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일기를 쓰자 변했다

내 마음에 귀 기울이는 일

by 위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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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심하게 앓을 시절, 매일 일기를 썼다. 제목은 우울증 치료일기 였다. 블로그에 연재를 했는데 꼬박 1년을 채웠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전에 일기를 2년 동안 쓴 내공이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일기를 쓴 건 단순한 이유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일기를 쓰기 때문이었다. 그럴듯한 이유 없이 그녀를 모방했다. 멋있는 그녀를 따라 하면 나도 멋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난 멋있어지지 않았다. 대신 누구보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일기란 참 신기한 것이다. 일상을 기록하고 감정을 써 내려가는 일만으로도 나를 응원할 수 있다. 단지 일주일만 일기를 썼다고, 한 달 정도 일기를 썼다고 금세 내가 행복해지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일기를 모아놓고 보면 내가 그땐 어떤 고민을 해왔는지, 내가 어떤 점이 취약한지를 대번에 알 수 있다. 예전에 고통받았던 일기를 다시 보면서, 이런 힘든 시간을 버틸 만큼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깨닫는다.


그땐 목성만큼 크고 무서웠던 일들. 시간이 지나고 곱씹으면 고통 따위는 없다. 그 시절을 버틴 내 모습만 보일 뿐이다. 누가 무어라 했건 어떤 소리를 했건 일기에서는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 내 마음만 존재한다. 일기 때문에 나는 차츰 성장했고, 우울증 일기를 1년 꼬박 기록했을 때 우울증을 탈피할 수 있었다.


물론 우울증을 치료했다고 인생 모든 힘든 일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우울증이 끝난 다음의 삶이 이어졌고, 삶은 언제나 나에게 예기치 않은 시련과 아픔을 주었다. 하지만 이젠 과거의 데이터가 있으니 내가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좋을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죽고 싶다’, ‘내가 창피하다’라고 자조하는 일보다 ‘내일은 도서관에 가야지’ ‘요즘 빠진 소설 같은 글을 쓰고 싶다’ 같은 고민이 한층 나았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건 아니지만, 글쓰기가 취미이다 보니 글 쓰는 일이 잦았다. 쓸 글이 없으면 일기장을 꺼냈다. 내가 썼던 과거의 일기에서 적절한 키워드를 찾아서 새 글을 쓰기도 했다. 사람들이 읽어주고 공감해 줄 때 가장 기쁨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내 일기를 더욱더 사랑하게 되었다.


시간이 나면 남의 일기도 자주 찾아보았다. 얼굴 한 번 보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일기를 읽으면 내적친밀감이 쌓이고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네의 일기나 열하일기처럼 유명한 일기를 읽고 연예인이나 공인이 책으로 집필한 일기도 보면서 그들에게도 나와 비슷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구나 깨달았다. 나만 주책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것이 일기의 마법인 셈이다.


물론 나의 일기는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 가족의 험담, 나 자신의 험담 모든 게 들어 있으니까. 일기는 무조건 솔직하게 쓰는 게 좋다. 한때는 일기도 소설처럼 잘 쓰고 싶어서, 감정도 필터링하며 기록했다. 하지만 그렇게 번드르르한 일기를 쓰고 나면 마음이 오히려 헛헛했다. 그래서 모든 감정을 찌꺼기도 남기지 않고 일기에 기록한다. 놀랍게도 ‘뒤끝’이 남지 않았다. 훌훌 털어버리게 되니 하루정도만 지나도 ‘내가 어제 왜 기분 나빴지?’ 싶을 정도로 무덤덤해진다.


내면을 지키는 사람이 되자 남들의 뾰족한 말 한마디쯤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 남들은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한두 마디의 조언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다섯 살 어린 애도, 섬망에 힘든 노인도 내게 조언할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을 책임져주진 않는다. 책임지지 않는 조언이란 얼마나 더럽고 비열한가. 나는 내가 해소할 수 있는 감정만 소유하고, 나머지는 일기를 써내려 간다. 이것이 얼마나 책임감 있는 행동인가.


가족들이 한 번씩 일기를 궁금해하면 대놓고 설명한다. ‘혹시 나 몰래 내 일기를 읽는다면 상처받는 일이 생길 수 있어. 그 책임은 내가 지지 않으니까 웬만하면 죽을 때까지 읽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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