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미야모토 테루/ 송태욱 옮김/ 바다출판사>
<금수/미야모토 테루/ 송태욱 옮김/ 바다출판사>
이 소설의 제목인 '금수'는 짐승이 아니고 수를 놓은 비단을 뜻한다. 사전을 찾아보지 않았더라면 오해가 컸을 수도 있겠다.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을 처음 접한 건 '환상의 빛'이었다. 오래 전에 읽었음에도 이 중편 소설이 내 기억에 아직까지도 강렬히 남아있는 건 걸작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남편을 잃은 여자의 애절하고 가슴 먹먹했던 이 서정적 소설을 쓴 작가가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뭐야? 이게 가능한 일이야! 여성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는 남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소설가는 역시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환상의 빛'을 통해 절감했다.
'금수'와 '환상의 빛'은 닮은 점이 있다. 우선 두 소설의 여자들은 떠나간 남편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마음속 깊이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남편들은 그리 대단한 인물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원망하고 저주해도 모자랄 인간들이 아니던가. '환상의 빛'의 남편은 아무런 이유도 단서도 없이 갑자기 자살해 버린 남편이고, '금수'의 남편은 술집 여자랑 같이 자다가 동반 자살을 당할 뻔한 남자이다. 둘다 아내에게 씻을 수 없는 충격과 상처를 선사했다. 그럼에도 이 여자들은 죽은 남편과 이혼한 남편을 그리워하고 있다. 지아비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이 성스러울 정도다. 그녀들은 별다른 근거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전남편이 단지 좋은 사람이었다고 되뇌인다. 그리고 재혼한 남편에게는 좀처럼 마음을 주지 못한다. '환상의 빛'에서 자살한 남편은 어떤 사람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냥 아무런 이유없이 자살한 게 전부다. 그래서 여자가 내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다고 주장하면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금수'의 남편은 이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자세히 알 수 있다. 내가 보기엔 완전 찌질한 인간이다. 단지 아내인 아키라는 여자의 절절한 감정에 포장되어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보여온 행실과 사고방식을 보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균치보다 조금 못한 남자일 뿐이다. 난 아키가 감정적으로 포장한 남편의 이미지에 절대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아키는 술집여자랑 자다가 동반자살 당할 뻔한 이 남자를 잊지 못하는 것일까. 딱히 그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추정컨데 이야기엔 나오진 않지만 아주 잘 생긴 남자일 가능성이 많다. 그의 모난 성격과 그가 저지른 모든 과오를 커버하고도 남을 외모 종결자가 아니라면, 여자가 그렇게 애타게 그리워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이런식으로 자꾸 생각하면 작가가 나를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대충 좀 넘어가자고. 주제에 집중을 하라고! 알겠슴돠. 그래도 한마디만 더 하자면 차라리 '환상의 빛'의 남자처럼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고 자살해 버리는 게 더 있어보이는 게 사실이다. 괜히 살아남아 자신의 못난 실체를 드러냄으로써 아내로 하여금 남편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게 만드는 건 영 폼이 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키의 전남편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참으로, 대단히, 착한 여자이다. 현재 동거녀인 레이코도 그렇고 아리마는 여자복이 많은 남자다. 이것도 그의 업보인가.
소설은 이야기로 시작해서 이야기로 끝났으면 좋겠다. 굳이 거창하게 삶과 죽음이 같다거나 우주의 불가사리가 라면사리보다 맛나다, 업보가 어쩌구 저쩌구, 육체를 벗어난 목숨이 선과 악에 시달리고 하는 관념적인 이야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설은 이야기를 통해서 잔잔하게 스며드는 느낌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소설은 그런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는데 위와 같은 관념적인 부분에선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소설을 통해서 인생과 우주적 진리까지 깨닫기는 싫다. 그냥 모르고 죽어도 괜찮다.
편지라는 소설의 형식도 나쁘지 않았다. 아내의 편지를 읽고 나면 전남편이 어떤 답장을 쓸지 궁금했다. 마치 남의 편지를 훔쳐보는 맛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훨씬 더 잘 읽혀지는 것 같다. 휴대폰이 있기 전에는 나도 간간히 편지를 쓰곤 했었는데 지금은 편지를 쓴지 너무 오래되었다. 어느새 우리는 생활의 편의에 의해 낭만적인 것들을 점점 더 잠식당하고 있는 삭막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나는 낭만을 잃지 않기 위해 편지를 쓰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흠…그냥 삭막하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