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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메리 Nov 07. 2023

3. 집주인의 실체는 빌라왕

전세사기 피해기록 시리즈입니다


소송은 4개월이란 짧은 기간 안에 끝이 났다.

다행히도 마음씨 좋은 판사님이 사건을 맡아서 결국 우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승소판결이 나던 날 우리는 축배를 들었다.

웬만해서 패소하긴 어렵다고 여겨졌고, 예상했던 바라서

우리는 이때까지만 해도 순순히 이 일이 마무리된다고 생각했다.


운명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장애물을 만드는 막장 드라마의 미친 작가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에피소드들이 그때부터 우리 앞으로 우후죽순 나타났다.

변호사님의 연락으론 판결문 송달이 두 번이나 실패했다고 한다.

몇 개월 사이에 집주인이 이사를 가버려서 집주소가 바뀌어있었다. 


'땡전 한 푼도 없다는 사람이 이사는 어떻게 가나?'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다. 

원래는 2주 정도 집주인이 항소하는지 지켜봐야 했는데,

판결 송달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 한 달이라는 시간이 더 주어졌다.


집주인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았다. 여전히 지 멋대로이며 불친절했다.

우리 입장에선 승소까지 한 마당에 연락에 매달릴 필요도 없어서 

차분하게 다음 플랜(재산조회)을 짜놓을 수밖에 없었다. 


1억 3천5백만 원. 피 같은 돈을 돌려주지 않아서 이 모든 일이 시작된 것이다.

보증보험도 들지 않았고, 대출을 껴서 전세를 들었고, 내년엔 청약 아파트까지 이사를 가야 하는.

수습 불가, 고통의 고통의 고통의 연속.

마음이 조급해질 때마다 예민해졌고 마음이 복잡했지만, 감정을 내려놓으려고 애썼다.


사실 이 일이 벌어지기 전에 우리는 몇 개월동안 이 곳에서 터를 잡으려고 꽤나 노력했다. 

신혼 집은 남편과 나에게 어떤 교집합도 없는 새로운 지역에 있었다.

각종 모임에 가입해서 친구들을 사귀려고 외부 활동을 해왔었는데

소송비용과 변호사비용으로 돈이 꽤 나가니까 모임 생활도 부담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전세사기 피해 사실을 말했는데 그때부터 눈빛이 변하는 걸 느꼈다.

마치 동냥하는 거지를 대하듯이 우리에게도 쓸모없는 가방과 옷을 줄 때는 비참해질 정도였다. 

우리 피해 사실이 술안주로 씹히거나 하는 등 결국 후회하는 일들만 생겼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일상이 지속되는 듯했고, 견딜만 했으나 어느 날 새벽에 이 모든 것도 깨져버렸다.

촉이 좋은 남편이 그날따라 이상한 느낌에 집주인의 이름을 검색했더란다. 

(임차인은 모 회사의 대표로 이미지 메이킹 기사들이 있다, 올해에 빛나는 기업인이라던가. 개뿔.)

그런데 집주인의 기사에 악플들이 달려있었는데 날카로운 댓글 하나가 눈에 띄었더란다. 

'이 사람 전세사기꾼인데 아직도 이런 기사가 있네요. 사기꾼!'


남편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오픈카톡에 임차인 이름을 검색했고 곧바로 채팅창을 발견했다.

개설 된 지 얼마 안 됐고, 몇 십 명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전세피해자 모임이었다.

그곳에선 보증보험을 가입한 사람도 있고, 우리처럼 가입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계약이 끝난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소송까지 간 이들은 우리말 곤 아예 없었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우려하던 상황들이 눈앞에 사실로 펼쳐지게 되었다.


허그에서도 악성임대인에 등록되어 있을 만큼 악랄한 사람이며

서울과 인천, 부천을 합쳐서 이삼백 채 정도의 집을 갖고 있는 빌라왕이라는 것이었다.

눈앞이 아득해지는 소식에 우리는 또 한 번 무너지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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