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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역사가/주경철/현대문학

by 오달빛

<일요일의 역사가/주경철/현대문학>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저자의 독서 감상문과 비슷한 서평책인 줄 알았다. 그래서 약간 실망했지만 일단 책을 고르면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기 때문에 썩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읽기 시작했다. 서평책은 내가 읽어 보지 못한 책이나 어려워서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책들을 저자의 관점에서 쉽게 해석하고 요약해서 알기 쉽도록 설명해 준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여러 서평책을 읽으면서 늘 뭔가가 허전하고 찜찜한 느낌을 받아 왔었다. 저자에게는 뼈가 되고 살이 되어서 재탄생한 내용들이겠지만 나는 마치 소가 발만 담그고 지나간 밋밋한 맹탕국을 마신 듯한 기분이었다. 저자가 읽은 책들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은 알 수 있어도 저자만큼의 깊이 있는 이해까지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한계가 나를 짜증나게 만들기도 했다. 때로는 그럭저럭 편안하고 재미있게 읽은 책도 있었는데 읽고 나면 내 머릿속은 즉각 지우개가 발동했다.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두 번이나 읽었다. 좋아서 두 번 읽은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선물해서 재미나게 읽었는데 어느날 독서 목록을 정리하다 보니 이 책은 불과 몇 년 전에 내가 읽었던 책이었다. 예전엔 노트에 요약 정리까지 했었는데 읽는 동안에는 내가 읽었던 책이라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읽었던 책을 모르고 또 읽은 이 불행한 사태에 대한 책임을 나는 내 기억력보다는 서평책에 다 뒤집어 씌우고 싶었다. 서평책은 원래 그래. 내 잘못이 아니라고. 서평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저자가 읽은 책을 같이 읽으면 가장 이상적일 것 것이다.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고 이해하고 반론도 제기한다면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그래서 나도 한번은 서평책에 나와 있는 책을 직접 사서 읽어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얕은 나의 독서내공으로는 저자만큼 그리 즐거운 독서를 하진 못했다. 나는 그 이후로 서평책은 가능하면 가까이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아니다. 서평책이라고 볼 수 없었다. 물론 저자가 읽은 책이나 영화를 기반으로 하지만 여느 서평책과는 차원이 달랐다. 11가지 역사적 사건들을 마치 소설처럼 쉽고 흥미롭게 풀어낸다. 부제가 역사 산책이라고 말하지만 결코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읽을 책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무거운 주제가 주를 이룬다. 엄청난 몰입과 재미와 충격과 사색의 세계에 빠져 들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돈 주고 많이 사서 공짜로 뿌리고 싶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생각은 없다. 암튼 이 책, 정말 좋은 책이다. 앞으로 주경철 교수의 책은 일단 믿고 봐도 되겠다는 신뢰와 믿음이 생긴다.

인간으로 태어난 건 축복일까, 저주이자 형벌일까.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테렌스 데프레의 '생존자'를 읽으면서 나는 인간이 이룩한 문명과 인간 본성에 대한 환멸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이 책에도 인간들이 저질렀던 잔악무도한 사건들에 대한 내용들이 특히 인상에 많이 남았다. 왜 이런 충격적인 역사적 사건들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는지 의아할 뿐이다. 물론 나만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유럽인들의 대학살은 많이 알려졌지만, 이 책은 유럽인들이 오기전 원주민들의 야만적인 '인신 희생 제의'를 다룬다.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꺼내서 신께 바치고 내장을 빼내고 남은 시체는 잿밥 나눠 먹듯이 맛있게 사람고기를 쳐먹는 원주민들은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순수한 인디오들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에서 수백 명에 이르기까지 활어회처럼 반드시 산 사람의 심장을 빼내 재물로 바쳐졌다고 하니 내가 마치 재물이 된 듯한 소름이 끼쳐왔다.

황당무계한 마녀 이론을 앞세워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잔인하게 마녀사냥을 자행했던 기독교 사제들은 그들 자신이 마녀이자 악마의 화신들이었다.

농부인 메노키노가 생각한 기독교에 대한 순박하면서도 정연한 논리에 매료되었고,

바타비아의 무덤에서 인간의 이성과 신앙은 극한적인 상황에선 언제든지 야만으로 돌아가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살인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충격과 공포로 떨게 했다.

이 책은 인간 광기가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 묻게 만드는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들로 마무리 된다.

"수용소는 멀리 지나가버린 과거가 아니다. 우리의 기억이 '밤과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린다면 수용소는 언제든 우리에게 다시 닥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책의 제목이 '일요일의 역사가'인지는 다 읽어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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