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 저런 일, 그런 일

당신과 나의 노동에 대하여

by 달강

모두가 서로의 노동으로 살아간다. 이 사실이 참 묘하다. 그런데, 누군가의 노동은 박수를 받고, 누군가의 노동은 멸시받는다. 누군가의 노동은 우러러보이고, 누군가의 노동은 보이지도 않는다. 누군가의 노동은 부르는 게 값이고, 누군가의 노동은 최저에서조차 깎인다. 누군가의 노동은 기억되고, 누군가의 노동은 지워진다. 누군가의 노동은 쉽게 대체되고, 누군가의 노동은 고유한 듯 보인다. 모든 노동에는 제 몫이 있지만, 노동을 줄 세우는 잔혹한 평가들은 여전하다. 참으로, 묘하다.


얼마 전 고등학교에 강의를 하러 가기에 앞서 강의에서 쓸 영상을 찾아보다 한 영상을 접했다. 고등학생들이 자신의 노동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상이었다. 그중 한 고등학생은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님을 도와 일을 하는 중에 손님으로 온 가족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런 일 해야 돼"


내가 강의에서 여러 번 사용한 영상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의 일부를 짧게 편집한 영상인데,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젊은 여성 도배공이다. 일찍이 기술을 익히고 자신의 정당한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 자신의 기술과 실력으로 오롯이 인정받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멋진 노동자다. 하지만 그를 보는 시선들은 천박하다. "너 그런 일 하다가 그런 일 하는 사람 만나서 결혼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얼마 전까지 재밌게 본 웹툰에는 한 노동자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택배일이나 하고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세상엔 이런 일, 저런 일, 그런 일이 있다. 그렇기에 세상이 유지되고, 사회가 윤택해지고, 누군가 편의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노동이 없이 얻어지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흔히 '몸 쓰는 일'에 대한 시선은 너무나도 저급하고 무례하다.


땀을 흘려 돈을 버는 일은 얼마나 정직한가. 나의 땀이 눈에 보이는 결과로 주어지는 것, 인간의 본능은 그런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자아를 실현하도록 설계되었다. 자신의 노동의 결과가 눈으로 보이지 않는 많은 노동자들은 종종 일에서 '현타'를 느끼지 않나.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내가 하는 일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그래서 혹자는 '일에서 보람을 찾지 말라'고도 한다. 한때는 그 말이 나에게 해방구가 되어주었다. 그래, 일은 일이지 무슨 보람을 느껴. 돈이나 받으면 됐다.


하지만 점점 그 생각에 물음표가 생긴다. 물론, 보람을 느끼지 못해도 먹고살기 위해 주어진 일을 하는 노동은 그것대로, 자신이 보람을 느끼는 일을 찾아내어 열과 성을 다하는 노동은 그것대로 숭고하다. 하지만 사무직만능주의 사회는 사람들에게 보람을 찾을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번듯한 사무공간에 앉아서 여름에는 에어컨 바람을, 겨울에는 히터바람을 맞아가며 일을 해야만 '번듯한' 직장인으로 쳐준다. 사무업무가 맞지 않으면 새로운 일들을 해보며 나에게 맞는 노동을 찾아가면 되는데, 화이트칼라를 벗어던지는 순간 '저런 일', '그런 일' 따위로 폄하되니 차마 쉽지 않다.

직업의 다양성이 존중되지 못하면 사회는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없다. 실업률이 높다지만, 수많은 사업장에선 인력난을 겪는다. '이런 일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요'. 서울시는 부족한 베이비시터를 필리핀에서 데려오고, 중국인 화교가 없는 식당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건 악순환의 결과다. 어떤 노동을 향하는 시선은 너무나도 편협하고 옹졸해서, 그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그렇다 보니 그런 노동은 점점 더 낮은 값에 치러지고, 하려는 사람은 점점 더 없어진다. '돈 많이 주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고, 그것 또한 맞는 말이지만, 더 많은 돈을 지불하려면 그 노동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블루칼라의 노동은 진흙에서도 고고하게 피어있는 연꽃을 닮았다. 세상의 모진 시선에서도 꼿꼿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결국 꽃까지 피워내 준 이들이 있어 척박한 세상이 조금은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노동자가 흘리는 땀을 존경하며, 누구의 노동도 경시되지 않는 사회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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