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 씻고 출근을 하고 지루한 시간들을 견뎌내고 퇴근하고 지친 몸으로 저녁을 차려 먹고 유튜브를 보고 자고.
누군가는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에 '지루'해하지만, 누군가는 그 지루함을 느끼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내야한다.
출근을 하지만 퇴근을 기약할 수 없는 노동자. 나는 건설노동자의 삶이 위태롭다.
한 해에 일을 하다 죽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10명? 100명? 근로복지공단이 유족급여를 승인한 근로자는 8~900명 선, 하지만 은폐되거나 유족급여 대상이 아니거나 신청 조차 하지 못한, 혹은 인정받지 못한 사망자를 합치면 2000명대라고 노동계는 추산한다. 그 중 건설노동자가 단연 절반을 넘게 차지한다. 끼이고 떨어지고 깔리고 부딪치고.. 건설현장에 출근한 노동자들 중 하루에 한두명은 퇴근하지 못한다.
출처: 연합뉴스
텔레그램이라는 sns로 노동안전보건채널을 구독하고 있다. 이 채널은 각종 노동안전과 관련된 소식을 공유해주는데, 그 중엔 상당수가 고용노동부에서 배포하는 '중대재해 발생 알림'이다. 이 알림은 하루에도 몇 번씩 노동자의 사망 소식을 전한다. 처음에는 경각심을 주는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 섬뜩하고 기괴하게 느껴졌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소식들을 듣고 있자니 '노동자의 목숨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보세요'라고 놀리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한 사람의 삶이, 그 사람을 지탱하던 세계가 무너진 사건이 육하원칙에 맞춰 정리된 한두 문장과 일러스트 하나에 다 담길 수 있나.
사람을 쌓아 올리지 않고는 건물을 세울 수가 없나? 노동자들은 건물을 세우기 위해 허리 어깨 팔 무릎을 다 갈아넣는데, 정작 노동자들의 삶은 하루하루 모래성처럼 위태롭다는 게 너무도 역설적이다.'때때로 나쁜 일은 선한 사람에게 일어난다'지만, 그들의 죽음이 정말 불가항력인지 의구심이 든다.
산업재해는 미미하나마 줄어들고 있다. 안전관리 의무가 점점 강해지고 있고, 안전에 대한 노동자 스스로의 의식도 계속 높아진다. 인력으로 막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덮쳐 죽음에 이르게할 정도의 중량물이라면 철저히 고정하고, 사람을 받치는 시설물은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사다리작업은 2인 1조로 하고, 인도와 장비이동로를 구분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천 여가지 안전수칙을 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는 현장이 태반이고, 그래서 나는 사고도 상당수다. 지킬 건 지키자. 안전수칙을 지키면 목숨을 지킨다. 그게 어려운 일인가?
내일 세상이 종말한다면? 과 같은 질문을 한번쯤 생각해봤을 것이다. 여행을 가겠다, 돈을 펑펑 쓰겠다, 가족과 식사를 하겠다.. 대부분의 사람은 출근하겠다는 대답을 하진 않는다. 내일 세상이 망한다는데 무슨 출근이야. 하지만 오늘 당장 나의 세상이 무너질지 모르는데도 건설노동자들은 나를 사지로 몰아넣을지도 모를 지옥으로 출근을 한다. 매일매일이 죽음과의 사투다. 원치 않아도 살기 위해 하는 행위가 일이 아니던가. 살려고 죽는다. 이런 모순이 어딨나.
최소한 노동자가 일을 하다 죽는일만큼은 없었으면 좋겠다. 출근을 하면 당연히 퇴근할 수 있다는 것을 약속할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오늘 보다 내일이 더 안전하기를. 모두가 안녕히 퇴근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