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노무사에 합격한 전 직장 동료가 노무사 합격 이후 수습처를 구하기까지의 공백기간에 당장 생활비가 필요해서 쿠팡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말했다. 장기근속에 대한 부담감 없고, 당일 페이 지급. 딱히 배우지 않아도 되고, 몸은 힘들지만 생각 없이 하기 좋지 않냐. 물론 병원비가 더 나올 것 같아 며칠 만에 그만뒀다고 한다.
"쿠팡이나 할까"
요즘 밈처럼 들리는 말이다. 워낙에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그만큼 노동강도가 세고, 그렇다 보니 수시로 사람이 그만둬서 아예 일용직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쿠팡.
네이버에 무슨 검색어를 넣어도 검색창 상단에 뜨는 쿠팡은 구인사이트에서도 최상단에 항상 나타난다. 매일 수백 명을 뽑아도 매일 수백 명이 그만두는, 아니 도망가는 곳. 악명 높은 물류업계에서도 단연 으뜸의 노동강도를 지닌 곳이 쿠팡이다. 그렇다 보니 단기 혹은 투잡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열려있는 선택지가 되었다.
난 새벽배송이 불편하다. 내가 자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 잠도 못 자고 어두운 도로를 달려 물건을 두고 간다는 사실이 조금은 소름 돋기까지 한다. 인간의 생체리듬은 해와 연결되어 있다. 해가 떠있는 시간에 잠을 자고, 해가 없는 시간에 일을 하는 것은 인간의 생체리듬을 완전히 파괴하는 행위다. 실제 야간근로는 발암의 원인으로 꼽힌다. 그래서 과로사 등의 산재를 다툴 땐 야간근로는 주간근로보다 30% 많은 근로시간으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는 올빼미가 아니다" 어느 노동조합이 야간근로 폐지를 요구하며 내건 슬로건이었다.
야간근로로 인한 신체적 부담 보다도 택배, 물류, 운수노동자를 사지로 모는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고객들의 "당일배송"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택배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촌각을 다툰다. 시동을 끄고 켜는 시간조차 아까워 시동을 걸어둔 채 택배를 나르고, 식사시간을 줄이려 운전하며 김밥으로 식사를 때운다. 시간은 상대적이라지만, 아무리 쪼개고 쪼개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순간들은 필연적으로 오고, 포기할까 싶은 즘에 회사로부터 연락이 온다.
"부탁드립니다."
누구보다 그 부탁을 하늘에 하고 싶은 사람이 노동하는 당사자가 아닐까. 막히는 길을 불도저로 뚫고라도 지나가고 싶은 사람이, 가능하다면 하늘을 날고 싶은 사람이 바로 택배노동자들일 것이다. 아파도 안되고, 넘어져도 안 되고, 쉬어도 안 되고, 걸어도 안 된다. 새벽 5시에 시작한 배송이 자정을 넘어 끝나도록 과도한 일들이 주어진다. 한계를 넘어서는 요구에 인간은 강한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이건 단순한 "정신력"의 문제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혈관을 터트리고 심장을 멎게 한다.
지난 5월 숨진 쿠팡배송 노동자 정슬기 씨는 "개처럼 뛰"다 심장이 멎었다. 최대한 하겠다는 노동자에게 회사는 또다시 "슬기 씨 밖에 없다"며 "부탁"한다. 정슬기 씨의 노동은 연료도 없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무한동력장치를 닮았다.
살면서 수많은 부탁을 하고, 받고 살아간다지만, 사람을 죽음으로 모는 부탁도 부탁일 수 있을까. 아니, 부탁이어도 될까. "당일 배송"을 받지 않아 사람이 죽고 살기도 할까. 설령 그렇다한들 얼마나 될까. 하지만 "당일 배송"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죽는다. 쿠팡에서만 20명의 노동자가 시간에 쫓기다 삶에서도 쫓겨났다. 편리성이란 미명 하에 얻어지는 것과 버려지는 것, 우린 정말 등가교환을 하고 있는 걸까?
쿠팡은 노동자를 잔혹히 쓰고 버린 대가로 올 3분기에만 10조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쿠팡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아마 평생을 일해도 통장에 10억이 찍히는 날이 오지 않을 것 같은데, 10조라는 숫자는 0이 몇 개나 붙는 건지 감도 오지 않는다.
화물 등 물류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며 이런 슬로건을 내걸었다. 물류를 멈춰, 세상을 멈춰.
정말로 경제지표가 달라질 만큼 세상이 멈췄었다.
그만큼 경제를 지탱하는데 중요한 물류, 택배, 운수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인데, 사회의 대우는 잔인하고 냉랭하다. 멈추지 말라는 "부탁" 말고 그들에게 조금은 멈춰도 된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회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