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크 덮밥
가끔은 특별한 식사를 하고 싶은 날이 있다. 대개 기념일이나 기분이 꿀꿀한 날 그렇다. 좋은 날엔 좋은 에너지를 주는 음식을 먹고 싶어서, 서글픈 날에는 맛 좋은 음식으로 기분을 달래고 싶어서. 그럴 때마다 우리는 스테이크를 먹는다. 지금 그는 신선한 생선을 잡고 썰고 손질하지만, 원래 양식이 전문이었다. 어쩌다가 양식 셰프가 일식 셰프가 된 꼴인데, 가끔 양식이 그리워질 때마다 그 한을 집에 와서 푼다. 고기를 두텁게 조각내어 능력껏 불에 칙칙 굽고, 채소 요리나 감자를 예쁘게 곁들어서 스테이크를 해주는 식이다.
나는 사는 동안 스테이크를 그다지 많이 먹어보지 못한 서민 중 서민이었다. 내가 스테이크라는 용어를 알게 된 일도 제법 웃기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고기를 먹는 일이면 기껏해야 삼겹살이나 돈가스, 햄버거였다. 스테이크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꼬마 마법사 도레미' 애니메이션 때문이었다. 마법소녀 도레미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스테이크였다. 탱탱한 소시지와 윤기 나는 버터를 곁들인 스테이크를 썰어먹는 마법소녀는 행복하게 웃었다. 미래에 스테이크 집 사장님이 되겠다고 다짐하던 레미의 에피소드를 바라보는 소녀팬은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서 침만 삼켰더란다. 지금은 생각날 때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환경이지만, 내가 어릴 당시 제법 비싼 음식이어서 쉽게 보지 못 했다. 스테이크를 먹고 왔다고 자랑하는 애들이 있으면 속으로도 그 처지를 비교하곤 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스테이크는 잘 먹지 못했다. 나는 원래 먹는 것에 돈을 쓰는 타입도 아니었고, 맛집을 순순히 기다리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도 단순히 생각으로만 그치고 금방 잊어버렸다. 친구가 그리 많은 편도 아니고, 지인들을 만나도 소탈한 식사를 할 뿐이었다. 가끔 엄마가 기분 좋은 날 스테이크를 사 오셔서 밥상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레스토랑에 가면 입맛 까다로운 아빠가 스테이크를 한 번씩 시키긴 했지만 내 코앞에 놓은 적은 없었다. 그러니깐 스테이크는 나와 거리가 먼 존재였고, 신혼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야 친해졌다는 말이다. 집들이로 부모님을 모셨던 날에도 스테이크를 대접했다.
까르보나라와 스테이크, 라따뚜이, 크림스프
새롭게 고백하자면 나는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밥도 한 그릇 뚝딱 하기도 힘들어했다. 입이 짧고 위가 작아서 다 먹는 게 힘들었던 것이다. 짭짤한 생라면과 컵라면으로 점철되어있던 이십 대의 혹한 성장기 때문에 나의 입맛은 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엄마의 성의를 봐서 밥을 다 먹는 척하면서 몰래 뱉어내던 날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연애 때마다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 것도 아니어서 식욕을 잃은 적도 많았다. 결국 그와 연애를 하면서 입맛을 되찾았고, 결혼하고 10kg가 찐 이유도 맛있는 나날을 보내서가 아닐까.
스테이크를 넣은 짜파구리와 섞박지
짜파구리를 먹고 싶다고 한 날, 나는 라면을 끓이고 남편은 옆에서 스테이크를 구웠다. 짜장 라면과 통통한 라면을 맛있게 섞는 방법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으리라. 잘 구운 스테이크를 예쁘게 잘라서 탑을 쌓듯이 얹으면 고급 라면으로 탈바꿈되고 그렇게나 꿀맛이다. 한 그릇으로는 부족해서 리필을 요청하게 된다. 이때 김치나 깍두기가 빠지면 섭섭하다. 개인적으로 짜파구리에는 섞박지를 먹는 편이다. 맛도 좋지만, 모양이 비슷해서 식사하는 동안 시각적으로 재밌기 때문이다.
스테이크 덮밥
든든히 먹고 싶다면 스테이크 덮밥으로 먹으면 된다. 나는 레어를 좋아하고 남편은 미디엄 레어를 좋아한다. 분란이 없도록 적절한 균형을 맞추어서 고기를 굽는다. 간장과 식초, 설탕에 절인 양파를 데코하고 구운 마늘도 넣는다. 그리고 스테이크를 먹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매시 포테이토를 예쁜 모양으로 얹으면 군침이 절로 나온다. 외식이 땡기지만, 외식을 못한 날에는 유명한 레스토랑 메뉴를 따라해서 버터치즈 고구마를 함께 한다. 그러면 스테이크를 먹은 날에는 기운이 마구 넘쳐서 강아지와 산책도 세 번은 거뜬히 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뽀빠이에겐 시금치가 있듯이 나에겐 스테이크가 있는 셈이다.
토마토 스파게티와 버터치즈 고구마를 곁들인 스테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