리카락 시술과는 전혀 무관한 온갖 개인적인 얘기를 계속하는데 도대체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모르겠더라, 한참이나 그 손님에 대해 얘기하던 그녀는 이내 멋쩍은듯이 '손님한테 다른 손님 얘기하면 안되는데. 에휴.'하고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 사업주를 상담하든, 근로자를 상담하든, 노동법과 무관한 하소연들이 상담시간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용건만 간단히. 옛날 집 전화에 붙여둘 법한 경고지를 붙여둘 수도 없는 일. 본론이 나올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듣고, 맞장구를 치고, 적절한 타이밍에 질문을 던지고, 적당히 건너뛰기를 시전해야한다. 나는 노무사가 노동법만 잘 알면되지, 사건만 잘 처리하면 되지,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물론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완벽히 잘 추려진 사실관계와 명료한 질문을 가지고 오는 내담자는 없다. 그건 전문가가 할 일이다. 비전문가는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허무맹랑한 질문들을 하기도 하며, 근거 없는 주장도 한다. 비전문가니까 당연하다. 그 안에서 필요한 사실관계를 잡아내고, 정밀하게 질문을 만들고, 논리적으로 답을 찾아내는 게 전문가인 노무사의 역할이다. 그러려면 노동법만 아는 것으론 부족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내놓도록 라포를 형성하고, 부적확한 표현들의 진정한 의미를 간파하기 위해 공감도 해야한다. 가끔 감정을 이입하고 자주 감정을 노동한다.


물론 노무사는 그러한 '불필요한 이야기'를 듣는 것까지도 일의 일부이기 때문에 때론 지나치게 장황한 이야기나 수 없이 반복되는 도돌이표에 정신이 혼미해질지언정 내 일이 아니라고 선을 긋긴 어렵다. 하지만 미용사라는 직업에 이런 지난한 과정은 불필요하다. 좋은 손기술로 적절한 약제와 도구를 활용해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을 구현해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대개의 미용사들은 손기술만큼이나 유려한 스몰토크 능력과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이 요구된다. 일은 손으로 하니까 말동무는 해줄수있잖아~ 하는 마음일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적막을 서로 견디지 못해서인지, 미용실의 특성상 단골손님이 중요하니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함인지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마음으로 건네지는 말이라도 정도가 지나치면 버거운 감정노동의 영역이 된다.


서비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제공한다. 결과물은 물론 눈에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그 과정은 대체로 노동력과 그 노동자의 전문성, 노하우, 실력 같은 것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서비스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서비스와 노동자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서비스노동은 흙바닥에 막대기로 그어놓은 선처럼 경계가 흐려지기도, 선을 넘기도 쉽다. 머리 손질이라는 서비스를 받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임에도, 머리 손질이 이루어지는 노동자의 시간에 대한 대가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 시간 내에만 이루어지면 내가 정당히 요구할 수 있어.


얼마 전 '근무시간에 받았던 내평생 제일 어이없는 업무'라는 이름의 게시글을 보게 되었는데, 글쓴이는 '대표 아들 숙제해주기'를 해봤다고 한다. 그 밑엔 비슷한 경험을 한 증언들이 수도 없이 댓글로 달려있었다.

'대표 강아지 병원 델따주고 오기'

'나는 대표 강아지가 쓸 방석 사오기'

'대표 딸 유학서류 준비해주기'

'사장 담배치우는거'


우리는 분명 일을 하기 위해 고용된다. 그 시간, 고용인에 매여서 나의 노동력을 제공한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동안 '어떤 일이든 하기 위해' 고용된 것은 아니다. 경리는 서류 작업과 장부 정리, 영수증처리 등 다양한 일들을 하지만 대표 강아지를 병원 데려다 주는 일이 당초 경리의 일은 아닐 것이고, 비서가 아니고서야 설령 비서라고 하더라도 사장이 가래와 함께 버려놓은 담뱃재를 치우는 일까진 업무의 범위로 보기 쉽지 않다. '일'과 '개인적인 요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한번 놀라고, 내 돈 내고 쓰는데 개인적인 일 왜 못 시켜?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에 두 번 놀랐다.


사람의 노동을 존중하는 것은 그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가늠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내가 그 사람에게 얻고 싶은 것이 머리를 손질하는 것이라면 그 사람이 머리손질을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에서 출발해야한다. 그 사람에게서 얻고자 한 것 이상을 일방적으류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아야 오롯이 그 사람의 노동을 존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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