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니어링 자서전/ 김라합 옮김/ 실천문학사>
<스콧 니어링 자서전/ 김라합 옮김/ 실천문학사>
예전에 장석주의 '취서만필'을 읽은 후 메모해 둔 책이 두 권이 있었다. 한 권은 '일일일락'이었고 또 다른 한권이 바로 이제 겨우 다 읽은 '스콧 니어링 자서전'이다. '일일일락'은 작고 소소한 일상에 대한 매력에 이끌려 마음 편히 쉬어 가는 책으로 기대를 했으나 막상 읽어보니 약간 시시한 느낌이 들어서 내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었다. 이 책도 사실은 구미가 당기진 않았다. 왜 내가 자서전류의 책을 메모해 두었는지 이유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방치해 두고 있었다.
나는 어릴 때 독서와는 거의 담을 쌓고 살았다. 나에겐 책이라곤 오로지 교과서만이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교과서를 열심히 본 것도 아니다. 어린 아이들의 시골 생활은 사계절 내내 독서보다도 훨씬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들로 가득했기 때문에 굳이 책을 가까이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 가물에 콩나듯 학교 도서관에 갈 일이 있으면 책이라는 물건을 빌리곤 했었는데 특이한 점은 위인전을 빌리거나 읽었던 기억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위인전 코너 근처에는 아예 얼씬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나는 위인전에 흥미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간혹 교과서에 나오는 위인들의 이야기에도 나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내 무의식에선 다수의 위인들이 실제의 삶보다 과장, 조작, 왜곡된 거짓 인물일 가능성이 많을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거나, 아니면 나에게 지배욕구나 권력의지를 가진 유전자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나는 학창시절 내내 반장이나 부반장, 하물며 그 흔한 분단장조차도 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나에겐 위인전이나 자서전은 흥미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 책은 물론 훌륭한 책이었지만 나의 태생적인 기질로말미암아 그다지 열성적으로 읽지는 못했다. 물론 바쁘다는 핑계로 독서의 흐름이 많이 끊긴 것이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스콧 니어링은 채식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이며 사회주의자, 자연주의자, 사회철학자, 실천적인 생태주의자이다. 타이틀이 많기도 하다. 그만큼 열심히 살았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도 육식에 대한 혐오나 채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오히려 풀은 더 싫어했고 고기가 더 땡겼다. 하지만 나 자신이 살려고, 강해지고 건강해지려고 죽은 동물의 고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스콧니어링의 철학을 접하고 나니 갑자기 고기맛이 뚝 떨어졌다. 그렇다고 내가 채식주의자가 되겠다는 건 아니다. 그냥 의식적으로 육식을 조금 멀리해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먹는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관심을 줄여야겠다는 생각 정도는 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육식을 대신해 채식을 좀더 쉽고 간편하게 접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하에 홈쇼핑에서 우연히 보게된 휴롬을 충동적으로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스콧 니어링이 이런 나를 본다면 혀를 찰 일이겠지만...
안락한 삶의 기회가 많았지만 부가 인간을 부패하게 만드는 원흉으로 지목하며 부유한 삶을 한사코 멀리하고 평생을 검약하게 노동하며 살았던 니어링은 가끔씩 일확천금을 꿈꾸며 로또를 사곤 했던 나를 부끄럽게 했다.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일을 하기 위해, 그것도 있는 힘을 다해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라는 그의 외침은 안락한 삶과 쾌락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왔던 나에 대한 일갈이기도 했다. 최소한 앞으로 일할 때만큼은 불평불만을 늘어놓거나 농땡이를 부리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시골 생활에 대한 꿈을 접고 있었다. 단지 티비에 나오는 '나는 자연인'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곤 했는데 이 책을 통해 다시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이른 은퇴를 해서 니어링과 비슷하게 자연과 접하면서 간단한 농사를 짓는데 네 시간의 노동을 투자하고, 지적 활동 네 시간, 좋은 사람들과 친교나 취미활동을 하며 보내는 네 시간으로 질서 있고 조화로운 하루를 보내는 일상을 꿈꿔 본다. 단 그 일상에 뱀은 절대로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
니어링이 꿈꾸던 이상적인 사회주의는 결국 몰락했다. 그가 꿈꾸던 세상은 모두가 행복한 바람직한 세상이었으나 그가 전망했던 세상은 결국 오지 않았다. 사회주의는 결국 인간의 본능적인 자기 중심성을 극복하지 못해서 몰락의 길로 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는 생전에 사회주의 몰락을 보지 못했다. 책의 후반부에서 그가 피력한 이상적인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과 전망들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만약 그가 살아 있을 때 사회주의의 몰락을 목격했더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속물적인 인간 본성의 한계를 인식하고 체념하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인간의 진보와 개선에 대한 믿음을 여전히 간직한 채 시간은 걸리겠지만 자본주의를 대체할 대안사회는 반드시 도래할 수밖에 없다는 신념을 그대로 유지했을까. 이 책을 통해 스콧니어링이라는 한 인간에 대해 분명히 확신할 수 있는 건 그는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변함없이 바른길을 마음속에 그리며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았을 거라는 것이다. 그는 평생 동안 진정으로 의미있고 충만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몸소 실천적으로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