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없어도 나는 근사한 사람이다.

‘친구 집착증’ 벗어나기

by 위메리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친구가 없었다. 주기적으로 괴롭힘을 당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람 한 명 꼬이지 않는 쓸쓸한 운명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친구만 없을 뿐 좋은 선생님과 정신적 지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 이야기를 하자면 당장 내놓을 이야기는 없다. 은둔하고, 은둔을 철수하고, 사회생활을 할 동안에도 친구는 없었다. 결혼하고 유부녀가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친구가 없는 삶을 떠올리면 대부분 쓸쓸하거나 슬픈 이미지를 떠올린다. 친구가 없는 사람은 인생을 반쪽만 산 것도 같다는 명언도 있다. 맞는 말이다. 타인보다 경험이 적다 보니 감정의 스펙트럼이 짧고, 심심한 날이 많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만의 방식을 정해야만 한다. 나는 혼자 살아가는 대신 혼자만의 정답을 만들며 정직하게 살아왔다.


친구가 없다고 하면 다들 성격이 이상하거나 볼품없는 외모를 떠올린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성격이 모나지도 않았고, 불편한 외모를 갖고 있지도 않다. 그러니깐 편견이다. 따돌림 트라우마로 사람들을 피한 적은 있지만, 나도 한때 친구라고 불릴 이들이 곁에 있었고, 모임도 꾸려갔다. 당시에는 ‘친구가 무조건 있어야 한다’는 관념에 파묻혀 살 때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친구가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친구 없이 어떻게 살아?’ 같은 고정관념이었다. 나는 강박에 시달리며 성격적으로 맞지 않는 이들과도 어울렸다. 처음 보는 데도 아는 가족과 관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같이 여행을 떠난 적도 있다. 1박 2일이었다. 상상처럼 재밌지 않았다. 어색하고, 숨 막히고,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그들이 그들끼리 아는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침묵했고, 오히려 쓸쓸했다. 코드가 달라서 맞지 않는 술자리에서도 억지로 웃기만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애를 써본 사람들은 안다. 내 얼굴에 가면이 쓰여 있다는 걸, 그 가면을 벗는 순간 숨통이 트이고 정신적으로 맑아진다는 것을 말이다.


언젠가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난 것 같아서 단숨에 친해졌다. 집까지 왕래할 정도로 친해졌다고 생각해서, 힘들어하던 학창 시절 이야기도 꺼내고, 은둔하는 습관까지 오픈을 했다. 그런데 어쩌다가 개인적으로 얽혀 있는 지인과 내가 싸우게 되었고, 말다툼 하는 자리에서 그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은 일이 많아서, 성격이 예민해진 거라고, 나보고 참으라고 그 친구가 일러주더라고요. ” (이 워딩도 순하게 바꾼 것이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내게 친구는 없었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는 우리 관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는커녕 장난스러웠다. 아픈 속사정을 남에게 까발려서, 약점으로 돌아와 버리는 순간이었다.


쓰디씀을 겪은 이후로 나는 내 얘기를 잘 안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만나서 한마디도 안 하는 숙맥처럼 있는 건 아니고, 인상을 찌푸리며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보통의 사회생활을 할 뿐, 그 안에서 “내 사람”을 만나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학창 시절에 친구를 사귀고, 직장에서도 맘 맞는 사람들을 만나니까, 누군가 마주치더라도 그 인연을 깊이 생각하거나 진지하게 대하는 일이 적었다. 흘러가는 인연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이다. 나는 친구가 없었기에 작은 인연이라도 과장되게 생각했고, 평범한 관계를 진주 보석처럼 귀하게 여겼다. 그렇게 혼자 바보가 되는 상황들을 맞닥뜨리는 일이 많을수록 내가 집착하는 진실을 깨달았다.


어째서 친구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나는 친구가 없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속이 후련해졌다. 그래, 나는 친구가 없어. 혼자가 맞아. 사실을 인정을 하는 게 오히려 속 편했다. 그동안 ‘완벽한 인생’ ‘완벽한 나’를 그리며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래서 나 자신을 인정하는 순간, 외로움을 잘 타는 나 자신을 안아주는 기분이었다.


인정을 하면 이후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억지로 애쓰지 말자, 나는 나대로 살아가는 일만 남았다. 남들이 친구와 식사하고 쇼핑하는 시간에 나는 나 혼자 나만의 세계에서, 내게 좀 더 몰입할 수 있었다. 나의 식성과 성향,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나의 특징을 점점 더 알게 되는 것이다. 분명 쓸쓸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유익한 시간이었다. 내가 나의 친구가 되니 친구가 없는 일 따위 별게 아닌 걸로 느껴졌다. 오히려 혼자 몰입의 시간이 있었기에 성장할 수 있었다.


혼자 있는 일이 익숙해지면서, 내게 생긴 새로운 취미는 “독서”였다. 부끄럽지만 학생 시절엔 끝까지 읽은 책이 단 한 권도 없었다. 교과서에 실린 시나 소설 부분만 읽을 뿐이었고 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심심풀이로 독서를 시작했고, 나중엔 시를 읽으면서 좋은 부분은 기록하고 필사까지 하게 되면서, 글 실력이 올라갔다. 나중엔 그 경험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독서를 통해 작가란 새로운 꿈도 꾸었는데, 외로움이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 글쓰기는 그림이나 춤과 달리 혼자서 하는 작업이기에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몰입할 수 없다. 결국 혼자 시간을 써야 하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을 했지만, 남편은 일하러 나가서 밤에나 돌아오니 오랜 시간을 혼자 있는 내게 외로움은 적절한 친구가 되었다. 의외로 천성과 맞는 것이었다.


또 두 번째 취미는 명상이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스리고 편안하게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나는 명상을 시작했다. 명상 또한 혼자 하는 일이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들과 섞여 있으면서도 명상을 할 수 있지만, 아직 고수 단계에 올라가지 못해서 혼자 있는 시간을 활용한다. 명상 덕분에 많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병원 공포증, 무대 공포증’ 등등.. 겁내고 힘들어했던 일들을 제법 용기내어 시도했다.


나는 남보다 유독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 시간을 적절하게 보내기 위해 숱한 노력을 해왔다. 덕분에 나는 전보다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이 시간을 지난 후에 친구가 생긴다면 없는 것보다 좋겠지만, 친구가 그렇게까지 특별한 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남편의 친구와 시간을 보내더라도, 그 또한 귀한 인연이니 특별한 우정을 느낄 수 있고, 오랫동안 키운 반려 동물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며 종을 거스르는 우정을 만끽할 수도 있다. 친구야 언제든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바람처럼 놓아버릴 수 있다면, 바람처럼 언제든 찾아오는 손님일 수도 있다. 다스릴 건 내 마음 하나 뿐이었다. 결국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나는 언제나 나와 함께하기에 노력하는 걸 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결국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혼자 있을 때도 자유로우니, 누군가와 있더라도 외로움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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