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하이따이탕(海带汤)
거대한 자전거 행렬로 가득 찬 중국의 출근길, 그 속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조마조마하며 겨우 학교에 도착했다. (몰려오는 자전거 파도 속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생각하기도 싫다.)
“안녀하쎄요! 한구 사람임미까? 저는 중구사람이에요!”
ㅡ”어멋! 한국말 진짜 잘하네요!”
자전거 자물쇠를 채우고 일어서던 차에 중국 여대생의 수줍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책을 꼭 끌어안고 대답을 기다리는 그녀의 큰 눈망울이 유독 선 해 보였다.
“저는 어학연수 온 한국인 “원쯔민”이라고 해요! 반가워요!”
ㅡ”나는 짱웨이에요. 반갑습니다.”
나의 첫 중국인 친구, 바로 짱웨이와의 첫 만남이다.
이런 게 운명적인 만남일까?
짱웨이는 송승헌의 팬이었다. 그래서 한국에 관심이 생겼고, 한국친구를 사귀고 싶었다고 했다.
그날 아침, 그녀가 먼저 용기를 내주지 않았다면 우리가 인연이 되었을까?
우리는 종종 하교 후에 함께 길거리 쇼핑을 하기도 하고, 서로의 집에도 놀러 갔다.
짱웨이 어머님은 중국식 샤부샤부인 '훠궈(火锅)'를 자주 만들어주셨다. 지금은 흔하게 먹지만, 그 당시에는 가정집에서 훠궈를 즐기는 것이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짱웨이 아버님은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것들, 예를 들어 한국의 물가, 한국인의 소득 수준, 북한 관계 등을 물어보셨고, 나는 흥미진진하게 들어주시는 짱웨이 부모님과 이야기하는 것이 참 즐거웠다.
우리는 점점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짱웨이는 유학 온 나를 배려한 듯, 늘 중국어로만 말했다.
내 생일날 저녁, 우리는 함께 밥을 먹기로 했다.
약속장소로 오는 그녀의 손에 큰 보온병과 둘둘 말린 종이가 들려있었다.
“쯔민! 쭈니셩르콰일러!(생일축하해!)”
곧이어 내 팔뚝만 한 큰 보온병을 꺼내보였다.
“한국 사람들은 생일에 ‘미역국’을 먹는다고 들었어, 너 생각하면서 만들어봤는데 맛있었으면 좋겠다.”
ㅡ”짱웨이, 나도 못 끓이는 미역국을 중국인인 네가 어떻게 만든 거야. 너 이렇게 사람 감동시켜도 되는 거야?”
엄마 외에 누군가가 나를 위해 생일 미역국을 끓여준 적이 있었던가?
보온병 안에 따끈한 미역국을 가득 담아 온 나의 중국친구, 짱웨이...
한국 식료품점에 가서 미역과 간장 등을 사 와서, 오후 내내 인터넷을 찾아보고 처음 보는 한국음식을 열심히 따라 만들었을 그 정성이 나의 마음을 울컥하게 했다.
짱웨이는 내 앞의 그릇에 손수 만든 미역국을 조심히 따라주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미역국을 한 입 먹고 엄지를 치켜세우고 미소 짓는 나.
그 모습을 턱을 괴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짱웨이.
그리고 미리 주문해 둔 “위샹로우쓰(돼지고기 볶음)”와 공심채까지 탁자 위에 올려졌다.
짱웨이가 갑자기 의자 뒤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고무줄을 내려 둘둘 말린 종이를 풀어 내게 펼쳐 보인다.
“꺄! 왕.리.홍!” (중국에서 나의 외로움을 달래준 중국오빠. 중국가수 王力宏)
내 탄성에 만족하다는 듯 그녀의 큰 입이 활짝 웃어 보인다.
“꿔라오스네 놀러 갔을 때, 쯔민 방의 벽이 너무 허전해 보여서 샀지. 왕리홍 오빠랑 함께 있으라고.^^”
'친구야.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거니?'
그날 밤, 나는 쉽게 잠이 들지 못했던 것 같다.
외동딸을 혼자 유학 보내놓고 늘 걱정하시는 엄마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오늘 얼마나 행복한 생일을 보냈는지 조잘조잘 떠들어댔겠지.
며칠 전 남편이 차려준 생일 상을 마주하고, 문득 짱웨이의 하이따이탕(海带汤)이 생각났다.
"그때의 하이따이탕은 평생 잊지 못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