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한강/창비>
제목으로만 봐서는 맑고 풋풋한 사춘기 시절이 떠올랐다. 그러나 한 페이지를 넘기고 나니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광주 민주 항쟁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역사적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솔직히 이런 암울한 책은 읽고 싶진 않았다. 대학시절부터 책이나 영화들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었고 요즘들어 읽은 책들마다 전반적으로 어두워서 이제는 좀 밝고 희망적인 책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목에 낚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책장은 넘겨졌으니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 책이 두껍지 않아서 그나마 큰 위로가 되었다.
내가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는 맨부커상에 빛나는 한강 작가의 책을 더 읽어 보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그녀의 여러 책 중에 제목이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을 뿐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은 후 나는 우리나라 작가의 역량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예전에 나는 외국소설에 비해 우리나라 소설을 약간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채식주의자는 작년에 읽은 외국의 맨부커상 수상 작가인 이언 매큐언이나 줄리언 반스의 작품에 견주어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오히려 채식주의자가 밀도 있는 탄탄한 구성과 깊은 울림에 있어서는 한 수 위로 보였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정도로 훌륭한 작품이었다. 저 여리고 순한 얼굴을 가진 여자가 어떻게 이렇게 독하디 독한 글을 써 낼 수 있었을까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강의 소설을 처음으로 접한 건 2005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몽고반점이었다. 몽고반점이 채식주의자에 들어간 연작 소설 중 한편이라는 사실은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알게되었다. 몽고반점도 좋았는데 세 편의 연작 소설이 합체가 되니 비로소 완전체가 되었고 그 파급력은 어마무시했다. 딱히 흠 잡을 때가 없었다. 채식주의자가 유제품(아이스크림)을 먹은 것만 빼고는……..
한강의 글은 그녀의 인상만큼이나 단아했다. 화려하거나 과장되지 않은 정갈한 문장은 읽은 이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들었다.
에필로그에 나오는 그녀의 어린시절과 작가를 아버지로 둔 가정환경은 그녀가 훌륭한 소설가로 자라나는데 비옥한 옥토 역할을 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에 비해 나의 어린시절을 돌아보니 우리 집안에 문학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집에 있었던 책으로 아직까지 기억남는 거라곤 표지가 너덜너덜한 전설의 고향같은 귀신류의 책이 다였던 것 같다. 국민학교 입학 전, 글자도 모르는 나는 누나가 읽어준 내용을 기억하고 삽화에 나오는 머리 풀고 입에는 피를 머금고 있는 한 많은 처녀 귀신 그림을 유추하여 그 책을 수 십번씩 멋대로 낭독했던 기억이 난다. 그 길로 나갔다면 나는 아마 훌륭한 무속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자를 깨우친 이후에는 오히려 나는 책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중학교 시절엔 두꺼운 양장본의 문학전집이 있었지만 왠지 건들면 안 되는 책으로만 보였다. 학습에도 적령기가 있듯이 내가 어린 시절 한강과 같은 가정환경에서 자랐다면 나는 과연 소설가가 될 수 있었을까. 뜬금없이 이런 생각도 해본다.
이 책을 읽은 후에 나는 주제와는 상관없이 인간의 잔인함에 대해 또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읽는 책들이 맨날 이렇다. 과연 인간은 원래 잔인한 존재란 말인가. 마치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처럼 특정한 소수의 악마(전두환) 같은 인간과 그를 추종하는 무리에 의해서 평범한 사람들조차 내면에 은폐되어 있던 잔인한 본성이 발현되는 것일까.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무자비하게 저질러진 군인들의 살상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그 중에 부상당한 시민을 업어서 병원 앞에 몰래 두고 온 군인도 있었고 가득 쌓인 시체들 앞에서 군가를 부르는 무리 중에 입을 꾹 다문 모습의 군인도 외신의 영상에 나온다고 한다. 도종환 시인은 이 때 진압군으로 참가했는데 일부러 총알을 거꾸로 집어넣었다고도 한다.) 그들도 자신들의 집에 가면 어진 아비 어미를 둔 사랑스런 아들이었을 것이고 어여쁜 누이동생도 있었을 것이다. 군대에 간 자식 걱정으로 노심초사 잠 못 이루는 가족들도 있지 않았겠는가. 광주 시민들이 그들 가정사의 철천지 원수도 아니었다. 그들이 잔인하게 살육하고 고문하고 학대한 사람들은 외계인이 아니었다. 짐승도 벌레도 아니었다. 백번 양보해서 상부의 명령이 발포였다면 군인 명령체계에서 발포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그들이 저지런 그 이외의 잔인한 살육들은 과연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이들이 과연 문명 사회에 나와서 멀쩡하게 가정을 이루고 어떻게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잔악한 짓을 하고도 다시 사회에 돌아와 아무일 없듯이 평범한 가장으로, 아이들의 아빠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사이코패스가 아니고서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하고 용인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우린 이런 소수의 악마 같은 인간들에 의해 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악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도 너도 내 주위의 선한 이웃들도 언제든지 돌변해서 살인마가 될 수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광주 항쟁의 실상을 알리는 책으로만 보면 안된다. 작가는 광주 학살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 그 미친 살육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 학살자들을 추종하는 후예들은 지금도 교묘한 논리로 버젓이 인간의 존엄을 유린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들을 막아내려면 뼈아픈 역사적 사실을 낱낱이 밝혀내고 단죄하고 기억해내야 할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만이 악마같은 그들의 준동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한강 작가가 그녀의 여린 감성과 목소리로 광주를 다시 그려낸 것은 그런 이유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