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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메리 Nov 02. 2023

2. 법률사무소에 가다

전세사기 피해 기록 시리즈입니다

집주인은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았고, 아랫집은 누수피해를 호소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한 달이 지나게 되었다.

이대로 당할 순 없다는 마음에 핸드폰을 빌려서 집주인이 모르는 새로운 번호로 전화를 해보았다.

우리 부부의 전화번호를 저장해 놨던 집주인은 새 번호를 알 리가 없으니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돈이 없네. 이 사람들아. 조금만 기다려 주겠나.


결론적으론 통화만 이어졌을 뿐 내용은 진척이 없었다.

한 계절이 지나갈 만큼 많은 시간이 흘러서 우리는 지쳤고 누수 공사 간청을 포기했다.

대신에 청약에 당첨된 아파트에 이사를 갈 것이니 압류를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세금 미납 때문에 압류에 걸린 것이었는데, 액수를 정확히 모르는 게 불안한 점이었다.


또한 집주인은 전화를 할 때마다 어디서 전화하셨어요? 어느 시라고요?라고 습관적으로 물었다.

전국구로 집을 갖고 있는 빌라왕의 이미지가 선명해지면서 뒷골이 땅겼다.


처음엔 이 달 말이라더니 봄이 다 지나면 대금이 나오니깐 압류를 풀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몇 번을 거쳐서 연락을 했을 때 모든 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다.

이제는 희망이 없다고 여겨졌는지,  압류도 풀 수 없고 보증금도 돌려줄 수가 없다고 대놓고 말했다. 

뻔뻔한 기색이었다. 


이사 후 진작 허그 가입을 신청했지만, 충족요건에 들어가지 못했기에 보증보험 없이 살고 있었다. 

탈출구가 없었다. 불안감에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 집주인 뽑기를 잘 못해서 이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와중에 아래 집과 우리 집은 노후된 화장실의 누수에 피폐해지고 말라갔다. 

아랫집이 소송이라도 건다면 우리의 잘못을 피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진 돈으로 누수공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꽃바람이 흐드러진 5월이 되었다. 

낭만적인 풍경으로 사람들이 신이 날 즈음에 우리는 결연한 표정으로 법률사무소 문턱을 넘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심판받자는 결론밖에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담을 먼저 진행했다. 변호사님은 우리가 최악의 상황은 아니지만, 

보통 이런 식으로 전세사기꾼이 되어간다고 집주인의 긴 꼬리를 물었다.

우리를 소개해주었던 부동산에 전화를 해보았으나 전화를 아무도 받지 않았다.

물어물어 알게 된 사실은 이미 문을 닫은 부동산이었다. 공인중개사도 재회할 수 없었다. 

이쯤 되니 그들이 한패인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면서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없는 사실에 절망했다.


소송을 앞두고 우리는 내용증명을 두세 번 보냈다. 집주인은 역시나 내용증명도 깡그리 무시했다. 

내용증명을 세 번째 보내고 나서야 우리는 전세사기 소송을 시작했다. 

우리가 보증금 반환 소송을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누수 문제가 중점이었다. 

아랫집 누수도 문제였지만, 우리도 비가 오면 베란다와 계단이 전부 젖을 만큼 피해를 크게 보고 있었다.

또한 집주인이 전화로 막말을 하고, 거짓말을 했던 녹취본들이 있어서 증거가 충분했다.


소송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피해를 받는 입장인데도 스스로를 갉아먹었다는 점이다.

이 집에 이사를 오게 된 건 내 탓이 컸다. 소개받은 집 중에 이 집이 그나마 저렴했다. 

세탁기와 에어컨 등 기본 옵션도 많았다. 역세권이라서 살기도 편했다. 

그런데 이사와서 좋은 일이 없고 악독한 사람과 얽혀버렸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남편과 원래 살던 오피스텔이 있었다. 신혼집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었던 나의 욕구가 컸다.

남편은 월세도 알아보았었다. 그런데 나는 월세로 신혼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출을 끼고 이 집에 살게 되었는데 이 사달이 나 버린 것이다!

내가 틀에 박힌 고정관념에 살았던 사람이 아닌가, 반성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혼자 내면의 시간을 갖는다고, 자책을 한다고 끝날 일은 아니기에 해결점을 꼭 찾고 싶었다.

결국 소송으로 귀결될 문제였다. 깐깐한 판사님만 아니면 웬만해서 승소할 일이었기에 빌고 빌었다.


'제발 현명한 판사님으로 배정받을 수 있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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