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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건호 Feb 01. 2019

#0 반 칠십, 생의 한가운데

나는 왜 포르투갈로 떠났는가?

대개 가정을 꾸린다거나
또는 꾸릴지 모르는 언젠가를 위해
안정을 따르려는,
그런 반 칠십에 가까운 나이에

직장을 그만둔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마치 현재의 내가 그런 것처럼.

스물 다섯 신입사원 시절부터
10년 가까이 다녀온 직장이었기에
반복되는 삶의 관성의 법칙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더욱 나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이따금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을 할 때쯤이면,
계속해서 밀려오는
파도 같은 현실의 과제에 휩쓸려
아등바등 살아남기에 바빠지기 일쑤였고

자연스레 고민의 시간은
잠시 잊혀지거나 뒤로 미뤄지다
다시 나를 찾아오곤 했다.

어느 순간 커다란 무언가에
한대를 얻어맞은 듯,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던 것인지
아니면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인지
정말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난 10여 년 간
행복하게 일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러한 삶의 연장선 상에서
‘과연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갑자기 미래가 너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1년, 2년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의 뭉치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이제 마음속에 그 뭉치를 구겨두기에는 너무 거대해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새로운 삶을 위한 용기가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반복될 삶에 대한 두려움이 부족한 탓일까?

가슴이 너무 답답해졌다.

마음속에서 SOS 외침이 들려왔다.
딜레마에서 벗어날 잠시의 휴식을 달라고.

그렇게 도피하듯 2주일 뒤 떠나는
포르투갈행 비행기 티켓을 무작정 끊고
회사에는 그럭저럭 핑계를 대고
포르투갈로 떠났다.


오건호 <사원증, 2019>


퇴사를 잠시 가정하고
앞으로 무얼 할지 고민해보기 위해

아니, 잠시 동안 현실을 내려놓고
나의 내면에 온전히 귀를 기울여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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