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신체발달
ⓒ JTBC 전체관람가
몇년 전 JTBC 예능 ‘전체관람가’에서 방영한
박광현 감독의 독립영화 ‘거미맨’ 촬영기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촬영해야 할 장면은 영웅인 주인공의 어린 시절로, 친구들에게 쫓기는 내용이었습니다.
주인공 어린이는 두려운 표정으로 쫓겨야 했고,
뒤따르는 꼬마 악당들은 무서운 표정으로 쫓아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습니다.
아이들은 뛰면 그저 웃는 것입니다.
박 감독은 허탈한 표정으로
"아이들은 뛰면 웃는다. 그렇게 되는가 보다. 뭔가 뇌에서 작용이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게 싫은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달리고, 소리치고, 껑충껑충 뛰고,
높은 곳으로 기어오르고 싶은 자연스러운 충동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아이에게는 몸을 움직이는 모든 것이 ‘놀이’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최초로 놀았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놀았던 장면이 어렴풋이 떠오르더라도
그것이 최초의 놀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을 잃어버린 영아 시절, 그보다 더 거슬러 태아 시절부터 놀이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엄마의 뱃속에서 손끝이나 발끝을 꼼지락거리며 놀았습니다.
벌떡벌떡 발점프를 하며, 빙그르 몸을 회전시키며 놀았습니다.
엄마가 ‘똑똑’ 하고 배에 노크를 하면 발차기로 반응하기도 했습니다. 그저 놀이였지요.
태어난 이후에는 엄마가 들려주는 소리에 반응하고,
스스로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장난감을 물고 빨았습니다.
기고, 걷고, 달리면서 놀이를 즐겼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을 알아가고 타인과 교류하는 법,
몸을 사용하고 통제하는 방법,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인간에게는 타고난 순리가 있습니다.
아이는 정말이지 매순간 움직이며 놀고 싶습니다.
생후 1년 동안 영아는 쥐기, 조작하기 등의 손 기술이 발달됩니다.
손 기술이 정교해지면서 다른 사물을 가지고 하는 놀이가 가능해집니다.
또한 걷고 계단을 오르는 등 운동기술을 이용한 이동놀이가 가능해집니다.
2세경이 되면 거친 신체놀이가 처음으로 시작됩니다.
유아기에는 영아기에 터득한 운동기술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뛰고, 한발로 뛰고, 무릎을 들며 뛰고, 걷고, 달리고, 잡고, 서고, 구르고, 던지고, 받는 등의
운동능력을 향상시킵니다.
3세 이후에는 점점 사회화되면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으로 운동기술을 연습하게 됩니다.
종종 거친 신체놀이(rough-and tumble play)를 보이지만 이것은 정말로 공격적인 행동은 아닙니다.
경쟁하지 않고, 미소와 웃음을 보이며,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공격적인 행동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학령기 아동은 상당히 정교하고 큰 운동능력과 통제력을 보입니다.
대근육, 소근육 사용이 자유로워지고, 협응력, 균형감, 기민성이 증가되어
더욱 새롭고 도전적인 신체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활동적이고 건강한 어린이 국제연맹 (AHKGA ; Active Health Kids Global Alliance)’에 따르면
전 세계 38개국 아동·청소년의 신체활동 성적 중
우리나라 5-17세 아동·청소년 신체활동 등급이 전체 평균 D로 보고하였고,
신체활동은 불충분한 반면 좌식행동은 과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 유치원의 교육활동 역시
동적인 활동이 정적인 활동에 비해 매우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우리나라 아이들의 신체활동이 유아기 때부터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할 수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심각하게 몸을 움직이지 않습니다.
바르지 않은 자세로 앉아서 TV를 보거나 게임을 합니다.
엉덩이 힘을 길러야 한다는 명분 아래 책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지루해서 하품이 나올 뿐 피곤을 느낄 수는 없고,
그러니 밥을 달게 먹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으려니 좀이 쑤셔서 어떻게 해서든 몸을 움직여 보는데
그것이 주의산만으로 비춰집니다.
아이가 어른과 다른 것은 바로 생기가 풍요롭다는 것인데
무기력한 아이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비만과 같은 신체적 조건을 가진 아이들이 늘어나고,
심지어는 관절염이나 당뇨병과 같은 생활습관에 따른 질병이 이른 나이부터 진단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물론 환경적인 영향도 큽니다.
미세먼지로 인해 공기가 더러워졌고,
부모 없이 외출하기에는 두려운 세상이 되었으며,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정이 많기 때문에 층간소음 문제가 불거지기도 합니다.
그나마 신체놀이를 중요시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신체수업을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에미 피클러(2001)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어른이 인위적으로 구조화하고 기발한 생각을 짜내어 구성한 체육과 체조는
오히려 아이가 잘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고 하였고,
휴즈(1999)의 연구결과에서도
“구조화된 체육교육에 참여한 유아보다
자유놀이에 참여한 유아들의 운동행동이 교육적으로 훨씬 유의미한 행동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성인주도적인 신체교육도 진정한 신체놀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기가 스스로 걷기까지의 과정은
인간의 역사상 눈물나게 뜨거운 첫 번째 도전기를 보여줍니다.
끊임없이 반복해서 시도하기를 3,000여번 끝에
겨우 영광스러운 한두 발을 떼고야 말지요.
아이가 온몸을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신체적 긴장이 해소되어
신장, 체중, 관절, 근육, 내장기관 등 모든 신체의 성장과 발달이 이루어지고,
혈압, 배설, 수면 등 생리기능의 발달이 이루어집니다.
정서적 긴장 역시 해소되며 생활의 즐거움이 커집니다.
또한 운동기술을 연습하고 대담한 행동도 시험하게 됩니다.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는 ‘신체놀이’를 하는 시간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인간이 순리의 결을 따라 발달하려면 그래야 합니다.
아이 특성상 억지로 운동하도록 시키는 것은 거의 효과가 없습니다.
대신 아주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적합한 운동시설이 갖추어진 놀이터에서 성인의 적당한 관찰 아래 즐겁게 노는 것입니다.
놀이터를 보고 뛰어가지 않는 아이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미끄럼틀, 시소, 그네, 구름다리, 정글짐 등 놀이터에 흔히 설치된 놀이기구를 타는 것으로
조정력, 균형력, 순발력, 평형감, 집중력, 팔다리 근력, 눈과 손의 협응력 및 눈과 발의 협응력 등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단순히 놀이터에서 노는 것만으로도
성인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것처럼 아동의 신체발달에 필요한 활동을 할 수 있으며
체력이 더 좋아지는 것입니다.
오늘 아이와 산책을 하거나 함께 하원을 한다면, 일부러 놀이터가 있는 쪽으로 가 보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아이는 놀이터에 가자고 말할테죠.
오늘 만큼은 한껏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래!”라고 해 보세요.
놀이의 힘
놀이지도
편해문(2012).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이정희(2017). 발도르프 육아예술
아동청소년 신체활동 정책 평가 및 활성화 _ 서울대학교
뛰어 놀며 성장하는 아이들... 놀이터가 아이 발달에 유익한 이유 (2019-06-18 정인태)
“주의력 결핍? 놀이 결핍!” (편해문 2013.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