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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철 Nov 03. 2018

샤로수길만의 밤 분위기, 계란요리는 에그썸 맥주는 링고

O리단길 명명 현상, 그 유행의 시작은 샤로수길에서부터

샤로수길, O리단길 O로수길 유행의 시작지


이태원이 핫플레이스로 뜨고 어느새 그 옆 경리단길이 재발견되기 시작했다. 이태원이 '메인 스트릿'이라면, 경리길은 그 옆에 딸린 약간은 비주류인 더 '힙한' 거리랄까. 이제는 경리단길도 제법 주류가 되어 힙함은 해방촌으로 옮겨가고 있다. 가로수길은 어떠한가. 2010년 21살 내가 처음 일한 회사는 가로수길에 있었다.  나는 밤을 새고는 슬리퍼와 반바지를 입고 그 길을 천천히 걷고는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로수길은 패피들의 거리였다. 다들 참 도도했다.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고개를 살짝 치켜든 채 표정으로 말한다. '나야~~'(나즈막히)


그때의 가로수길은 번화한 편이긴 했지만 엄청 유명한 브랜드의 매장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나름대로 저마다의 개성이 있는, 꽤나 럭셔리한 가게들이 있었다. 가로수길 아래로는 세로수길이 있다. 회식하기에 좋은 가게들이 많았다. 어느새 가로수길은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비싼 거리가 됐다. 그것은 한국에 유일한 애플스토어의 존재가 증명한다.

애플이 "20년치 임대료 600억을 일시불로 지불했다.."는 소문은 있으나 확인불가 하지요.

이렇게 상권이 뜨고 임대료가 오르게 되면 기존 가게들이 그 상권을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다한다. 상권을 형성한 가게 주인들이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서게 되고, 다시 이러한 과정이 반복된다. 샤로수길이 '젠트리피케이션'의 결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무언가 힙한 카페와 음식점이 생기면 거리에 '무슨'리단길, '어떤'로수길로 명명하는 유행의 시작지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근처 학교 학생들 말에 따르면 2013~4년 정도가 그 시기인듯 하다.


부산에는 서면 옆 전포에 '전리단길'이 있다. 송파에는 '송리단'길이 있다. 경주 황남동엔 '황리단'길이 있다. 망원동엔 '망리단'길 있다. 개인적으로 일산에 O리단 길이 생기길 고대하고 있다.

게임이 이렇게 해롭습니다..

사실 O로수길은 아직까지는 샤로수길이 유일하지 않은가 싶다. 주목하는 것은 그 현상의 유사성이다. A가 아닌 곳에 A를 연상시키는 이름이 붙는 현상. '세련됨' 또는 '힙함'에 대한 지역적 차원의 명명. 아무튼 나는 겨울이 다가오는 지난주, 샤로수길에 밤에 들어섰다. 의경 학교 교육생 시절 조교였던 L군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16년 11월 아직은 겨울이 오기 전, 기동본부장(경무관 계급으로 육군의 스타에 해당)이 의경학교에 온다는 소식에 교육생인 나는 열심히 낙엽을 쓸었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낙엽을 쓸고 있는데, 당시 조교였던 L군이 그 노래가 무엇이냐 물어보는 것이었다. 아마도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였던 것 같다. 그것을 인연으로 우리는 이따금씩 세상 돌아가는 소식들을 나누었다. 그러다 전역 후에도 연락이 닿아 편한 때 보기로 하였다. 그의 학교 앞인 샤로수길에서 우리는 만나기로 했다. 한때 조교와 교육생(훈련병)이었던 우리였다.


이것이 샤! 로수길

작은 가게들이 이어지는 샤로수길이다. 가로수길, 경리단길과는 다른 나름의 그루브가 있다. 이번 <플레이트 로드>는 필자의 조교였던 L군의 추천에 따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훌륭한 조교였다.


1. 메뉴는 정말 맛있는 오믈렛 단 3개. 에그썸

짤막한 평 : 메뉴 선택지를 줄여서 고민할 필요가 없는 오믈렛 가게. 다소 덕진 맛이지만, 날이 추워질 수록 생각날 것만 같은 맛. 좁은 테이블과 작은 화장실은 좀 아쉬워!

가격 - 메뉴는 단 3개 가격은 8.7, 10.5, 9.5 천원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 맛있다. 5점만점 척도라면 3.5점을 주고 싶다. 약간 느끼할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맛을 좋아한다. 선택지를 최소화한 오믈렛들은 각각 다른 개성을 가진 맛이 있다.

서비스 - 홀 직원은 단 한 명, 협소한 공간이지만 주문을 받고 해결하는데 무리가 없다.

찾아가는 길 - 샤로수길의 거의 끝자락에 있다. 평지이며 그냥 쭉 따라가면 된다. 어려움이 없다.

공간편의성 - 공간은 작다. 테이블도 많이 없다. 화장실도 공용이며 협소하다. 그러나 깔끔하다. 계란 요리의 '맛'을 즐기러 가는 곳이다.

분위기 - 화이트 풍에 오픈키친이다. 좁지만 분주함과 어떤 생동감이 있다. 정말 맛있게 먹고 다음 장소로 가자


우리는 마그마 오믈렛, 화이트마그마 오믈렛을 주문했다. 아무래도 상당히 '덕진' 맛이 예상되기에 콜라를 함께 주문하기로 했다.

한때 조교였던 그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이것이 화이트 마그마 오믈렛. 볶음밥에 오믈렛과 크림소스를 얹었다. 예상되는 덕진 맛을 '어느정도' 잡으려고 마늘을 사용한 것 같다. 먹어보면 약간은 '꾸덕꾸덕'하다는 느낌이 다소 있는데, 이 요리는 그게 의도가 아닐까 싶다. 오믈렛도 사르르 녹는 식감이다. '오무라이스' 정도의 딴딴한 계란 질감은 아니다. 아무래도 요즘같이 추워지기 시작한 때에는 이런 느낌이 더 좋다. 따뜻하게 감싸주는 느낌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고 섬세한 맛의 나눠짐을 기대하는 이들은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기대한 덕짐이며, 기대한 식감이다. 대학생들의 보양식(?)으로 딱이다.

이 피클을 같이 먹어보자. 너무 많이 먹으면 피클맛만 남을 것 같다. 그만큼 맛이 진하다. 극단 대 극단으로 '균형'을 이루는 전략인가(?) 콜라와 같이 먹어도 좋다. 요즘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삼삼한 맛'에 대해 미식적으로 높게 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음식을 먹을 수도, 먹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섬세하지 않아도 '맛있다' 기운 없는 날 큰 생각없이 먹고 일어날 수 있는 복잡하지 않은 맛이 좋은 날이 있다. 이 날은 그런 날이었다.(샤대 친구가 여자친구와 헤어진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고 한다...)

마그마 오믈렛은 화이트 마그마 오블렛보다는 훨씬 덜 '꾸덕하다'. 꾸덕함은 무얼까. 굳이 말하면 녹인 치즈에 아무 것도 안탄 맛과 그런 질감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레비소스와 마늘 후레이크는 '꾸덕함'을 잘 잡아준다.


에그썸은 오믈렛만 3종류가 있다. 음료는 2종류 뿐이다. 생각이 많은 날, 그 생각이 왠지 고민이기만 한 것 같은날. 큰 고민없이 가기에 좋은 식당이다. 우리는 가끔 너무 많은 선택 속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식사를 마치니 어느덧 저녁 7시 반. 문득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링고를 향했다.



 2. 맥주맛의 다양함과 깊이가 돋보임. 친절한 설명은 덤. 샤로수길 맥주는 '링고'

짤막한 평 : 맥주맛의 다양함과 깊이에서는 어지간한 맥주 전문점 보다 나음. 인테리어가 감각적. 음악 선곡이 좋음. 자칫 너무 많은 선택지에서 헤메일 수 있지만, 맥주에 상당한 지식이 있는 종업원이 친절히 설명해줌.

가격 - 한잔에 1만원 이내부터 7만원까지 다양한 가격 라인업이 존재.

 - 5점이라면 4점. 흔히 마시는 '세계 맥주'부터 트라피스트까지 여러 라인업이 있음. '안주'라인은 별로 없음. 이 곳은 '마시는 곳'임.

서비스 - 3점 만점이라면 2.5점. 자칫 너무 많은 선택지에서 헤맬 수 있는 고객에게 친절히 맥주의 맛과 마시는 법을 친절히 설명해줌.

찾아가는 길 - 샤로수길로부터 약간 옆 골목으로 나와야함. 역시 모두 평지라 지도앱을 보고 찾아가기에 어렵지 않음.

공간편의성 -  1층 외부로 나가야하는 화장실은 다소 아쉽지만, 테이블은 널찍하고 공간은 쾌적.

분위기 - 2층과 지하로 나뉘어져 있음. 2층이 탭위주의 '펍'느낌이라면, 지하는 정말 수도원 지하의 맥주 성지같은 느낌임. 고즈넉한 느낌을 좋아한다면 지하로 가야만 한다. 이태원 유명 탭하우스보다 낫다.


맥주 전문전인 링고는 '이게 여기 왜 있지?' 싶은 곳에 있다. 2층의 링고가 생맥주를 마실 수 있는 탭하우스의 느낌이라면, 건물을 돌아서 지하에 있는 링고는 고풍스러운 지하 아지트 같다.

어두운 지하 입구에 간판을 등불 삼아 내려가다보면...

비밀결사 레지스탕스의 지하공간에 온듯한 착각이 든다. 녹색문 뒤에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맥주의 천국이 있다. 우리는 평일 다소 이른 시간에 왔기에 쾌적하게 이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맥주의 맛은 확인하기 전이다. 이미 우리는 꽤나 만족했다. 분위기는 고풍스럽다. 매장의 정리 상태와 인테리어가 탁월하다. 음악 선곡도 '유행에 쫓기지'않고 자신만의 느낌대로 간다. 링고의 음악이 특히 좋았던 이유는 아마도...

계산대 한켠에 선곡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편의상 직접 LP를 틀지는 않지만, LP는 모두 주인장의 컬렉션이라고 한다. 적어도 '아무 음악'이나 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사당에 '좋은 인테리어'와 '그럭저럭 괜찮은 맥주 맛'이 좋은 수제 맥주집이 있다. 그곳은 음악 소리가 지나치게 컸고, '2000년대 발라드'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 음악들을 좋아한다. 다만 그 공간과 분위기에는 맞지 않았을 뿐이다.


지하 공간이 잘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집었다. 음..이미 심상치않다.

메뉴판에는 맥주 초심자인 내가 보기에 참 낮선 맥주들이 많이 있었다. 샤대 공대를 다니고 있는 가장 성실한 조교 의경 대원이었던 그는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실연의 아픔에서도 고군분투중인 그에게 나는 무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트라피스트 페이지를 폈다)

"오늘 우리 비싼 거 먹자. 어차피 나 플레이트 로드 취재해야돼"

"햄 여기서 먹어도 되나?"(부산 사투리 고증을 잘 ^.^;;)

"트라피스트 이렇게 많은데 잘 없어. 우리 여기서 골라보자 근데 나 사실 잘 모름.."


이곳의 맥주 라인업은 상당히 다양하지만 우리는 그중에서도 플래그십!에 우리는 도전하기로 했다.

트라피스트는 수도원에서 '자기수양과 단식 시간'에 마시는 맥주였다고 한다. 어쩐지 이 지하는 수도원 지하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아마 트라피스트를 위한 공간이 아니었나 싶다. 1) 트라피스트를 이렇게 '경건하고' '정제된' 공간에서 마시는 경험은 흔하지 않아서, 2) 게다가 그는 실연을 했기 때문에! 3) 우리에게는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평일 저녁임에도 트라피스트만을 마시기로 하였다.


문제는 나는 트라피스트를 마셔본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고, 이 실연을 당한 부산 청년은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트라피스트는 가격대가 높다. 대학생들이 놀러와서 편히 마실 가격은 아니다. 우린 트라피스트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고민하는 우리에게 홀을 지키는 직원 분이 다가와서 친절히 트라피스트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에그썸은 선택지를 없애버려서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다면, 이 곳은 선택지가 많아서 힘겨운 우리에게 '좋은 추천'을 해주었다. 물론 다소 가격대가 있는 맥주들이긴하지만, 나는 그것이 우리에게 행복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트라피스트와 오늘의 서비스

서촌 '참 바'나 합정 '더팩토리'처럼 격조있는 좋은 바에서는 '원하는 느낌'을 바텐더에게 주문하면, 그것에 맞는 칵테일을 만들어준다. 이 날 링고에서 느낀 바도 비슷했다. 우리는 쓰면서도 '약이 되는' 느낌을 원했다. 우리에겐 그런 것이 필요했다. 직원 분이 아주 친절히 우리에게 권한 맥주를 마셨다.



트라피스트는 알콜 도수가 10도를 전후한 맥주다. 그중에도 도수가 높은 트라피스트를 마시면 청하 2병 정도를 마신 것과 같다. 술을 잘하는 분이 아니라면 연이어 마시지는 않길 바란다. 우리는 내일을 위해 딱 2잔씩을 마셨다. (청하 2병..)


이 곳의 유일한 아쉬운 점이라면, 화장실이다. 계단 밖 1층으로 올라가야만하는데, 다른 외식업장의 외부 화장실에 비교하면 관리가 잘되어 있었지만 정말 링고 지하의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나서는 길이 아쉬웠다.

의경학교에서 L군은 조교였고 나는 교육생(훈련병) 신분이었다.

그와 나는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하고싶은 말들이 참 많았다.


그러나 그도 나도 내일을 위해 해야할 일이 있었다.

실연을 경험한 그에게 좋은 사람과 인연이 찾아오길 바랄 따름이다.

그 날 마신 맥주는 쓴데 참 달았다.


샤로수길의 밤을 걸었다.

그와 나는 발을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

큰 걸음제식처럼 걸었다.



그 날은 밤도 참 좋았다.

내일은 왜 평일인가 몰라.

그렇게 생각하며 털털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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