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지상주의자 부모
부모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 지키기
pixabay @Louise Lavallée
우리 부모님은 외모지상주의자다. 아마도 유년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가 부모님의 외모를 지적했거나 살다 보니 외모 때문에 불편한 상황들을 겪어서 생기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문제는 나를 양육할 때도 그 기준대로 했다는 점이다.
우리 엄마는 내가 태어난 시절부터 평균 몸무게보다 더한 몸무게로 살아왔다. 나를 배에 품고 있을 때 임신중독증이었고, 두 번의 출산 때문에 살이 불어났다. 여느 여자들이 겪는 스트레스처럼 엄마는 살 때문에 힘들었던 모양이다. 아빠는 엄마에게 살을 빼라고 강요하진 않았지만 평소 부 해 보이는 옷을 입거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을 땐 미간을 찌푸리며 이상하다고 지적했고, 밥맛이 좋아서 식사를 더했을 경우 식탐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한 결혼생활을 지속했던 엄마의 머릿속에는 무의식 중에 ‘여자는 날씬해야 사랑을 받는다’ ‘여자는 날씬해야만 한다’라는 가슴 아픈 사상이 박힌 모양이다.
아빠는 이른 나이부터 탈모가 와서 머리가 벗어졌다. 이것도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기억한다. 나는 머리가 벗어진 아빠가 창피한 적이 없다.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인식했다. 하지만 아빠는 스스로 부끄러운지 모자를 자주 쓰고 다녔다. 거울을 볼 때마다 머리가 없는 부분을 매만지며 짜증을 내는 장면을 많이 목격했다. 탈모는 많은 남성들의 콤플렉스였고, 우리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마다 나는 머리를 심는 수술을 하거나 가발을 쓰라고 권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아빠가 나를 칭찬해주는 말은 단 한 가지였다. “참 예쁘다” 우리 아빠는 소통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좋은 성적을 받아오거나 멋진 그림을 그려왔을 때도 (물론 부모 입장에서 좋았겠지만) 칭찬을 했지만, 평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은 오직 외모 칭찬뿐이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뻤던 것처럼, 새 옷을 입었을 때 예쁘다고 칭찬하고, 화장품 광고에 나오는 아름다운 배우를 보며 우리 딸 닮았다, 같은 칭찬을 했다. 사실 아빠 눈엔 내가 정말 예뻐 보였을 지라도 나는 늘 그런 말을 듣고 살았기 때문에 아빠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외모를 더욱더 가꾸고 예뻐지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세상엔 예쁜 사람은 널리고 널린 편이어서 그때마다 좌절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와 딸은 누구나 인정하는 오지랖을 부리고 잔소리를 많이 하는 사이다. 우리 엄마도 예외는 아니다. 엄마는 나에게 오직 ‘체중’을 나무라 한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입이 짧고 잘 먹지 않아서, 학창 시절 내내 별명이 빼빼로였을 만큼 날씬했다. 하지만 먹는 걸 자주 거를 만큼 건강은 좋지 못했다. 그러던 내가 우울증에 걸려서 시도 때도 없이 군것질을 시작했다. 살이 찌자 우리 엄마가 나를 힐난했다.
“요즘 왜 이렇게 살이 쪘어?”
오랜만에 보는 친할머니 앞에서도 내가 살쪘다는 걸 강조했는데, 할머니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게 말했다.
“얼굴이 아주 달덩이 같구나.”
당시 내 몸무게는 47kg였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정말 살이 많이 쪘다고 착각했고 수치스러웠다. 심각성을 느끼며 다이어트에 돌입하여 5kg를 뺐다. 40kg의 초반이 되어서야 나 자신에게 만족했던 것인데 그처럼 괴랄한 일이 또 있을까?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도 운동을 했고, 칼로리에 집착하며 식단을 했고, 살이 찔 까 봐 모임엔 빠졌다. 그땐 왜곡된 모습으로 나를 보면서 괴로워했다.
사실 얼굴로 먹고사는 직업도 아닌데 몸무게에 집착하고, 외모를 가꾸는 일은 불필요했다. 물론 날씬하고 예쁜 건 좋지만 그것만 위해 내 영혼과 시간을 바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삼십 대가 되어서야 불편한 진실을 마주했다. 부모님의 개인적 콤플렉스 때문에 생긴 비난을 모두 삼켜버렸고 슬퍼하며 나 자신을 잃어갔다.
결혼하고 신혼생활을 만끽하면서 남편과 나는 살이 각자 10kg씩 쪘다. 실제로 행복하면 살이 찐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남편과 나는 밤마다 행복한 식사를 즐겼고, 입맛이 도는 생활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나를 마주한 가족들은 질타를 시작했다. 살을 빼야겠네, 밥 그만 먹어. 처음엔 나를 비난하는 소리들이 주삿바늘처럼 내 혈관 내부에 들어와서 24시간 나를 혼내는 것 같았다.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간단한 검진을 하고 난 후 객관적으로 나는 살이 찌지 않았음을 알아차렸고, 만일 살이 쪘더라도 문제가 된 건 없었다. 물론 야식을 먹거나 탄산을 좋아하는 작은 습관들은 건강을 위해 고쳐야겠지만, 사랑받기 위해서, 여자력 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다이어트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제는 더 이상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엄마가 본인 몸무게와 살 때문에 힘들어서 그것을 내게 투영한다고 해도 문제가 되진 않았다. 나 스스로 행복하니까.
이젠 아빠가 해주는 ‘예쁘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 일부로 단장하지도 않는다. 나는 나 자체로도 빛이 나고 예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위해 치장을 하는 일은 행복하지만, 남을 위해 꾸미는 젊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나의 삶은 트로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알맹이를 부풀리는 데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또한 부모님의 콤플렉스는 그들의 문제일 뿐 더 이상 나의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이제 살을 빼라는 엄마의 말에도 이렇게 냉정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괜찮아. 상관 없어. 엄마야말로 건강은 어때? 무릎은?”
자연스럽게 포커스가 바뀌면, 나는 그때 엄마의 건강 걱정을 늘어지게 한다. 부모라도 똑같이 하면 힘든 모양이다. 우리 엄마도 잔소리 듣기 싫어서 내 말을 자르거나 다른 주제로 대화를 옮기니까. 쓸데없는 전쟁은 바로 종전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