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노동자는 지구를 구해

당신과 나의 노동에 대하여

by 달강

지금 사는 동네엔 이사 온 지 2년이 되었다.

이곳에 이사와서 내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수선집이었다.


근 몇 년 간 소비를 줄이기위해 노력 중이다.

살면서 쓰고 버리는 것들이 수도 없지만, 가급적 멀쩡히 버리는 것들은 없길 바라고, 필요해서 뭔가를 살 때도 중고거래 앱에서 먼저 찾아본다. 가끔 인터넷 최저가 주문이 저렴하기도 한데, 쓰레기를 덜 만드는데 돈을 썼다고 합리화한다.


그 중 옷은 특히 난감하다.

인터넷에선 만원짜리 치마 바지 셔츠가 널려있는데, 중고로 필요한 옷을 찾으려면 사이즈부터 소재, 가격까지 원하는 것들을 찾기가 꽤나 번거롭고, 입어보고 살 수가 없으니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들이 또 쌓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된 옷을 수선해서 입는 영상을 보게 되었고, 나도 수선집이라는 곳에 가보게 됐다.


패스트패션의 시대. 기계가 만든 옷들은 초단위로 쏟아져나오고 규모의 법칙에 따라 매우 저렴한 값에 소비자들에게 닿는다. 하지만 수선은 노동의 집약체라서 오롯이 사람의 수고와 시간이 들여지고, 그렇다보니 필연적으로 인건비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다. 간단한 수선이야 다림질까지도 10분 안쪽에 할 수 있지만, 품을 줄이거나 늘리는 작업은 몇 시간까지도 걸린다. 그렇다보니 수선비는 간단한 작업은 2-3천원, 복잡한 작업은 2-3만원, 혹은 그 이상을 지불해야한다. 저렴한 옷을 쉽게 사서 몇 번 입고 버리던 나로선 수선집에 처음 간 날의 충격이 꽤나 컸다. 1-2만원이면 새 옷을 살 수 있는데 수선비가 그 이상 나온 것이다. 그 묘한 기분. 새 옷을 산 셈 치자, 고 스스로 달래봤지만, 새옷이 아닌데 어떻게 새옷인셈치지; 하는 자괴감이 불쑥 고개를 처들고, 다시 억누르고, 다시 솟아나고.. 무한 반복의 과정이었다.


그만한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없나?

전혀 아니다. 그에 들어가는 노고를 쉬이 짐작할 수 있다.

만족스럽지 않나?

시중옷은 뭘 사도 조금 길거나 크거나, 작거나 짧거나.. 조금씩 아쉬웠는데 내 몸에 맞춘듯 딱 맞는 옷을 입었을때의 쾌감이 꽤나 좋았다. 마치 맞춤옷을 입은듯이.

그럼 원래 맞춤옷은 비싸니까, 그나마 싸게 맞췄다고 치자!

결국 내가 수선집에 계절마다 족히 드나들게 된 사고회로는 이랬다.


대한민국은 주된 명품 소비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사람들은 사치품에 기꺼운 돈을 지불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노동의 대가는 쉽게 후려친다. 무슨 김밥이 이렇게 비싸?청소노동자 시급을 만원이나 줘야돼?


워낙 패션의 주기가 빨라지고, 그렇다보니 SPA 와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선호되고, 심지어 테무나 알리에는 울트라 패스트패션업체들도 등장했다. 의류브랜드들은 일단 빨리 많이 만들어내고 안 팔리면 말고- 를 시전한다. 그 과정에서 세계 탄소배출량의 4분의 1 가량이 발생한다. 옷은 더 예쁘고 멋져보이려 입는 것일텐데, 이를 위해 지구는 급속도로 망가져간다.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고, 겨울이 춥지 않고, 여름이 비이상적으로 덥고. 계절에 맞춰 산 꼬까옷은 정작 몇번 입지도 못하고 또 버려진다. 악순환의 무한 반복이다.


한겨레 '버린 옷에 추척기를 달았다' 갈무리

간혹 안 입는 옷을 헌옷수거함이나 기부업체에 '기부' 를 함으로써 무분별한 소비를 합리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제3국의 어려운 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한 기부가 사실은 국경을 넘어 쓰레기를 버리는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외면하고픈 진실이다.

https://campaign-hani.campaignus.me/Usedclothes

최근 몇 년간 새 옷을 사지 않고 있다. 그래도 내 옷장엔 옷이 넘쳐난다. 유행이 지나, 사이즈가 변해 못 입는 옷들은 가급적 버리지 않고 모아둔다. 그리고 철이 바뀔 즈음 수선집에 가서 품을 줄이거나 늘리고, 기장을 덧대곤 한다. 수선집에 들어서면 머리가 하얗게 센 수선노동자가 미싱 앞에 앉아 작업하던 부분을 마저한 후 안경 너머로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어떤 수선이 필요한지 묻고, 옷을 입은 상태에서 수선할 부분들을 세심히 체크해주시고, 원하는 스타일에 따라 수선계획을 알려주신다. 기술로 하는 일이 대개 그렇듯 하기 전에 말로 들었던 것과 실제 완성물 간에 차이가 있기도 한데, 대체로 만족스럽다. 맘에 안 들거나 안 맞으면 말하라고 하시는데, 일을 두번하실거란 생각을 하면 어지간한 오차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옷을 버리고 새로 사는게 오히려 저렴한 세상에서 수선공을 찾는 이들은 많지 않다. 고작해야 바짓단 줄일때나 찾을까. 그럼에도 긴 세월을 미싱 앞에서 버텨 준 수선노동자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생각보다 수선을 해서 내 마음에 드는 하나뿐인 옷을 탄생시키는 일은 꽤나 보람차고 즐겁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 쓰는 습관이 어느때보다도 더 필요한 요즘, 수선노동자는 고도화된 환경운동가에 다름 없다. 덕분에 최소한 나는 1년에 십수벌의 옷을 버리지 않고 입고 있으니.


세탁소도 프랜차이즈화가 되어 우리 동네 세탁소는 물건을 받고 돌려주는 역할만하시고 세탁 공정은 별도의 공장에서 진행된다. 노동집약적 산업들은 어떻게든 기계가 할 수 있게 '발전'해간다. 하지만 수선은 아직 기계가 온전히 해내기 어려운 작업이다. 품을 재고 옷을 뜯어 재조립하고 필요한 부품들을 찾아 맞춰보고.. 그렇다보니 수선비가 생각보다 '비싸'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불필요한 쓰레기를 지구에 전가하지 않고 내 소비를 책임지는 것의 비용, 세상에 하나뿐인 옷을 만드는 프리미엄의 비용이라 생각해보면 꽤나 수지가 맞다.


물가상승이 가파르다보니 인건비도 그에 따라 오르게 된다. 인력을 기계가 대체하도록해서 단가를 낮추는 고물가시대의 저가마케팅으로 서민들의 소비를 여전히 부추기는 기업들이 많다. 물론 가난하다는 이유로 소비를 못하면 안되겠지만, 적정한 대가를 치뤄야만 무언가를 얻을 수 있어야 소비를 하면서 두번세번 고민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수선 노동자들이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있어주길 바라면서, 장롱 속 옷들을 다시 한번 뒤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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