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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문 Jul 14. 2022

최선의 삶

짜임새가 훌륭하다고 볼 수는 없으나 분명 마음을 울리는 지점이 있었다

친구가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친구는 나의 세상이었고 동경의 대상이었고 그 친구들만 있어도 그렇게 싫던 학교가 그럭저럭 다닐만한 곳이 되었었다.

학교는 정말 싫은 공간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서울로 전학을 오고 나서 깨달았다.
"학교에도 계급이 있구나."
내가 본 아이들은 결코 순수하지 않았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떻게 형성된 계급인지 소위 잘 나가는 아이들은 나와 나와 같이 다니는 아이들에게 막말을 하였고 그래도 된다는 듯 행동했다. 이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으며 그 애들은 그래도 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듯싶기도 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 계급은 성적순으로 매겨지기 시작했고 그 사이 나와 같이 다니던 친구는 나보다 조금 더 공부를 잘하는 친구에게 가버리기도 했으며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나를 무시하고 나도 나보다 못한 아이들을 무시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의 마음속엔 늘 화가 있었다.
그 시절 바라본 선생들은 위선적이었고 아이들은 역겨웠으며 거기 껴서 지내려 가면 쓰고 있는 나 또한 역겨웠다.
그래서 나의 몸은 교실 안에 있었으나 마음은 늘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놀랐다. 그때의 내 마음을 그대로 들켜버린 느낌이었다.
분명 영화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문제가 있었으나 왜 그랬는지 그 아픔을 알 것 같았다.

강이에게 소영이와 아람이는 우주였다.
소영이가 가출하자 하면 그대로 따를 정도로 세 사람의 우정은 각별했다.

학교에서 바라보는 세 사람의 위치는 달랐다.
집도 잘 살고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소영이는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았고 셋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소영이라는 존재로 인해서 그들의 징계는 가벼워질 수 있었다.
아람이는 평범한 집안이지만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었고, 강이는 부모님께 사랑받지만 집이 너무 가난했다.

세 사람은 서로에게 없는 것을 서로를 동경하며 채워가고 있었고 이 우정 또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예민한 학창 시절의 우정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금이 가버리기도 한다.
이 세 사람도 그랬다. 가출 후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은 듯한 소영이는 그냥 강이에게 거리를 두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지 이유가 너무나 모호해서 이 지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해가 되었다. 나도 나 자신이 모르는 이유로 잘 지내던 친구가 한순간에 싫어지기도 했으니까.

강이 소영이 아람이는 모두 그 시절 나름대로의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었다. 이는 강이가 가출을 해도 사랑으로 품어주고 자신의 마음에 대신 대못을 박은 엄마, 아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그랬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흑역사, 이해할 수 없었던 학창 시절.
그 당시 했던 모든 선택이 다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학교 안에 학생 1로 있으며 다 같은 교복을 입고 누가 더 나은지 처박혀있던 그때의 모습이 아직도 저주스럽다.
그리고 영화를 본 후 내 마음속 뭉쳐있는 그때의 상처를 똑바로 마주 보게 되었다.
다소 거칠고 날것을 다룬 영화지만 영화를 본 후 일련의 생각을 거치고 나니 학창 시절이 전보다 덜 아파진 기억으로...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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