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데이비드 실즈/ 김명남 옮김/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데이비드 실즈/ 김명남 옮김/ 문학동네>
요즘들어 죽는다는 사실이 현실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부담스러운 일상과 삶에서 이제는 죽음까지 끼어들어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훗날 내가 죽을 때를 생각해 본다. 육체는 병이 들어 스스로 기능하지 못하고, 통증을 견디지 못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생명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추한 본능이 지배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건 견디기 힘든 일이다. 인간다운 이성과 품격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내 몸과 정신을 그대로 방치한다는 건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육체를 가지고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나에게 삶으로서 더이상 의미가 없다. 이때가 되면 나에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현명한 용기가 있기를 바래본다. 그때가 되면 윤리적 부담이나 생명에 대한 존엄의 문제로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책에서도 나오듯 자연은 유전자를 번식한 이후의 개체에 대한 생명 연장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죽든지 말든지 신경 안 쓴단다. 잘됐다. 오히려 이런 무시와 냉대가 그나마 나에겐 편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의 어린 시절에 가장 인기 있었던 스포츠는 단연 프로야구였다. 경북이라서 대부분의 친구들은 모두 라이온스의 팬이었지만 나는 홀로 청룡을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지역 연고나 감정 따위에는 안중에 없었다. 전설의 홈런 타자이자 감독인 백인천을 비롯하여 이종두, 이해창, 김재박 선수 등의 이름은 지금도 나의 뇌리에 깊숙히 남아 있다. 나는 소나무를 깎아서 만든 야구 방망이 끝에 공을 연결한 줄을 매달아 홀로 타격 연습을 했고, 비료 포대를 접어서 만든 야구 글러브를 가지고 동네 형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야구 시합을 했다. 이기고 지는 것에 연연하기 보다는 야구 자체를 즐겼던 것 같다. 비시즌인 겨울에는 야구 잡지를 구해서 봤다. 겨울에 훈련하는 선수들의 근황을 흥미롭게 읽었고 야구 선수 양말에 거꾸로 그려넣은 병을 찾아냈던 숨은그림찾기도 생각이 난다. 문방구에서는 야구 선수 스티커사진 뽑기가 유행하고 있었고, 유명한 선수의 스티커 사진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장효조 선수의 스티커 사진을 뽑았을 때의 그 흥분과 짜릿한 손맛은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다. 야구 선수의 스티커가 모두 붙여진 모음집을 문방구에 갖다주면 싸구려 시계를 상품으로 받았는데 투자한 비용치고는 형편없는 보상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싸구려 시계보다는 스티커 모음집이 훨씬 더 소장가치가 있을 듯하다. 그러나 청룡이 트윈스로 바뀐 뒤부터 나는 야구에 대한 관심이 차츰 시들해졌다. 어느 팀에도 애정을 느낄 수 없었다. 대학시절엔 텅빈 외야에서 사발면과 소주를 마시며 삼성의 경기를 관전하곤 했지만 특정 팀을 응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시간때우기였을 뿐이었다. 근래에는 이글스에 잠깐 관심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야구 중계를 보지 않게 되었다. 작년에 타이거즈가 우승한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나에겐 이제 좋아하는 스포츠도, 응원하는 팀도 없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긴다고해서 나에게 보너스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마음을 졸이면서까지 나의 시간과 온 에너지를 쏟아부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건 명백히 사치스럽고 쓸데 없는 짓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야구의 승부에 열광하는 부자의 모습은 나로하여금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다저스 팬인 90대의 노인과 50대의 아들은 어느날 라디오로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의 중계를 같이 듣고 있었다. 다저스가 연장에서 3점 홈런으로 이기는 순간, 부자는 서로를 마주보았고 둘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문자를 다저스 선수 라인업을 통해서 깨우칠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골수 팬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삶에 대해 늘 비관적이었던 내가 삶을 어떻게 대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이 장면이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삶을 축복으로 여기며 제대로 즐기며 산다는 것은 이들 부자처럼 좋아하는 것에 온 몸과 마음을 쏟으며 사는 것이 아닐까.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의미나 가치는 오로지 자신이 부여하기 나름인 것이다. 이들 부자는 야구를 통해 자신이 이루진 못한 목표들을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이 보상해 주길 바랬다. 이 정도면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나도 다시 스포츠에 관심을 가져볼까. 그러나 어떤 종목을 좋아해야 할지, 어느 팀의 골수팬이 되어야할지… 막막하다.
제목을 보며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으나 미소를 머금으며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내용이 많았다. 죽음에 대해서 깊이 있게 파고드는 책은 아니다.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지도 않다. 다만 우리의 삶에는 항상 죽음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울 뿐이다. 늙음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이 비극적인 현실 앞에서 남아 있는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이제 내 자신의 몫이다. 아직까진 썩 내키진 않지만 삶과 죽음을 모두 사랑해 볼까 생각 중이다. 노력하면 되겠지. 그러나 늙음은……그래, 좋다... 늙음도 같이 가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