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스미스/세라 워터스/최용준 옮김/열린책들>
<핑거스미스/세라 워터스/최용준 옮김/열린책들>
책이 무려 830페이지에 달한다. 두껍다. 목침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겠다. '핑거스미스'가 무슨 뜻인지 검색하다 보니 이 책이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원작 소설임을 알게 되었다. 다행스러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컴에 저장되어 있어서 보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볼 수 있었으나 왠일이지 아직도 못보고 있다. 유명한 영화라서 대강의 내용도 알고 있었다. 하정우가 부잣집의 상속녀인 김민희의 재산을 노리고 하녀인 김태리와 함께 모략을 꾸민다는 정도로만. 이 사실만으로도 책을 읽기 전에 약간 김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원작 소설을 영화화 한 것을 양쪽 모두 본 것은 그리 많지 않지만 나에게 대표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박범신의 '은교'와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를 들 수 있겠다. 영화는 텍스트를 결코 따라 올 수 없다고들 하지만 은교는 영화로서도 나름 선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화차'는 오래전에 영화를 먼저 본 후 근래에 들어서 책으로 읽게 되었다. 영화로서 '화차'는 별로였다. 끝나고 나서 이게 뭐야! 끝이야! 라고 딱 두 마디를 남긴 채 자리를 떠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책으로 읽으니 이건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팽팽한 긴장감과 끈질긴 집요함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걸 어떻게 영화로 표현하지? 불가능할 수 밖에 없는 거 아냐? 책으로 먼저 보고 영화를 봤더라면 김민희의 연기가 나에게 더 잘 흡수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공교롭게도 핑거스미스도 김민희가 주인공이다. 참고로 김민희를 배우로서 엄청 좋아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우선 1부는 가독성과 몰입성이 좋았다. 1부에서의 마지막 반전은 정말 제대로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완전 식스센스급 반전이었다. 예전에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도 생각났다. 자신의 친구를 속이려고 동원된 그 배우는 제작진과 작전을 짜서 열심히 친구를 속이려고 노력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상한대로 흘러가지 않자 당황하게 되고 결국엔 이 몰래카메라의 주인공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충격을 먹고 망연자실하는 장면이었다.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나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800페이지가 넘어도 가뿐히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2부는 1부와 같은 이야기로 모드의 시각에서 다시 시작된다. 인물의 성격이 반전급이라서 조금 놀라긴 했지만 했던 얘기를 또하니 약간의 지루한 감도 없진 않았다. 3부에 가서는 좀 지치기 시작했다. 이 작가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데 재주가 있는 듯했다. 상황묘사가 지나치게 상세하고 이야기가 늘어지는 듯하여 성격이 급한 나는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 아줌마에게 그만 좀 하고 빨리 진도 좀 나가자고 외치고 싶었다. 2, 3부에서도 역대급 반전이 계속 터지지만, 아무리 대단한 반전도 한두 번으로 족하지 계속 나오면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뭐야! 또 반전이야! 이러고 마는 것이다. 작가는 나름대로 애써 준비한 반전인데 나같이 실증을 잘 내는 독자가 이런 반응을 보이면 힘이 빠지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아무리 대단한 반전이라도 적당히 해야 한다. 특히 한국 같이 막장 드라마에 많이 노출된 나라의 국민에게는 2, 3부에서 나오는 반전들은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
나는 책을 한 권 다 읽고 나면 우선 읽으면서 표시해 둔 괜찮은 문장들을 모두 옮겨 적는다.(이 책은 귀찮아서 문장 옮겨 적기는 생략했다) 옮겨 적기가 끝난 다음에는 오로지 기억에만 의존한 채 머릿속에 남아 있는 내용들을 가지고 간략하게 줄거리를 적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처럼 떠오르는 생각들을 이곳에 두서없이 마구 써대는 것으로 이 책을 떠나 보내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면 적어도 예전에 읽었던 책을 모르고 다시 읽는 불상사는 겪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된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게 되면 근래에 읽었던 책들과 연관지어 읽혀지기도 한다. 위탁모 일을 하는 석스비 부인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의 위탁모인 로자아줌마가 연상되었다. 모드 릴리가 사는 대저택의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는 이언 메큐언의 '속죄'에 나오는 저택의 분위기와 거의 비슷하다. 정원과 예배당 분위기 마저도 거의 흡사하게 닮은 듯하다. '수'가 아무리 자기가 자신이라고 해도 믿어주지 않았던 정신병원의 의사들을 보니 '매드사이언스 북'의 실험이 생각났다. 실험하는 이들이 어느 정신 병원에 가짜 환자를 몰래 넣어두었으니 찾아보라고 하자 정신과 의사와 직원들은 환자 가운데 19명이 가짜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정했지만 실제로 단 한 명의 환자도 보내지 않았다는 실험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도대체 뭐야? 믿을 수 가 없잖아! 멀쩡한 사람이 정신병원에 억울하게 들어가서 아무리 자신이 정상이라고 하소연 해도 의사들은 그의 모든 행위를 정신병의 한 형태로만 간주한다. 그리고 시간이 좀 주어진다면 그를 정말로 미쳐버리게 만들 수도 있다. 돈 때문에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공개 교수형에 처해지는 모습을 구경하려고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드는 풍습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게 무슨 대단한 구경거리인양 좋은 자리를 먼저 차지하려고 경쟁을 하질 않나, 아이를 목마까지 태워가며 구경을 시키기도 한다. 그런 끔직한 장면은 돈을 쥐어주며 보라고 해도 나는 결코 보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빅토리아 시대라고 하지만 그때 사람들과의 정서가 어찌 이리도 다를 수 있을까. 석스비 부인이 교수형에 처해지는 장면은 '어둠속의 댄서'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아주 먼 옛날에 라스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를 골라서 볼 때가 있었는데 그때 보았던 영화이다. 비오는 주말 늦은 밤에 골방에서 혼자 보았는데 충격과 공포로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난다. 뭐랄까. 이건 마치 감독이 관객을 괴롭히려고 작정한 영화 같았다. 사형장에 끌려가는 여주인공이 가지 않으려고 발부둥치는 모습에서 나는 거의 멘붕상태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끔직하기만 하다. 이 영화를 통해서 사형제도에 대해서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석스비 부인은 그나마 얌전히 교수형을 받아들여서 읽는 이의 부담을 좀 덜어주었다.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직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왠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이 원작소설보다 나을 듯한 예감이 든다. 그랬으면 좋겠다. 조만간 시간내서 얼른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