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는 눈이 오는 게 즐거웠다. 눈이 오면 꼭 손과 발이 빨개질 때까지 밖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은 눈이 와도 아무 감흥을 느낄 수 없다. 설레기는커녕 출근길이 걱정되고 더 추워질 날씨가 걱정된다.
그런 어른이 되어버린 나의 마음을 움직일 영화 "가위손"이 쿠씨네에서 특별상영을 했다. 크리스마스에 보려고 예매했다가 독감과 안 좋은 일이 겹쳐 몇 차례 예매와 취소를 반복한 후에야 겨우 관람을 할 수 있었다.
영화는 제작과정에서 제작자가 죽어 손이 미완성인 채로 남겨진 에드워드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정한 펙의 발견으로 홀로 언덕 위 성에서 살던 그는 마을로 내려오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의 열렬한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게 어떤 행복인지 알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묘하게 불쾌한 사람들의 태도를 그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분명 에드워드에게 친절했으나 펙과 그녀의 남편 빌은 식사하기 힘들어하는 에드워드를 배려해주지 않았고 동네 사람들은 에드워드를 평범하게 대하지 않고 화제의 중심에 올려놓기 급급했다. 그리고 어느 정점에 이르러 이내 에드워드의 평판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한다.
이 영화를 보며 아주 오래전 봤던 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가 떠올랐다. 인순이는 실수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고 출소 후 일이 풀리지 않아 자살을 결심해 시도하려던 도중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가위손은 이 이야기를 훨씬 더 잔혹하고 냉정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이는 에드워드라는 인물이 선악의 기준으로 정립되지 않았다는 설정덕에 더 생생하게 표현되고 있었다. 게다가 팀버튼이 그려낸 사람들은 더 혀를 내두르게끔 행동했다. 사실 기존 작품들에서도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팀버튼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는데 그 세계가 가위손에서도 여지없이 표현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고 사람들과 에드워드의 관계를 흐지부지 끝내는 것이 아닌 끝장을 보게끔 한다는 점에서 틀림없는 팀버튼 작품임을 느낄 수 있었다.
아쉬운 점도 느껴졌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도 봤듯 갑분 러브라인이 그러했다. 팀버튼 감독의 이야기 진행방식 같기는 하나 상당히 개성이 강한 인물에게 사랑이 빠지는 방식은 나에게는 몰입을 깨뜨리는 요소로 작용했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팬텀과 같은 인물인데 사랑에 빠지는 것이 너무 극적이라고 느껴져서 그런 듯싶다.
팀버튼의 기괴하면서도 순수한 면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크리스마스 악몽의 잭보다도 선악의 이분법적인 요소에서 벗어나 그 이상의 고귀한 가치와 순수함을 지닌 가위손이라는 인물이 더 매력적으로 구현된 팀버튼의 세계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