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달빛책방

<쇼코의 미소/ 최은영/ 문학동네>

by 오달빛

<쇼코의 미소/ 최은영/ 문학동네>

쇼코의 미소는 2016년 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소설이라나 뭐라나....그래서 집어들었다.

이 책은 가독성이 참 좋은 것 같다. 딱 내 스타일이다. 문장이 세련되었다고 볼 수도 없고 내가 싫어하는 화려한 수사나 기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문장이지만 결코 만만치가 않다. 어쩌면 이리도 인간의 내밀하고 섬세한 감정들을 잘 포착해내서 이렇게 야무지게 잘 풀어낼까, 읽는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전체적으로 우울한 이야기들이지만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면 결코 낯설지가 않았다. 나도 한번쯤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느껴봤음직한 정서들이었다. 나에게도 이렇게 여성적인 예민한 감정들이 있었나 놀라기도 했다.

작가의 단편들은 결코 어줍잖게 삶의 희망이나 용기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종일관 우울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삶은 어둡고 답답하며 절망적이다. 그냥 인생은 원래 우울하고 답답하고 절망적인 저주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들을 읽고 있노라면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현실이 불행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자꾸 행복하다고 자기체면을 걸면 정신만 이상해질 뿐이다. 감추려하지말고 힘들면 힘들다고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정신건강에 좋다. 자신의 아픔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실컷 아파하는 것이 오히려 삶을 버텨내고 견뎌내고 결국은 살아내는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단편들은 인물들의 아픔과 상처를 이해하고 공감하게끔 한다. 나 역시 이런 정서적인 이해와 공감을 통해서 약간의 위로를 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치유라는 건 애초에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냥 약간의 위로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살아낼 수 있을지도...



1.쇼코의 미소

소설을 보다가 아무리 슬퍼도 우는 경우는 없었는데 소유의 할아버지를 보면서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라서 가랑거렸다. 잠시 내 호르몬 분비에 이상을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신파를 극도로 싫어하는지라 영화에서도 억지로 눈물을 짜내려고 하는 장면이 나오면 짜증이 치밀어 올라서 극장을 뛰쳐나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괴팍한 할아버지가 일이 풀리지 않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소유의 집을 갑자기 찾아온 장면과 병든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가족들이 함께 하는 모습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어떻게 보면 신파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평범한 이야기가 내 내면의 깊숙한 어떤 한 지점을 건든 것이 분명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러브레터'이다. 소년 이츠키는 자신의 감정을 끝까지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겉으론 아닌척하면서 속으론 좋아하는 겉과 속이 다른 남자. 소유의 할아버지도 이런 부류이다. 결국엔 까칠했던 인물의 감춰둔 진심이 드러나거나 뒤늦게 상대방이 알게 되면 나에겐 이상하게도 뭉클한 울림이 전해진다. 과거에 짝사랑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러브레터를 다시 보고 싶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다.

2.씬짜오, 씬짜오

베트남 쌀국수와 월남쌈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착하고 정이 많은 투이 가족이 저녁 식사에 초대해 준다면 감사히 응할 것이다. 그리고 소녀의 엄마처럼 베트남 전쟁에서 저지른 한국 군인들의 대량 학살에 대해 죄송하다고 사죄의 말을 할 것이다. 전쟁은 정말이지 구역질 나는 학살일 뿐이다.


3.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순애 언니가 자신의 처지와 불행에 대해 좀더 솔직했더라면 좋았을텐데...


4.한지와 영주

영주의 감정선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이해와 공감이 많이 되었다. 그러나 한지가 잘 지내다가 갑자기 영주와의 관계를 끊어버린 이유에 대해선 마지막까지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해해 보기도 했다. 사람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싫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럴 때가 있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나에게 딱히 해를 끼친 적도 없으며 오히려 잘 하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단지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싫었던 적이 있었다. 분수도 모른 채... 그러나 한지는 나같은 저질 인성을 소유한 부류는 아니었고 오히려 아주 바르고 성실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청년이어서 이렇게 보면 안 될 듯도 하다. 작가가 조금이라도 유추할 수 있는 힌트라도 주면 좋을텐데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 묻지 말라는 걸로 생각하겠다. 그냥 단지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이유 없는 단절이 일어날 수 있으며 그런 일을 당하면 당황하지 말고, 이해하려 들지도 말며, 그리 크게 상처 받을 필요도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머리 아프다.


5.먼 곳에서 온 노래

학창시절 나도 노래패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다른 곳에 이미 적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양다리를 걸칠 수 없었다. 지원을 했더라도 노래패에선 내 노래 실력으론 어림도 없다고 퇴짜를 놓았을 수도 있겠다. 그시절에 나는 민중가요를 부르고 있으면 내가 왠지 바르고 정의로운 인간이 된 듯한 착각이 들곤했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음에도...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말하며 여성성을 비하하는 진짜 여자의 적인 부류들도 있지만 소은과 미진이 보여주는 섬세하고 부드럽고 정감 깊은 우정은 아름답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남자들의 우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언뜻 떠오르는대로 적어보니 술 끝까지 같이 마시기, 담배에 대한 후한 인심, 돈 빌려주기, 빚보증 서기 등등...


6.미카엘라

여자의 딸에 대한 사랑은 갑갑하리만치 헌신적이다. 남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부럽다) . 자식에게는 눈꼽만치라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한다. 자식의 존재 자체가 자신에게는 살아가는 힘이자 축복이다. 자신이 준 사랑보다 딸로부터 받은 사랑이야말로 하늘 같은 은혜라 생각하며 감사하며 사는 사람, 미카엘라의 엄마가 바로 진정한 성모의 모습이 아닐까.

근데 광화문에서 만난 엄마는 왜 엄마가 아니었을까. 스토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난 자꾸 이런 데 집착하게 된다. 단편 소설이 이렇게 모호하게 해석 불가능한 여지를 남기고 끝나는 건 아직까지 서사에 집착하는 나에겐 힘든 일이다.


7.비밀

미진이 중국에 간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후반부에 가서야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앞부분을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감각이 무디고 눈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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