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함에 대하여(악에 대한 성찰)/ 애덤 모턴/ 변진
<잔혹함에 대하여(악에 대한 성찰)/ 애덤 모턴/ 변진경/ 돌베개>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나는 줄곧 도덕시험은 100점을 받아왔다. 하지만 도덕 시험을 위해 일부러 공부를 한 적은 없었다. 나에게 도덕 시험은 너무 쉽고도 유치해서 과연 이 문제들이 굳이 시험이라는 범주 안에 들어갈 가치가 있는지 의문스럽기까지 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국민윤리를 배웠지만 과목명만 다를 뿐 나에겐 도덕과 다를바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이 과목에서만큼은 언제나 백점을 받았고 그 기세는 대입학력고사에 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어렵거나 헷갈리는 문제는 거의 없었고 설사 있더라도 나의 직감적인 겐또 실력은 언제나 정확하게 정답을 지목했다. 그동안 늘 그래왔듯이 시험 기간임에도 윤리과목을 위해 공부할 시간을 따로 할애하는 것에는 여전히 인색했다. 내 입장에선 초등시절부터 도덕과 윤리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과 직관력만으로도 충분히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과목으로 이미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도덕적 감각이 천부적으로 타고난 인간이어야만 가능한 일이며 그런 인간은 나를 포함하여 지구상에 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급기야는 이러다가 내가 나중에는 성인의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하는 자만과 망상에 빠지기도 했다.(나중에 알고보니 많은 학생들이 윤리나 도덕은 공부를 별로 하지 않고도 좋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탁월한 도덕적 감각으로 받은 높은 시험 점수가 한 인간의 도덕성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고 나는 적잖히 실망했다. 그러나 이 사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도덕 시험 점수가 그 사람의 도덕적 품성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사실을 가장 강력하고도 확실하게 증명해낸 사람이 유감스럽게도 바로 나였으니까…
영리한 소시오패스는 타인의 기쁨이나 슬픔에 공감하는 감정이 없기 때문에 이해타산에 따라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이런 도덕적 감정들을 외우고 익힌다고 한다. 마치 도덕책에 나오는 것을 이해하지는 못하고 외워서 자신의 이익에 부합한 상황에서만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연기하는 배우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타고난 도덕적 이해력으로 여러가지 덕목들을 배우지 않아도 도덕 시험을 잘 쳤던 나는 적어도 소시오패스는 아니지 않을까. 정말 그런가?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도 때로는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연기를 한 적이 있긴 한데...헷갈린다. 그래도 일단 나는 소시오패스는 아닌걸로 하자.
나는 잔인한 장면을 잘 보지 못한다. 예전에 테러단체가 인질을 살해하는 장면의 동영상이 떠돌아 다녔는데 몇몇 주위 사람들은 호기심에 그 동영상을 돌려가면서 보았지만 나는 무섭고 두려운 나머지 그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뉴스에서 주황색 죄수복을 입고 무릎을 꿇린 채 앉아 있는 인질을 보노라면 그의 공포와 고통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지는 느낌을 받아서 화면을 돌리거나 외면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유약한 내 감정을 자책하기도 했다. 좀더 강하고 냉철한 남자가 되어 저런 류의 동영상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볼 수 있는 멘탈을 소유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나를 고의로 그 끔찍한 고통 속에 몰아넣어서 멘탈을 강하게 단련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지 못하게 막는 내적 장벽을 가지고 있는데, 이 내적 장벽을 애초부터 가지고 있지 않은 소시오패스나 이 장벽을 넘어서는 법을 학습한 사람, 장벽을 넘어서게 하는 신념을 형성한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나는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는 장면조차도 무서워서 기겁을 하는 겁 많고 유약한 감정의 소유자이기에 이 잔혹한 행동을 막는 내적 장벽이 남들보다 높고 튼튼하리라 생각해 본다. 이렇게 막 내 맘대로 좋게 해석해도 될런지 모르겠다... 그렇게 해석이 가능하다면 적어도 나는 홀로코스트의 부역자처럼 타인의 고통에 무심해 하며 열심히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능숙하게 종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잔혹한 짓을 저지른 사람들은 악마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고 악을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이해라는 것은 그들이 악한 행동을 막는 내적 장벽을 어떻게 넘어섰는지를 파악하는 일이다.(솔직히 이해하기 싫다...) 너도 나도 언제든 금지 행동을 막는 내적 장벽을 다양한 동기에 의해서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악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이해하고 악의 징후에 민감해지면 악을 예방할 수도 있다는 그런 내용인 것 같다.
이 책에서 다루는 악의 평범성은 전에 읽었던 '쌤통의 심리학'과 '생존자'에서 다뤘던 내용과 중복되기도 한다. 솔직히 재미없는 내용이지만 가끔씩 이런 책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지적인 사람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어서 그리 나쁘진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악행을 저지르지 않게 하는 예방 주사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효과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책 내용은 우려했던 것보다는 어렵지 않았다. 문장도 그런 대로 술술 잘 읽혀 나갔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마치 나무 하나하나는 잘 보고 갔는데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 같았다. 아마도 나의 독서력과 지적능력이 이 책을 완벽하게 읽어내기엔 역부족이어서 그럴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분량이 236페이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보다 두꺼웠다면 나와 이 책은 인연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