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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as Jun 10. 2023

간호사랑 할 걸 그랬어

"하지 그랬어. 성공했어야지!! 왜 못 했어?"

안녕하세요. 저는 번째 브런치 신청으로 작가 승인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유아기 트라우마가 성인기까지 미치는 삶의 악영향에 대해 에세이를 쓴 것이 승인이 안되었고, 마지막 세 번째는 나르 남편과의 일상 이야기를 통해 가족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기획하겠다는 목차들을 작성하여 승인받았기에 빠르게 기획하고 싶은 마음에 일단 오늘 쓴 내용을 공유합니다.


저는 이 삶이 너무도 피곤하고 성장이 더디기 때문에 초기에는 두렵고 당장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제겐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이혼한다는 것은 제 세계관이 완전히 붕괴되는 영역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여전히 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골몰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가시적으로 제 앞에서는 가족 일이라면, 특히 돈쓰는 영역에서 아주 굉장히 느린 민달팽이처럼 움직입니다. 의식이 잘 바뀌질 않습니다. 남편은 나르이면서 동시에 돈의 노예이기 때문에 임신 중에도 과일 한번 사온 적이 없었어요. 왜 임신기에는 그렇게 남편이 사준 음식이 먹고 싶을까요? 아이와 나를 보호해 주겠다는 확언을 받고 싶었겠지요. 하지만 남편의 언어가 늘 폭력적이기 때문에 더욱 바랐던 것 같습니다. 제가 힘들 때마다 가족들에게 하소연을 했지만 나르의 완벽한 이중성 때문에 가족들은 인식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물론 저도 남편이 나르라고 판정하기까지는 최근 3~4년이 되어서야 확신하게 됩니다. 나르인 남편은 최대한 자신의 패를 감추는 데 달인이기 때문에 또 저의 사고구조와 매우 달라서 제 정신 구조로서는 인식하기 어려운 패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함께 하기로 결심하였기에 헤쳐나가고자 합니다. 대학원에 진학 한 이유는 지성인들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나의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심리상담소에서는 저의 마음을 울리지 못했기에 저의 이성을 직접적으로 깨우치기 위해 진학을 했던 겁니다. 이상하게 나르는 권력으로 보이는 것들을 굉장히 선망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 같더라고요. 제 남편의 경우는 그렇습니다.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 자기의 행태를 일렀다 할 때는 아무렇지 않다가 '나 교수님한테 자기가 이러이러하다고 왜 그런지 물었다.'라고 할 때는 굉장히 두려워했으며, 상담가에게 '남편이 결혼하고서도 한 번도 수박 등 과일을 사다 준 적이 없어요. 임신 중에 무거워서 못 가져오니 사달라고 했지만 한 번도 사준 적이 없다.'라고 하소연할 때서야 남편의 행태를 타인에게 알린 후에 그는 처음으로 3개월을 버티더니 포도 한 상자를 사줬습니다. 그 후로 15,000원짜리 수박 덩이를 사준 것은 11년 만에 처음 있었던 일이라 너무 신나서 지도 교수님께 다음과 같이 여쭸습니다.


 "교수님 10년이 넘어서야 수박을 사줬어요. 한 번도 사준 적이 없는데."

"그래? 바뀌었네?"

"네? 뭐가 바뀌었어요. 겨우 10년 넘어서야 처음 산 건데요."

"바뀌었잖니, 이전에 하지 않았던 것을 했잖니."

"그래서요? 이번에 겨우 한 거잖아요. 한 번 한 거잖아요."

"안 하던 걸 했다는 것은 다른 걸 봤다는 거지. 그 전에는 보지 못한 것을 봤다는 것은 시선이 바뀐 거지. 서서히 바뀔 수 있다는 거잖니?"

"아~..."


그 말씀이 너무도 감명 깊었기 때문에 서서히 바뀌길 바라며 기원하며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이 번에는 저를 지켜가면서요.




"그 간호사 괜찮았는데. 그 여자를 더 만나볼 걸 그랬어."

                           "뭔 얘기? 어? 염병하네 또."


"아니 지가 얼마나 잘났다고. 얼굴도 별로 여서. 아니 간호사나 계속하면 될 거 아니여. 나한테 스튜어디스 할까 고민해서 그냥 하지 마라고 얘기했더니. 아니 얼굴이 돼야 하라 하지. 지라서. 분수를 알아야지."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뭐 하러 그런 개소리를 해서 난리여. 그럼 여자가 좋아하냐? 그 여자한테 잘해서 성공했어야지. 왜 실패해서 나한테 와서 지랄이야?"


"착각하지 마라. 네가 좋아서 너한테만 매일 간지 알지? 다른 여자한테도 사실은 갔지요. 데이트를 두 번씩 뗬다고. 하하. 그러니까 네가 멍청해서 선택했지. 네가 바보라서. 시키는 대로 할지 알았지."


"염병하고 있네. 그 여자랑 연결되지 그랬는가. 결혼생활 개 피곤해 죽겠구만 그리고 왜 이사한 날 쓸데없는 개소리는 왜 하는데?


"야 시끄럽다. 감히 너 따위가 하늘 같은 남편한테. 네가 바보라서 했다고. 그러니까 간호사도 괜찮았는데. 왜 그 여자는 나한테 화낸 거지?"


"아주 지랄 떠네!!"



참 이상한 인간이다. 왜 이사 당일날 새집 지하주차장에 집입하자마자 저 개소리를 지껄이는 걸까. 도대체 이해가 안 가서 이곳으로 이사 오는 즈음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가족들이 내 말을 믿지 않기 때문에, 카톡으로 실중계를 하기 시작했다. 중계 2년이 좀 넘어가서야 친형제들이 서서히 알 듯 모를 듯했고, 가족들이 완전히 인지하기까지는 3~4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당사자인 나조차도 '나르'의 정체를 알기까지는 전문적인 지식채널의 도움 없이는 인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지성의 보고인 대학원에 가서도 사람을 전문적으로 판단하기는 학문 분과 특성상, 긴가민가 결론짓기 어려웠다. 그 빌어먹을 관용의 법칙과 같은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와 같은 자유, 평등, 박애, 인권 등의 인문학의 수혜를 받은 나는 대학 이후의 삶에서 정신적 풍요를 누렸던 것과 동시에 또 다른 면에선 남편의 회피성향과 반복적 폭언으로 정신적 피해자 입장의 고통의 고리에서 쉽게 벗어나지도 못하는 이상하고 요상한 모순적 삶이었지. 그 인문적 성향이 현 남편인 '나르'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이 때문에 그 치유를 위해 다시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내 생명의 근원인 또다시 인문학을 향해 달려온 사연이 참 길다.


이 '나르'의 속성은 참으로 제 잘난 맛으로 산다. 내가 할 말만 콕콕 짚어서 명확하게 잘 내리꽂는 저 실력은 쫓아가기도 힘들다. '나르'들이 자신만의 세상이 전부이고 유아독존의 상태로 머물러 있다는데, 의도적인 것도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정말 악질이다. 인식이 빠르면서 모든 흐름을 자기 이익우선으로 배치한다. 이익을 손에 얻기까지 교묘히 철저히 침묵하며 경계를 절대 넘지 않는다. 나처럼 앞과 겉이 투명하길 바라는 사람은 도저히 그의 속성을 읽기가 어렵다. '나르'들의 가장 쉬운 사냥감으로 인식된다. '나르'는 겉보기에 굉장히 자존감이 높은 사람인 것 같으면서도 극 수치가 심해 보였다가도 아닌 듯, 자존심인가? 판단과 평가의 선을 교묘히 흔들어 놓고, 말은 그리도 많은가? 그리고 본질을 따지러 들 땐 '나르'는 나의 명치를 바로 찌르듯 숨통을 쥐어짠다. 어찌 그렇게 약점은 잘도 파악하시는지? 요즘 뜨는 핫한 심리용어인 가스라이팅의 달인이다. 난 이 단어를 유튜브채널에서 2019년에 처음 접하게 됐다. 그때서야 명의를 만난 것처럼 엉킨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니 같은 것들 때문에 사회가 발전이 안 되는 거야. 배려할 줄을 알아야지. 너 같은 며느리가 어딨냐? 아니 내 주변에는 너 같은 애가 없는데 말이지. 너같이 수준 낮은 얘가 없다니까? (중간에 대꾸할 세면) 말 걸지 마!! 아 저리 꺼져. 니 혼자 해. 수준도 낮아가지고, 능력도 없는 것들이 불만만 많다니까."


"하~~~~"

정말 할 말이 없다. 입뿐만 아니라 맘이 턱 막힌다. 저 으익..어~ 미ㆍ쳤ㆍ나...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가만 생각해 보니, 자기 왜 그래? 결혼 전에는 안 그랬잖아. 갑자기 보니 말투도 바뀌고 왜 함부로 해?"


"그러니까 네가 멍청하지. 결혼했으니까. 이제 빈폴도 안 사 입어도 되고. 좋구만... 아따 돈이 진짜 좋네. 세상 쉽네. 돈이면 다 되구만. 100만 원이면 결혼도 할 수 있고 역시 돈이 최고라니까."


"아주 미쳤는가? 뭔 소리야?"


"음 음 음~~~." 내 말이 들리지도 않은 듯 콧노래를 부른다


저 괴귀한 짓. 나야말로 저런 반응을 보인 사람은 내 평생 처음이다. 저런 인간이 어떻게 나랑 결혼하게 됐지? 뭐라는 거야? 돈에 미쳤나? 뭐지? 어? 뭐야? 머리가 머엉... 깊게 생각하면 지끈거린다.



이 대화는 결혼 초 첫 달부터 시작된 대화이다. 남편의 결혼 전후 확연히 달라진 태도에 대한 의문의 상태가 결혼 시작과 동시에 8년을 넘게 지속되었다. 지랄발작하는 남편의 매일같이 반복되는 말들을 통제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고, 그 이해할 수 없는 것 때문에 골몰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물론 이해가 안 돼서 이해하기 위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들로 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이미 결혼함과 동시에 아이를 갖었기 때문에, 난 태교에 전념해야 했지. 그 말놀이에 춤 출수도 분노를 자유롭게 할 수도 없었다. 그냥 난 내가 가진 자극되는 트라우마를 잠재워야만 했다. '나르'가 나를 불쏘시개로 자꾸 찔러댔지만... 난 최희수 저, <배려 깊은 사랑이 행복한 영재를 만든다>는 자녀를 지성, 감성의 조화로운 인간으로 양육할 수 있다는 책에만 온정신을 다해 매달리고 기대면서 버텨냈다. '나르'남편은 정확히 잠들기 밤 10시 20분까지 매일 혼자 소리 내어 나를 비방하고 모욕, 비난, 질책하는 재미에 빠진 듯 독백하는 이상한 습관이 있었다.  습관에 상처를 많이 받은 나는 도저히 온전한 정신으로 버텨낼 재간이 없어 이후 상담소를 두드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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