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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메리 Nov 01. 2023

1. 집주인이 잠적했다

전세사기 피해 기록 시리즈입니다


올해가 무사히 저물어가고 해가 짧아진 11월 현재.

나와 남편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되었다.


오랜만에 올리는 브런치 글이 나쁜 내용이라 안타깝지만,

전세사기 피해자로 겪었던 일과 노력했던 일들을 차근차근 기록하려고 한다


오늘도 전세피해지원센터를 다녀오고, 피해자 모임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초겨울의 길어진 밤만큼 다크서클이 내려온 신혼부부의 얼굴 낯이 황량하다.

불행하고도 참혹한 이 일은 아랫집에 의문의 여자가 이사를 오면서 시작되었다.


11개월 전, 12월.

내가 코로나에 걸리기 일주일 전 날 아랫집에 새로운 사람들이 이사 왔다.

화장이 짙은 의문의 여자와 그 여자의 딸로 보이는 학생이었다.


그때 당시에 나는 코로나에 걸렸었다.

간만의 약속에 서울 나들이를 했을 뿐인데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안방에서 격리 생활을 하는 동안 남편은 거실에서 묵었고 우리는 짧은 이별을 했다.

네모난 방 안에만 있으려니 답답하고 속이 상했지만, 일상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아침 9시만 되면 아래층에서 이상한 소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울면서 소리 지르는 소리 비슷한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부부싸움을 하는 모양이라고 여겼다.

자세히 들어보니 울면서 하는 기도였는데 평범한 기도는 아니라서 사이비로 추측했다.

아랫집에 찾아가서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그 여자는 문을 열지도 않고

그만 돌아가주세요라고 단호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사이비인 게 겁이 나서 나도 찾아가지 않았고 한달 반동안 층간소음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한참 후에 아랫집 여자가 찾아왔다. '갑자기 대화할 마음이 들었나?' 싶었는데

대뜸 우리 집 안으로 불쑥 들어오더니 핸드폰으로 사진을 내밀면서 누수가 있다고 말했다.

위층에서 자꾸 물이 떨어져서 올라와봤는데 아무래도 화장실 문제인 것 같네요라고.

사진은 젖은 벽지였고, 우리 집 화장실 아래 공간이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했지만, 건물이 오래돼서 그럴 순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랫집 여자의 방식이 좀 난데없고 뻔뻔스러워서 그 여자와 연락이 껄끄러웠다.


누수 공사를 제대로 해 달라고, 바로 아래층이 옷방이라서 옷 입기가 힘들다고,

명품 백도 보관하기 힘들다고 호소했다. 남편과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힘들었던 층간소음을 언급했다. 기도 소리가 너무 커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니

소리를 줄여달라고 부탁했다. 아랫집 여자는 기도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다가 조심하겠다고 대답했다.


오고 가는 것이 있어야 거래가 성립된다는 사실에 씁쓸했지만, 아랫집과의 갈등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누수 문제 때문에 집주인과 연락을 했는데 자꾸 전화를 피하는 것이다.

아랫집에 피해가 생겨서 누수 검사를 해야는데 할까요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불안감이 안개처럼 스멀스멀 올라왔다.


가까스로 연락이 되었을 때 집주인의 대답은 이러했다.

'현재 급전이 없고, 이 달 말에 대금이 들어오니까 알아서 누수검사 하고 추후에 비용을 요구하라'

남편과 내가 전문가를 불러서 검사를 해보니 건물 노후가 심해서 크게 공사를 해야 할 것이라고

비용이 이 백 정도가 든다고 했다. 생각보다 큰 규모의 공사였다.


그러나 그날 비용으로 나간 20만 원은 돌아오지 않았다. 집주인은 지키지 못하는 약속만 했다.

누수검사를 하는 사람과 우리 집에 함께 와서 지켜본다고 했는데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했다.

취소된 약속만 세 번째. 집주인이 심상치 않은 사람임을 느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등기부등본을 떼보니 압류가 걸려 있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으나 집주인은 받지 않았다. 집주인은 그렇게 잠적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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