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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철 Oct 19. 2018

기다림도 즐거움이라면, 합정엔 우동 카덴과 카페 폴리

작은 놀이터엔 기다림의 행복이 있었네

(스크롤을 내리시면 신변잡기를 지나 우동 카덴과 카페 폴리 공간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옵니다 ^^;;)


망원으로 향하는 합정, 그 입구에는 높디 높은 도시(polis)가 있으리니..


메세나폴리스. 단순 의역을 하면 ’예술한’ 도시국가랄까

학교를 다니며 이 지역을 10년째 오가고 있는 나에게 원래 합정은 참 심심한 동네였다. 합정에서 상수로 가는 길도 참 심심했다. 그래도 상수로 가는 길이 볼 곳들이 조금 있었다면, 길건너 망원 방향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어쿠스틱 기타를 참 잘 고치는 페이스 뮤직이 있다는 정도.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무언가 뚝딱 뚝딱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치 높은 첨탑 같았다. 메세나 폴리스였다.

 

망원으로 향하는 합정의 입구(?)에는 메세나 폴리스가 있다. 폴리스 'polis'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의미한다. 그만큼이나 메세나 폴리스는 작은 도시국가처럼 안에서 모든 것이 다 가능하게 되어있다. 마치 '자급자족' 세계랄까. 지하에는 큰 쇼핑몰도 있고, 그 위로는 다른 세계 같은 럭셔리한 집들이 있다. 아무튼 대단히 크고 위세있다.

저것이 시타델

처음 나는 이 폴리스를 보고 하프라이프라는 게임의 나오는 시타델을 생각했다.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인 하프라이프에서 시타델은 '지배'의 중심지다. 외계인인 콤바인은 식민화된 지구에 일종의 총독부를 만들어뒀는데, 그게 시타델이다. 당연하게도 시타델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폴리스도 그렇다고 한다. (청소년 시절 게임은 이렇게 해롭다. 게임을 금지하자!) 그만큼 폴리스의 존재가 망원가는 길목에 생긴 것이 내게는 대단히 낯설었다. 망원 가는 길을 지나면 과외학생 집이 있었고, 그 길은 큰 '빌딩'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한편 폴리스 뒷편에는 또다른 폴리스가 있다. 드라마 <라이브>의 모티브가 되었던 홍익지구대다. 의경 시절(불과 작년이다.) 마포 관내로 교통 지원을 나오면 우리는 이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근무를 할 때는 상수로 가는 합정과 망원으로 가는 합정 사이 대로에 서서 오가는 차와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때도 느낀 것이지만, 이 동네는 참 차분하다.

구글지도의 뷰. 전국에서 가장 바쁜 광역 지구대다. 낮에는 비교적 나아보였다.


크고 높은 폴리스와 정말 폴리스가 있는 이 차분한 동네 뒤편에는, 차분함의 틈새에 분주한 '맛집'들이 있다. 이미 너무 유명한 집들이라 더이상 리뷰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차분한 동네를 천천히 걷는, 웨이팅이 긴 이곳에서 즐거운 기다림을 보내는 방법들을 소개하려한다.


한글날인 이 날은 연남동 도서 카페 1984에서 차분한 합정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 친구가 하!필! 라멘도 아닌 우동이 땡긴다고 했기 때문. 그리하여 인근 면집 중 가장 유명한 우동 카덴을 향해 우리는 산책하듯 향했다. 연남에서 합정을 향하는 길에는 특유의 힙(?)한 감성이 있다. 이를 테면 기사식당틱한 백반집의 입간판이나 김치 배급 창고 간판이...

이렇다던가. 안은 그냥 완연한 백반집이다. 아저씨 두 분이 식사하고 있었다. 김치센터는 카페인가 싶어 봤는데 정말 김치를 배급하는 곳이다. 이 동네는 트루힙이다..실용힙이랄까..김치센터를 지나 조금만 더 걸으면 우리의 시타델, 메세나 폴리스가 성큼 가까워진다. 우동집 카덴을 향해 가보자.


합정의 맛집 앞에서는 줄을 서야한다. 물론 즐겁게 기다리는 방법이 있다

대충 이런 정서들이다. 폴리스와는 또 다른 시크릿가든

차분한 이 동네로 오면 고급스러운 작은 주택과 빌라들이 있다. 그리고 그 작은 틈새마다 크지않은 맛집들이 있다. 돼지 국밥이 아닌 돼지 곰탕집이라는 '옥동식'이 그렇다. 곰탕은 지극히 서울/경기의 음식이다. 맑은 국물 기반. 하루 80그릇만 판다는 이야기가 있다. 돼지로 곰탕을? 어떤 맛일까 궁금하다. 언젠가 가볼 생각.

한글날이기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옥동식을 지나 우리의 목적지 우동카덴을 향해 출발했다. 왠지 스산한 오늘은 따뜻한 국물의 면을 먹어야만한다. 그러나 라멘이 아닌 것, 그러면 우동. 우동 카덴 서교점에 가야만 한다. 그런데...

이 곳에는 더 긴 줄이 있다. 아..이 집 이렇게 기다릴 정도의 가치가 있는가? 오 안돼..디자이너 친구에게 물었다. "기다릴까요? 이정도로 기다리면 정말 맛있는게 아닐까"

 "글쎄요...굳이..?"

" 그렇지만 우리는 우동 카덴을 먹으러 1km나 걸었잖아요"

 "그럼 기다려봐요"

이때 대기 리스트 판을 발견. 즉 우리는 이곳에 계속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 나는 눈치게임을 잘한다.

대기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을 적자. 다만 따로 알 방법은 없다.

우동 카덴은 테이블 수가 많지 않다. 게다가 나오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기 때문에 2명이 식사를 할 때 평균 25분 정도 소요된다. 따라서 저 위에 왼쪽 리스트 한 줄이 없어지는데는 대강 빠르면 40분 늦으면 1시간을 예상하면 된다. 우리의 예상 대기 시간은 약 40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굳이 서서 기다릴 필요는 없겠지.


이름을 적고 바로 뒤편 서교 어린이 공원으로 향했다. 지도상 돌아가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카덴의 뒷편에는 차분한 주택가 사이로 곳곳에 식당과 카페들이 숨어있다.

공원으로 향하는 작은 쪽문이 있다. 벤치에 앉아서 놀이터에서 놀다가 가끔씩 대기 순서를 확인하러 가면된다. 게다가 이 공원 바로 옆에는 맛있는 마카롱집 <와줘서 고마워>가 있다. 나는 이 공원을 좋아한다. 공원이 대단히 깨끗하고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인근 주민들이 정말 찾기 때문일 것이다. 전에는 츄리닝을 입고 푸시업하는 외국인 아저씨를 본 적이 있다. 어린이들이 정말 뛰어놀기도 한다. 왜 이렇게 공원이 깨끗할까?

이 공원에는 어르신들이 쉬는 작은 경로당이 함께 있다. 어르신들은 틈틈이 이곳이 깨끗하게 청소하고 계셨다. 쉬는 날에도 공원에는 쓰레기가 하나도 없었다. 화장실도 내가 본 어떤 공원 화장실보다도 깨끗했다. 마침 날이 좋아 벤치와 작은 정자에서 눕듯이 앉아서 바람과 여유를 즐겼다. 뛰노는 어린이와 가족들을 구경하기도 하면서.

이만하면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즐거움이 아닐까. 마카롱과 커피를 마시면서 공원에서 쉰다면 말이다. 그러다 기다리기 싫어지면 기다리지 않으면 된다. 이곳에는 변심의 자유가 있다.

왜냐하면 공원 옆 이 건물에는 라멘집이 있는데 이 집도 상당히 깔끔하고 맛있다. 솔직히 카덴에 미치지는 못한다. 그러나 기다림이 길다면 변심도 할만한 일. 그렇게 기다리다 드디어 카덴에 왔다.


1. 기다릴만한 맛이 있는 우동 카덴 서교점

가격 - 메뉴의 평균 가격은 1만원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튀김류도 비슷하다.

 - 기다릴만한 가치가, 그만한 가격의 가치가 있다. 진한 국물과 탱탱한 면이 주거니 받거니.

서비스 - 직원들은 매우 바쁘다. 그럼에도 불친절하지 않다. 그러나 여기는 호텔이 아니다. 그들은 역할을 다할 뿐.

찾아가는 길 - 접근성을 고려하면 더 맛있는 집이 있어도 이 곳을 선택할 만하다.

공간편의성 - 홀이 넓지는 않다. 테이블도 크지는 않다. 인기가 많아 웨이팅도 있다. 그러나 상쇄할 충분한 맛과 분위기가 있다.

분위기 - 일본풍 인테리어다. 주문은 많고, 대기도 길기에 이 곳은 분주하다. '맛'을 위해 가는 곳이지 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곳은 아니다.


기다림은 기대를 만든다. 원래 나는 웨이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맛으로 느끼는 행복보다 보내는 시간의 가치를 더 크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무언가를 먹기위해 50분을 기다린다는 것은 그만한 '기대'를 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고심 끝에 한우스지 우동과 명란 앙카케타마고 토지 우동(이하 명란우동)이라는 이름의 위용이 엄청난 친구들과 에비마요를 주문했다. 3회까지 면추가가 가능하다. 그런데 국물까지 다 먹으면 성인남성이 먹어도 충분히 배부르다. 굳이 추가해야할 필요는 못느꼈다. 웨이팅이 길어지는 이유 같기도 하다. 다른 테이블을 보니 오니기리와 나마하루마끼를 많이들 주문했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면, 작은 종지에 밥과 소고기를 담아서 준다. 그리고 약 10~15분여 기다리면..우리의 스지 우동과 명란우동이 나온다. 안에서 먹으려다보니 웨이팅이 길어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서두를 이유가 있을까? 이곳도 애써 테이블 회전을 높일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맛의 격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일까


이것이 한우 스지 우동이다.

한우 스지 우동은 대단히 깊고 진한 국물맛아 난다. 어쩌면 국물이 다했다. 면은 풍미를 더할 뿐이다. 스지는 일본어로 소 사태의 힘줄을 의미한다고 한다. 단단한 콜라겐 덩어리 느낌이랄까. 무릎 연골인 도가니와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이곳의 스지우동은 스테미너 보양식으로 정말 최고다. 1만 3천원이 아깝지 않다.


국물이 꿈엔들 잊힐리야..물론 면의 맛이 모자라다는 것이 아니다. 우동의 굵은 면은 잘못 삶으면 씹다가 덜 익은 식감이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다. 비린 밀가루 맛이 난달까. 반면 너무 삶으면 흐물해져버려서 탱탱함을 잃는다. 이 곳의 면은 딱. 충분하다.


단무지는 오도독 씹는 소리가 들린다. 좋을만큼 단단하고 신선하다. 에비마요는 맛있지만 아주 인상적이지는 않다. 다만 튀김 밸런스가 아쉬운 수준은 아니다.

'명란 우동'은 국물의 점성이 탕수육 소스정도 된다. 국물이 깊고 담백하다면, 명란은 그 뒷맛이 알싸하다. 그래서 같이 먹으면 균형감이 참 좋다.


나는 미식가가 아니다. 플레이트 로드도 미식을 소개하는 기획은 아니다. 그런데 오늘 우동 카덴은 대중적인 가격의 대중적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우동 중 '가장 맛있는' 편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미식의 대가인 형님께 위 사진을 보냈다. 그는 그릇을 보더니 '카덴이군요'라 말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접근성을 고려하면 괜찮죠.' 아..더한 맛이 있다는 얘기구나. 더 미식미식한 우동을 찾는 모험이 해보고 싶어졌다.


결론적으로 우동 카덴은 50분을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었다.


2. 곳곳에 붙은 캘리그라피와 짜맞추지 않은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카페 폴리(pauly)


가격 - 일반적인 카페의 가격이다. 4500원에서 6000원 사이

 - 커피는 아주 탁월하지도 절대 모자라지도 않다.

서비스 - 우리는 이들을 카운터에서만 만날 수 있다. 그외에는 여타 카페가 그렇듯 직접 마주할 일은 잘 없다.

찾아가는 길 - 접근성을 고려하면 더 맛있는 집이 있어도 이 곳을 선택할 만하다.

공간편의성 - 독립되어 있다. 통유리로 된 건물을 가진 카페다. 생각보다는 넓다. 모임이 가능한 홀도 있고, 특히 탁트인 2층의 존재가 참 좋다.

분위기 - 이 건물을 그대로 바다 앞으로 옮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관성을 가지지 않은 정물들이 주는 자유로움, 곳곳에 붙은 캘리그라피가 주는 따스함이 좋다.


'호주식 커피'를 표방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나는 커피가 주는 세세한 차이를 알정도로 미식 해상도가 높지는 않기 때문에 그 차이를 잘은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이 공간이 주는 '해방감'과 사람냄새가 나는 느낌이 정말이지 좋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 통유리로 된 독립 건물이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그리고 그 주변 건물들보다 많이 작아서 귀엽다. 1층에는 카운터와 로스터기, 긴 테이블이 들어가있는 7평짜리  방이 있다. 이곳에서 작은 모임들이 자주 열린다고 한다. 통유리가 개방감을 주어서 그다지 좁아보이지 않는다.


카페 폴리가 미식공간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나는 '맛'이 일정이상 넘어가면 분위기와 편의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공간의 접근성도 중요하겠다. 플레이트 로드는 그런 기획이니까. 그런 기준에서 카페 폴리는 최적이다. 1층은 여러 기능을 하는 것들이 가득차있어서 그다지 넓지는 않다. 그래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정숙한 분위기보다는 '활기찬' 공간을 원하는 이 곳철학이 돋보이는 문구가 있다. 2층이 잘 보이는 계단 난간 옆에 자리를 잡았다. 2층이 주는 개방감은 해방감에 가깝다. 의자와 테이블, 정물들은 좋을만큼 제멋대로다. 정물도 제멋대로라고 하지만 그것이 불편함을 보이는 정도가 아니다. 각각의 '개성'과 그로 비롯된 '자유'가 느껴진다.

나는 외식공간에 마감이 되지 않은 노출 콘크리트가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카페 폴리는 적어도 꼼꼼히 '마감'을 하려는 성의가 있다. 그리고 의도를 가지고 고른 각기 다른 조명과 저마다 다른 정물들. 탁트인 공간.



이것들이 일관된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것도 좋다. 다만 나는 짜맞춘 럭셔리보다는, 가끔은 제멋대로인 열린 '개성'이 좋다. 나는 자유가 더 좋다. 그렇게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커피를 담은 이 나무잔은 이케아나 다이소에서도 팔법하다. 깎아만든 나무가 아니라 나무조각을 대충 붙여만든 공장제 잔이 아닐까. 아무렴 어때 나는 그래도 좋은 걸.


앞으로도 나는 공고한 첨탑 안보다는 골목을 누빌 것이다.

한글날의 차분한 합정에서

나는 기다림의 즐거움과, 해방감을 느끼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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