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노동자 하나요~

당신과 나의 노동에 대하여

by 달강

한 달에 한 번, 지하철역에서 무료 노동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우연한 기회로 하게 되었는데, 어쩌다보니 정기적으로 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지자체 담당자로부터 하루는 연락을 받았다. 해당 지자체에서 '플랫폼노동자를 위한 쉼터'를 만들어 운영하게 되었는데, 개소식에 노동상담을 하러 와 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사실 이 날 오전은 이미 편도 자차로 2시간 반 거리의 지역에서 강의가 있고, 강의가 끝난 직후 이미 선약이 잡혀있었으며, 저녁엔 사무실 인근 노무사님들과의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다. 경기도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일정이라 루트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매우 빠듯했는데, 잠깐 고민을 했지만 아무래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중간 선약을 취소하고 가겠노라했다.


플랫폼노동이란 어느 사업주(고용주)에 종속되어 일을 한다기 보다는 플랫폼을 통해 일이 구해지고, 업무 지시가 전달되는 형태의 노동을 말한다. 그날 오전 중학교 강의에서 설명할때 썼던 표현을 빌리자면 "어플을 통해 일이 생기고, 어플을 통해 업무를 지시 받고, 그 일을 시킨 사람은 어느 사장이 아니라 어플로 주문을 한 소비자가 되기 때문에 일을 하나하나 할때마다 사실상 사장이 바뀌는 형태"의 노동이다.


전통적인 노동은 한 명의 사업주를 위해 다수의 근로자가 일을 하는 형태를 띈다. 내가 일을 해서 벌어들이는 수익의 일부를 인건비로 사업주가 내게 주고, 나머지 이익금들은 본인이 취한다. 일이 없거나 적자가 발생했다고해서 인건비를 안 줄 수는 없고, 적어도 시간당 정해진 급여만큼은 줘야할 의무가 사업주에 있다.


하지만 플랫폼 노동은 어플을 통한 수요가 없다면 노동자가 아무리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가 없고, 일이 생기길 기다리는 시간, 일이 지체되어 낭비되는 시간들을 누구로부터도 보상 받을 수가 없다. 좋게 본다면 자신이 일한만큼 벌어가는 구조이지만, 실상은 '안전하게, 적당히' 일을 해선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는 구조다.


플랫폼노동의 대표적인 예는 배달의 민족이나 요기요와 같은 어플을 활용해 일하는 배달노동자들이다. 코로나시기를 겪으면서 배달 수요가 부쩍 늘어난 것이 체감이 되고, 1년에 한번 배달을 시킬까말까 하던 나도 요 몇년은 1년에 다섯손가락 정도는 배달을 시켜먹는 것 같다. 특히 비나 눈이 와서 어딜 나가기가 더욱 번거롭거나 길이 많이 막히는 퇴근시간, 혹은 늦은 밤과 같은 시간대에 배달이 유독 고파진다. 비나 눈이 오면 노면이 미끄러워서, 너무 늦은 밤엔 길이 어두워서 더욱 운전이 긴장된다. 하지만 소비자는 안락하고 밝은 실내에서 음식을 기다리고, 배는 점점 고파진다. 배가 고플수록 짜증이 나고, 비가오든 눈이오든 제시간에 음식이 안 오는 것에 불만이 생기게 된다. 이로 인해 불만이 접수되면 배달노동자들은 한시적으로 배달이 금지되는 등 페널티를 받기도 한다. 심지어 일을 가려서 받으면 그것대로 페널티가 부여된다. 일을 안하면 누가 대신 돈을 벌어주지 않는 플랫폼 노동자. 페널티는 경제적 곤란으로 직결되므로 배달시간을 엄수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야한다.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과속을 하거나, 위험천만한 신호위반을 하기도, 아슬아슬 차 사이를 헤쳐지나가기도, 땅에 닿을정도로 급 커브를 하기도 한다. 실제 일을 하다 다치는 배달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은 대체로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불법'이 되어 산재인정이 어렵고 건강보험 혜택 조차 받지 못한다. 생계를 위해 위험에 내몰리고, 그 위험이 다시 생계를 좀먹고. 좀처럼 헤어나올 수 없는 악순환의 굴레다.


그런 노동자들을 위해 자치단체 등에서 이동노동자 쉼터, 플랫폼종사자 쉼터 등 더위나 추위를 피하고, 휴대폰을 충전하고, 쪽쉼을 할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사업주는 없고 수요는 있는 노동, 아니 사업주가 너무 많아 모두의 책임이 희석되는 노동. 그 노동자들에게 사회가 작은 복지로나마 책임을 다하려는 것이다. 너무나도 필요한 일이다.

강서구 플랫폼노동자 쉼터 개소식 장면

플랫폼노동자 상담을 하고 넘어간 자리는 술자리였다. 술자리가 있으면 차를 두고 다니는데, 이 날은 하루종일 이동거리가 길어 도저히 차를 안 가지고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 대리운전을 이용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절묘한 우연이다. 어플로 주소를 입력하고 카드정보를 입력하고, 1분이나 걸렸을까. 손쉽게 대리운전기사를 요청할 수 있었다. 새벽 두시에 대리운전기사가 있을까,하는 우려를 비웃듯 요청이 가고 단 몇 초만에 인근 대리운전기사가 배정이 됐다. 새벽의 날씨는 추웠다. 하필 얇은 옷을 입고 나와서 벌벌 떨며 왜 이렇게 안오나, 메세지를 보내 보채야하나,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다보니 10분쯤 지나 대리운전기사가 나타났다. 고작 10분이었다. 덕분에 나는 마음놓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도 집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었다. 그런데도 고작 10분을 못 기다려 짜증이 치밀었다. 다행히 짜증을 다스려 내비치진 않았지만, 술 김에 얼마나 무례한 사람들이 많을지, 별의별 진상을 다 만나겠다 싶은 생각에 미쳤다.


누군가 누리는 안락함은 누군가의 희생의 결과라는 말을 좋아하는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심야에 불안정한 노동을 감당하는 노동자들이 있어 내가 안락함과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비해 그들에게 돌아가는 대가는 터무니 없다. 누구도 그들의 고용불안이나 불안전, 불건강을 책임지지 않는다. 오롯이 본인들이 감당하면서 경쟁에 내몰려 더 값 싸지고 더 위험해진다. 플랫폼노동이란 그럴싸한 이름 뒤에는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노동'이라는 현실이 있다. 플랫폼노동은 일회용 플라스틱을 닮았다.


국제플라스틱협약을 논의하기 위해 각국에서 부산으로 모였다. 모 학자는 우리가 쓴 플라스틱들이 미세플라스틱으로 이제 대기에까지 스며있다고 한다. 들숨에 미세플라스틱을 몇 그램씩 먹는 것이라며 경고한다. 우리가 쉽게 버린 플라스틱처럼 우리가 쉽게 쓴 노동도 언젠가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점차 플랫폼노동은 전체 고용시장에서 파이를 키워가고 있고, 어떤 뉴스에선 20대 취업자의 60% 이상이 비정규근로자라고도 한다. 고용시장의 지각변동이 언젠가는 전체 노동자들의 지갑변동으로, 모두가 모두를 불안정 노동으로 내모는 현실을 가져오진 않을까.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너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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