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절망에 빠지거나 어떤 일에 부딪혔을 때 종종 다른 사람 또는 상황 탓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순간 그 짐을 나에게서 덜어주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긴 하나 결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으며 결국은 점점 수렁에 빠지는 본인의 모습만 남을 뿐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존재하지 않아 대신 누군가에게 표출했던 분노가 튀고 튀어서 계속 번져가는 이야기이다.
밀드레드는 고통스럽게 죽은 딸에 대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픔은 여전한데 점차 그 사건에 대해 사라지는 관심이 화가 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화를 표출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 타깃이 된 것은 "경찰"이다. 그녀는 3개의 광고판을 세웠다. 그 내용은 고통스럽게 죽어간 딸을 해친 범인을 아직 잡지 못한 경찰에 대한 분노의 내용이었고 직접적으로 윌러비 서장을 지목하며 큰 모욕을 준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내용을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딸을 잃은 아픔을 가진 밀드레드와 나태하고 나쁜 경찰이 대치해 정의를 실현할 것이라는 나의 기대와는 달리 영화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화살처럼 마구 튀어가고 있었다. 분노의 대상이 된 윌러비 서장은 사실 좋은 사람이었고 병으로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속상하다는 이유로 자살을 하여 막상 밀드레드가 분노를 표출할 곳은 금세 없어져 버렸다. 또한 부족한 광고판 요금도 쥐어줄 정도니 밀드레드의 당혹감은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윌러비 서장이 죽으며 그 분노는 딕슨 경찰에게로 튄다. 그리고 그로 인해 광고판 제작 회사의 레드 웰비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된다.
인물들이 모두 입체적으로 그려졌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밀드레드는 영화를 보기 전에는 선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밀드레드는 절대 선이 아니었다. 오히려 분노를 여기저기 퍼뜨리며 여러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빌런 중 빌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밀드레드보다 더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다. 바로 경찰 "딕슨"이다. 딕슨은 자기 감정하나 주체 못 하고 마마보이의 모습을 보이는 최악의 인물이다.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이 어떤 때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중반 이후 딕슨은 윌러비 서장이 남긴 편지와 자신이 분노를 표출한 레드 웰비가 내밀어 준 오렌지 주스로 인해 새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샘 록웰 배우를 처음 접했다. 샘 록웰 배우는 비록 작은 키이기는 하나 자기 자신을 확실하게 각인시킬 정도의 연기력과 매력을 지니고 있었고 이러한 점이 딕슨 경찰의 입체적인 역할로 인해 빛을 발했다고 생각한다. 그 뒤로 조조래빗을 통해 샘록웰을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이제 나에게 샘록웰은 나온다 하면 믿고 보는 배우로 인식되었을 정도이다.
블랙코미디답게 씁쓸하게 나오는 웃음 또한 이 영화의 특징이다. 자칫 너무 무겁게 갈 수 있는 분위기를 재치 있게 들어간 유머로 완화시켜 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밀드레드와 딸이 싸울 때 아들이 딸에게 미친년처럼 굴지 말라하고 밀드레드는 우리 집에 미친년은 없다는 말을 했고 다시 아들이 엄마 집 나가게?라고 했던 장면이다. 분노는 분노를 야기할 뿐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아무것도 모르는 전남편의 애인의 입으로 말한 것도 이 영화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재미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분노가 향할 때 그 분노가 낳는 결과를 재미있게 보여준 작품이다. 딕슨과 함께 떠나며 가는 길에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자는 밀드레드의 말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